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아름다운 학교에서 교사로서 살아가는 일
나는 교사로서 사는 것이 행복하다. 고되고 어렵지만 그래도 보람차고 행복하다. 아이들도 사랑스럽고 대체로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 매일 아침 출근길이 즐겁고 설렌다. 다른 학교에 비해 할 일도 많고 고민할 것도 많고 신경쓸 것도 더 많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왜일까?
첫째, 교사로서 응당 가질 수 있는 자율성이 넉넉히 보장되어 있다. 대신 내가 감당해야 할 의무도 많다.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최일선의 사람인 교사로서 교육적 권한과 지위를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관리자든 누구든 직급과 무관하게 교육적으로 열린 마음으로 논의와 협의가 가능하다. 수직적으로 나의 교육적 의견이 좌절되거나 잘린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더 교육적으로 다양하게 열린 사고와 창의적 아이디어를 재구성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혜택은 결국 아이들이 돌려받게 된다.
둘째, 교육수요자인 학생들과 학부모로부터 받는 신뢰와 지지 그리고 사랑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때로는 그 사랑이 과분하게 느껴질 정도다. 나 역시 교사로서 정말 열심히 살고 아이들을 위해 많이 헌신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내게 주는 사랑이 내가 그들에게 주는 사랑보다 더 크다고 느낄 때가 있다. 아이들은 순수하고 매사에 열정적이다. 난 이 곳에서 내가 아이들을 위한 또 다른 부모로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가진다. 때로 교사는 밑빠진 독에 물 붓는 느낌을 가지게 되는데 이 곳에선 다르다. 내가 주는 사랑과 헌신에 대해 돌려받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셋째,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하나 하나 다 좋다. 우리 학교는 작은 학교이기에 교원 뿐 아니라 교직원 전체를 헤아려도 20명이 될까 말까한 정도이다. 그런데 모두가 어떤 일이든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면 서로서로 도와가며 발벗고 나선다. 영역의 구분 없이 서로가 서로를 도와가며 함께 살아간다. 물론 그 모든 일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다. 다들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힘들때 늘 믿고 의지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힘들땐 내가 그를 위해 의지가 되어준다. 우리 학교는 그게 당연한 곳이다.
넷째, 학부모와 교육적 동료의 관계에서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다. 그들은 날 언제나 지지해주지만 동시에 날카로운 감시자가 되기도 한다. 교사가 철학과 맞지 않는 방향으로 가게 될때는 방향성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협의가 가능하다. 내 아이보다는 우리 아이로서 우리 아이들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관점들을 지닌 학부모들이며 때문에 거의 교사와 같은 태도로 논의와 협력이 가능하다. 교사에게는 힘든 과정이지만 그런 과정을 겪어가며 함께 신뢰를 쌓아갈 수 있다. 그래서 교사는 보다 운신의 폭이 넓어지고 교육적 자유를 얻는다. 교사가 아이들을 위해 실행하는 교육적 행위에 다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건 지금 시대에 너무나 큰 장점이다.
다섯째, 아름다운 환경과 공간이 주는 매력도 적지 않다. 탁 트인 자연을 아이들과 함께 바라보면 근심이나 고민이 자연스레 덜어지는 느낌이다. 또한 이 자연 환경을 활용하여 할 수 있는 교육적 활동이 정말 너무나 많다. 별 것 없이 아침에 아이들과 숲으로 자연으로 산책만 다녀와도 함께 충만해지는 기분이 든다. 예술적 감성도 절로 채워진다.
여섯째, 학교가 지닌 다양한 혁신적 교육문화들로 내가 교사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보다 채워지고 성장할 수 있어서 좋다. 수 년의 시간동안 인간적으로도 성장하고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열거하자면 더 많지만 이런 몇 가지의 이유들로 나는 교사로서, 한 명의 인간으로서 우리 학교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슬픈 것은 지난 수년 간 우리 학교에 근무하며 나는 이런 행복감을 떳떳하게 다른 교사들이나 친구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 동료교사들이나 친구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들, 교사들을 옥죄는 현실들, 정상적 교육활동 조차도 마음 놓고 펼칠 수 없는 우리나라의 교육 환경과 현실들이 내가 교사로서 특별한 학교에서 행복감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마음을 죄스럽게 만들곤 한다. 그래서 외부에 적극적으로 알리거나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 나의 큰 아쉬움이다.
나는 교사로서 정말 열심히 산다. 내 삶을 갈아넣고 있다. 우리 학교에 근무한 수년의 시간동안 나의 개인적 취미나 삶은 뒷전이 되어 내가 가진 모든 여유와 시간들은 오로지 우리 아이들을 위한 교육과 교사로서 내가 더 발전하는 데에 써왔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교사로서 누리는 이 행복이 과분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어떠한 영달이나 이득을 좇지 않고 노력하며 살았음에도, 현 시대 동료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우리가 꿈꾸던 교육을 뒤로할 수 밖에 없는 교사들을 보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 그런 복잡한 심경 때문에, 죄스런 마음때문에 풀어놓지 못했던, 우리 학교에서 내가 겪었고 현재도 겪고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앞으로는 좀 더 적극적으로 풀어낼 생각이다. "가르치는 일이 절망이 되어서는 안된다."던 동료 선생님의 말에 얹어 "가르치는 일이 희망이 될 수 있게" 조금이나마 재밌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풀어내야 겠다. 이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겐 희망이 되고 영감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