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두고 주류 양당 사이 네거티브 언플이 활기를 띠고 있다. 아니, 살기(殺氣)라고나 할까. 사실 선거철에 유력 주자를 비롯한 정치인에 대한 도덕성 중심의 공격은 늘 있어왔다. 당사자에 대한 공격보다 더 쉬운 것은 당사자의 가족에 대한 공격이고, 이러한 수법은 진영을 막론하고 활발히 전개되어 왔다.
한편 그러한 손쉬운 전략에 대한 방어는 부인이나 역공이었다. 방법의 적절성은 대체로 "철저한 검증"이라는 미명 하에 고려되지 않았다. 하지만 정치인 개인을 넘어 그 가족에 대해 칼날을 들이대는 것이 용인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공격이 오직 그들을 모욕하는데 그치는 일일까?
얼마 전에 일어난 일. 기성 언론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곳 중 하나에서 여권 유력 정치인의 딸 사진을 트레이싱한 삽화를 엉뚱한 기사에 배치했다. 해당 구도에서 삽화 속 인물은 성매매 여성을 암시했다.
교차하는 최근의 다른 일. 이른바 찌라시에서 퍼진 스토리를 언론 매체들이 퍼 나르기 시작했다. 물론 다른 범죄와 부패 등의 사안에 엮여 제시되긴 했지만. 주요 쟁점 중 하나는 야권 유력 인사의 아내가 전직 성매매 여성이었다는 것이다.
여성을 성매매 종사자로 위치시키는 것은 풍자인가? 비판인가? 검증인가?'정치적' 공격인가? 아마 저런 카드를 꺼내 든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기에 그러한 행동을 취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방식의 공격은 남성과 동등한 주체로서의 여성'상'에 대한 비열한 습격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에서 적지 않은 여성들은 그들이 배제된 영역으로 진입하고자 안간힘을 써왔다. 그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혹은 형식적으로는 허용되더라도 그것을 잘 수행할 수 없다는 암묵적 전제하, 기대와 응원으로부터 배제당한 영역들 말이다.
다른 한편에서 그러한 배제의 역학과 공모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여성이 특정한 영역에서 평가받을 권리를 갖지 못할 동안, 남성들 심지어 여성들 본인도 주체가 되어 공통의 잣대로 여성을 평가해왔다. 그 줄자의 위쪽 끝에는 현모양처로 대표되는 가정에서의 역할수행이 있다. 그 반대편에는 "창녀"의 상이 있다.
오랜 세월 남성이 정치적 권력, 군사적 지략, 타자에 대한 구제력, 재력 등의 유무로 평가받을 때, 여성은 재생산, 성적 매력, 성적 엄숙함 등 섹스와 젠더의 요소로 수렴되는 단일 잣대로 평가받았다. 물론 많은 남성들이 고통과 고뇌의 시간들을 보냈음에는 틀림없다. 돈, 외모, 권력, 사회적 성취를 지니지 못한 남성은 무능력자로 지탄받아왔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의미에서 여성은 평가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한 적이 많았다 - 성적인 요소를 제외한다면.언론이 '창녀'의 상을 투영해서 공격할 때, "아니다"라는 반론이 "그게 어때서"라는 대답보다 쉬울 것이다. 딱 그만큼 그러한 평가의 잣대는 다시금 견고해지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사회가 남녀를 동등하게 존중한다면, 적어도 성적인 요소 이외의 것들로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차라리 한국 여성들이 더 많은 비판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비판의 구도가 다양할 수만 있다면. 왜 한국 여성은 아직도 비판받기 위해 창녀'만'? 되어야 하는가? 저열한 언론과 정치권 만의 문제일까? 전직 대통령의 누드'풍자'화 그림이 "표현의 자유" 논쟁으로만 소비되었던 때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