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레프 Feb 27. 2023

현기증

86. 코미디

 너는 와닿지 않는 말을 들었을 때의 표정을 짓는 일이 잦아졌다. 자동응답기에 녹음된 것 같은 메시지가 입가에 덜그럭 거린다. 감정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대화를 피하는 방법을 터득한 젊은이. 유선으로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조차 버거워진 엄지손가락 두 마디는 무겁다.


 네게 제일 신경 쓰이는 몇 가지를 나열해 본다: 관심의 탈을 쓴 검열기. 쿵하는 소리. 선택할 수 없는 선택지들. 동물의 생식기처럼 거세해야 하는 아름답지 않은 단어들. 보기 좋게 만들어야 하는 강박과 물려받은 신념. 그리고 답하기 싫은 질문.


네 염세에 소금을 쳐 밑간을 해두었다. 내일이나 모레 꺼내 먹으면 맛이 좀 들었을 것이다. 부디 식사 중에 잡생각은 들지 않길. 어느 연락도 오지 않길.


깊이는 찾지 않아도 발을 잘못 디디면 쉽게 빠지는 곳에 있으니 가능한 가벼운 모습으로 다니는 게 좋다. 크게 반응하지 않고 매사에 그렇구나 정도로 끝낼 수 있는 가벼움. 그렇지 않으면 산소가 아깝지 않은 사람이 되려 숨을 덜 쉬는 걸 택한 것 마냥 어느 순간 현기증이 팍- 하고 올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결국엔 코미디이겠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