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기억하는 매개와 그리움
요즘에 난 nba를 보는 맛에 푹 빠졌다. 국내 농구 kbl은 거의 잘 보지는 않지만 nba에 관심 갖고 본지가 몇 년쯤 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슬램덩크 정대만을 좋아했던 역사가 있었던터라 농구에서 슛터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클레이 탐슨이나 스테픈 커리가 있는 골든스테이트를 좋아해왔다. (사실 탐슨은 이적한지가 꽤 됐지만) 그런데 나에게는 nba를 보다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바로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다.
내가 어릴적 늘 바빴던 부모님을 대신해 나를 자주 돌봐주셨던 외할머니는 여느 할머니들처럼 집에서 늘 테레비를 보셨는데, 특이하게도 우리 외할머니는 항상 afkn을 틀어두셨다. 그때 당시에 채널 2번이었던 afkn은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당시에는 선진적인 미국 문화나 엔터테인먼트, 스포츠 등을 첨단에서 접할 수 있게 도와주었던 채널이었다. 우리 외할머니는 영어를 이해하시지 못하셨음에도 늘 afkn을 보셨는데, 이유는 알 수 없다.
90년대 중반에도 낡았던 금성 테레비로 할머니와 나는 당시에 여러 가지 미국 프로 스포츠를 시청했다. 당시에 특히 즐겨본 것은 nba였는데 afkn에서는 그때 최고 인기팀이었던 시카고 불스의 경기를 자주 송출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외할머니 덕에 마이클 조던의 플레이를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었고 그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쯤 내 나이가 7~9살 언저리였는데, 외할머니는 그런 어린 나에게 불스의 여러 선수들을 설명해주셨는데 조던, 로드맨, 커, 쿠코치 같은 선수들에 대한 설명이 기억에 남아있다. 조던 외에 다른 선수들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코멘트를 하셨던 외할머니는 당시 nba에 꽤 조예가 깊으셨던 듯 하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에 어떤 할머니가 nba를 보면서 손자에게 선수들의 특징을 설명해줄 수 있었겠는가. 특히 로드맨에 대한 설명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 "저 녀석이 웃기는 놈인데 의외로 실력은 좋다. 수비를 잘한다." 라는 식의 설명이었고, 로드맨은 어렸던 내 눈에도 되게 특이한 선수였기에 아직도 할머니의 이야기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다.
그래도 내가 가장 좋아한건 당연하게도 마이클 조던이었는데 쥐방울만한 대한민국 꼬맹이가 조그마한 테레비로 보기에도 위대한 선수였다. 믿거나 말거나 나는 조던의 the shot이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다. 그리고 2년 연속으로 파이널에서 만났던 유타재즈의 스탁턴도 상당히 좋아했었다. 상대적으로 작고 백인 선수였음에도 플레이가 유려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불스를 응원하던 나에게 유타 재즈는 악당에 가까웠던 이미지였지만. 그런데 그들을 물리치고 두번째 쓰리핏을 달성한 조던은 그 어린 9살 언저리의 꼬맹이에게도 영웅이었다.
내가 3-4학년이 되어 더 이상 할머니의 살뜰한 보살핌이 필요 없어지자 외할머니는 더 이상 우리집에 나를 돌봐주러 오시지는 않으셨다. 그때부터 유년기의 나는 늘 혼자 집에서 밥 차려먹고 친구들과 놀러다니며 시간을 보냈었다. 그러면서 nba 시청도 하지 않게 됐고 때마침 조던도 은퇴를 하게 돼 nba에 대한 관심도 거의 없어지게 됐다. 다만, 그 이후에도 스포츠에 대한 관심은 그대로 살아있어서 그 관심은 nba에서 프로야구와 해외축구로 이어지게 됐다. 할머니와 같이 보던 테레비를 10살 이후부터는 늘 혼자 보게 됐다. 그때 생각하면 또 웃긴것이 지금도 보기 힘든 야구 9이닝을 10살 11살의 나이에는 다 봤다는 것이다. 딱히 해야할게 없어서 일수도 있지만 3시간이 넘게 걸리는 야구 9이닝을 혼자 보는게 별로 지루하지가 않았다. 야구가 끝나는 10시 무렵이 되면 부모님이 돌아오셨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시간도 얼추 딱 맞았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나는 근래 들어 다시 nba를 즐겨 찾아 보는데, 그때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난다. 기괴하다 싶을 정도로 3점 터프샷을 쉬이 꽂아 넣는 스테픈 커리를 봤다면 할머니는 뭐라고 하셨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할머니가 보고 싶어져 갑자기 눈물이 난다. 전혀 뜬금없지만 나에게 nba는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해주는 매개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아이들의 유년기에 나는 어떤 사람으로, 어떤 매개로 기억이 될까. 아이들은 나를 떠올릴때 어떤 것을 매개로 삼아 기억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