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셀 공간 유한의 이야기

컴퓨터의 언어 2진법

by 아빠를 공부하자

엑셀의 빈 공간, 사실은 꽉 찬 이야기


처음 엑셀을 열면 상단에는 메뉴바, 하단에는 시트바가 있고, 그 사이에 펼쳐진 광활한 공간이 하나 보인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백지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건 사실 하나의 거대한 ‘표’다.

엑셀화면.jpg 엑셀을 처음 켰을 때 마주하는 화면

행과 열을 구성하는 셀들의 그물망이 화면 가득 펼쳐져 있는데, 우선 행부터 보자. 1, 2, 3, 4... 이렇게 내려가다가, 무려 1,048,576행까지 이어진다. 열은 숫자가 아니라 알파벳으로 표시되는데, A, B, C, D... 해서 끝은 XFD. 총 16,384열이다.


그런데 말이지, 1,048,576행과 16,384열? 뭔가 숫자가 애매하지 않나?

딱 떨어지게 “백만 행, 만 열”이었으면 설명도 기억도 쉬웠을 텐데, “백사만팔천오백칠십육 행, 만육천삼백팔십사 열”이라니... 편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애매해 보이는 숫자들이 쓰인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바로, 컴퓨터는 2진법을 사용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디지털의 세계, 2의 배수로 움직인다


디지털이라는 말을 들으면, 검은 배경 위에 주르륵 이어지는 0과 1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바로 그 0과 1, 이진법이 컴퓨터 세계의 언어다.

ChatGPT Image 2025년 8월 3일 오전 09_36_33.png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디지털이라는 개념의 이미지

엑셀의 1,048,576행은 사실 2의 20제곱, 즉


2²⁰ = 1,048,576

열의 16,384개는 2의 14제곱,

2¹⁴ = 16,384다.


그러니까, 엑셀이라는 공간은 2진법의 세상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고, 그게 가장 효율적인 단위이기 때문에 그렇게 설계된 것이다.

혹시 2진법이 좀 가물가물하다면, 아래 예시를 보면 감이 올 거다:


1 = 1(2) = (2^0) * 1

2 = 10(2) = (2^1) * 1 + (2^0) * 0

3 = 11(2) = (2^1) * 1 + (2^0) * 1

4 = 100(2) = (2^2) * 1 + (2^1) * 0 + (2^0) * 0

5 = 101(2) = (2^2) * 1 + (2^1) * 0 + (2^0) * 1

6 = 110(2) = (2^2) * 1 + (2^1) * 1 + (2^0) * 0

7 = 111(2) = (2^2) * 1 + (2^1) * 1 + (2^0) * 1

8 = 1000(2) = (2^3) * 1 + (2^2) * 0 + (2^1) * 0 + (2^0) * 0

9 = 1001(2) = (2^3) * 1 + (2^2) * 0 + (2^1) * 0 + (2^0) * 1

10=1010(2) = (2^3) * 1 + (2^2) * 0 + (2^1) * 1 + (2^0) * 0


그 많은 셀, 다 쓸 수 있을까?


다시 계산해보자. 엑셀은 2²⁰개의 행과 2¹⁴개의 열로 이루어져 있다. 그럼 총 셀 수는?


2²⁰ × 2¹⁴ = 2³⁴ = 17,179,869,184


읽기도 힘든 숫자지만, 무려 171억 7천만 개 이상의 셀을 담을 수 있는 셈이다. 그럼 이런 질문이 생긴다.


왜 열보다 행이 더 많은 걸까?


내 생각에는, 엑셀의 일반적인 사용 방식이 그렇기 때문일 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정된 열 안에서 행을 쌓아 나가는 형태로 데이터를 정리한다.

날짜별, 사용자별, 거래별...
시간이 지날수록 행은 쭉쭉 늘어나지만, 열은 일정한 구조를 유지한다.


현실 속 엑셀은?


내가 회사에서 다루는 엑셀 파일들은 대부분 간단한 편이다. 이메일에 첨부하기 좋은 요약 자료나 간단한 차트 정도.

하지만 그 안에서도,주간/월간/분기별로 누적되는 데이터는 꽤 빠르게 커진다.

실제로 내가 매주 받는 리포트 중에는 20만 행에 달하는 것도 있다. 이런 파일은 열려면 몇 초, 저장할 때도 몇 초씩 걸린다. 수식이라도 전체 열에 걸쳐 바꾸려면, 그 짧은 시간조차도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ChatGPT Image 2025년 8월 7일 오전 12_12_34.png 짧은 릴스도 기다리기 힘은 우리, 엑셀 로딩을?


그 이상의 공간은 필요할까?


엑셀이 100만 개 이상의 행을 열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지만, 막상 그 한계를 넘는 순간, 컴퓨터는 이렇게 말한다

“이건 못 해먹겠다.”

엑셀팝업.jpg 컴퓨터의 이유있는 파업

실제로 1행 1열부터 1,048,576행 XFD열까지 모든 셀에을 입력해봤다. 컴퓨터는 그냥 작업을 거부해버렸다.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더라.


엑셀의 공간, 디지털과 효율성 사이의 타협


결국 지금의 엑셀 구조는, 컴퓨터라는 존재가 가진 한계와 효율성 사이에서의 절묘한 타협인 셈이다.

그리고 이 구조는 그냥 우연히 나온 게 아니라, 이진법이라는 언어로 움직이는 컴퓨터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도 하나의 흥미로운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