광고 스타트업 <스튜디오 와그작> 창업 도전기
공모전스럽게 생각하는 법
‘공모전스러운 아이디어’는 따로 있었던 것 같다. 그걸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규정하고, 그런 생각을 해내지 못하는 나를 창의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제40회 제일기획 아이디어 페스티벌에서 수상을 실패하고 <스튜디오 와그작>을 설립하기 직전의 일이다.
나와 찬우(동업자)는 ‘현실성 필터’를 뗄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공모전은 패기 있는 대학생의 터무니없는 아이디어를 기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현실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있었다. 어이없을 정도로 새로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지 못했다. 머릿속에서 현실성 필터가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모전에 들인 시간이 아까웠다. 한 달씩 갈아 넣은 아이디어들이 그대로 버려지는 것에 회의감이 들었다. 몇천 개의 공모작을 비집고 수상을 해내는 가능성에 우리의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맞나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방식이 “광고 소매넣기”이다.
"우리가 기업한테 먼저 제안서를 써보는 건 어때?"
우리는 창의적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맞지 않는 곳에 시간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현실성을 고려한다는 건 실제 마케팅에선 장점이었다. 시장에서 우리 아이디어가 먹히는지 궁금했다. 그럴 기회가 주어질지는 모르지만, 공모전에 도전하는 것과 가능성 측면에서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어차피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 볼 거면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시원하게 실패하더라도 공모전 탈락보단 의미 있는 실패가 될 것이었다. 그렇게 무턱대고 광고 소매넣기하는 집단이 되어보기로 했다. 우리끼리 클라이언트를 선정해서 제안서를 쓴 뒤, “이 광고 하실래요?” 묻는 것이다.
어떤 광고를, 누구한테 보낼까
방향성을 정하는 첫 회의부터 쉽지 않았다. 어떤 광고를, 누구에게 보낼까. 우리는 경력이 없으니 우선 이름을 알려야 할까? 디마이너스원처럼 공익적인 캠페인을 해서 뉴스에 나올까? 소상공인들의 광고를 제작해주자는 의견도 있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훌륭한 가게들을, 적은 보수를 받고 광고를 해주며 경력을 쌓자는 것이었다. 기업의 마케팅팀이 일개 대학생 집단의 의견을 경청해줄 것인지가 불확실했기 때문에 이러한 선택지를 고려했었다. 결국은 소상공인이 아닌 기업을 대상으로 제안서를 쓰자는 결론을 냈다. 이유는 수주가 되었을 때 자본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는 경험을 해볼 수 있어서였다.
여기서 또 논쟁거리가 나왔다. 우리는 콘텐츠 기획 집단이었나? 광고, 마케팅, 콘텐츠, 브랜딩. 어느 하나 정하기가 어려웠던 것이, 다 해보고 싶어서 그랬다. 어느 것을 잘한다고 꼽지 못했던 것이, 다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서 그랬다. ‘아무튼 재미있는 거’ 하려고 무턱대고 만든 집단은 이후에도 방향성에 대한 부침을 많이 겪었다.
"다만, 그 과정이 ‘아무튼 재미있었다.’ 그래서 계속할 수 있었다."
광고 동아리를 했어야 하나
우리는 정답으로 가는 지름길을 몰랐다. 기업분석부터 하는 게 맞는지, 기업분석은 어떻게 하는 건지부터가 어려웠다. 또 ‘USP는 하나여야 하는데’, ‘인사이트는 멋있어야 하지 않나’, ‘보통 제안서에 이런 거 하나쯤은 하던데’. 같은 의문과 마주해야 했다. 전공이 광고이긴 한데 별 도움은 되지 못했다. 광고, 마케팅 동아리에선 이런 과정을 기계적으로 연습해서 능숙해지는 것 같던데 이상한 거(?) 하지 말고 광고 동아리를 했어야 하나 싶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과정보다 그 아이디어를 타당하게 만드는 과정이 더 어려웠다. 결정적으로 우리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해서, 그다음에 근거를 찾고 있었다. 다 같이 독서 스터디를 하면서 배운 바로는 그 반대여야 했다. 이 아이디어야만 하는 이유는 클라이언트 안에 있어야 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았지만 바로잡는 법을 몰랐다.
"근데, 뭐가 잘못된 걸까? 이것도 우리 스타일 아닐까?"
광고는 항상 대행해야 하는 일일까?
남의 말대로는 못하는 사람들, 뻔한 거 못 하는 사람들인 우리는 결국 지름길을 찾지 않고 정글 속으로 들어갔다. 작업을 해 나가며 우리만의 스타일을 찾아갔다. 무턱대고 제안서를 보낸다는 우리의 본질을 생각하면 이 방향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광고업계 회사는 왜 다들 ‘대행사’ 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업종이 뭔가를 대행하고 돈을 벌지만, 직접적으로 대행사라고 불린다는 점은 특이했다. 거칠게 말하자면 ‘광고 대행사’는 자신만의 것이 없으며, 슈퍼 을이라는 뜻처럼 들렸다.
"거만하지만, 광고 집행사는 어때?"
우리만의 것이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슈퍼 을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남의 말대로는 못 하겠어서 남들처럼 취업하지 않고 직접 회사를 만들었는데, 그게 ‘광고 대행사’라면 너무 모순적이지 않나. 그래서 광고 집행사가 되기로, 우리끼리 조용히 마음먹었다.
연락 주시는 광고주님 사랑합니다.
좀만 더 방황해보자 우리
스튜디오 와그작이라는 이름은, 작은 틈을 찾아 '와그작' 균열을 내고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오게 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틈은 항상 작았다. 찾기 어려웠다.
"완벽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모든 것엔 틈이 있답니다.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오죠."
– 레너드 코헨
지금 아니면 못 할 것 같으니 마음껏 실패하고 방황해보자고 결심했다. 2021년 6월, (나의 입대 1년 차가 되어갈 때 즈음) 스튜디오 와그작의 방황이 시작됐다. 여전히 비틀거리는 우리는, 이제 걸어온 길을 돌아볼 여유를 가지게 되어 지금껏 마구 찍어온 발자국을 기록하려 한다.
무수한 실패와 몇 번의 성공이 있었다. 그리고 끝없는 배움이 있었다. 같은 길을 걷는 여러분께 그동안의 배움을 나누고, 수주에는 실패했어도 내놓기에 부끄럽지 않은 아이디어들을 보여주기 위해 기록을 시작한다.
"여전히 방황 중이지만, 좀만 더 방황해보자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