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소년의 모습을 간직하면
새벽 어스름을 거슬러 올라
인사하고 입 맞추면
낮은 언덕 위에서
내 하루는 떠오른다
그날은 불꽃이 피었다 들었기에
아득히 먼 그 불을 따라가 보았다
헌 옷을 벗고
영원을 채우려
다 커버린 난 놓아두고
소년 소녀의 모습을 하고 간다
잔잔한 하루가 저물 때쯤
그림자들은 숲에 머물다
불을 품은 내가 다가가니
신기한 듯 함께 춤을 추었다
이대로
소년의 마음을 간직하면
어른이 되진 못하겠지만
불을 품었으니 되었다
춤을 추었으니 되었다
헌 옷을 벗고
영원을 채웠으니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