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녹턴 8번 수업 이야기
사라와의 피아노 레슨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1년이 지났다. 사실 피아노는 어렸을 적 7년 정도 배웠지만, 오랜 시간 손을 놓고 있다가 1년 전 파리에서 다시 개인 레슨을 받게 되었다. 피아노를 치는 동안에는 평소 잘 사용하지 않던 우뇌를 마음껏 활용하며 온전히 연주에 몰입할 수 있다. 한음 한음 정성스럽게 누르다 보면 1시간이 10분처럼 느껴질 만큼 빠르게 지나가곤 한다.
오늘은 특별히 음악성에 집중해 쇼팽의 녹턴 8번을 연습하는 수업을 진행했다. 기억나는 대로 사라와의 수업 내용을 정리해본다.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두 개의 바깥쪽 페달을 동시에 밟고 있으라고 했다. 이렇게 하면 선율이 색다르게 들릴거라고 말하면서. 음악에서 디테일은 곧 깊이이니까.
쇼팽의 음악은 마치 노래하듯 연주하는 것이 특징이다. 왼손 반주는 잔잔하게 배경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지만, 오른손 선율은 더욱 명료하고 감정적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했다. 나만의 감정을 실어서 흐름을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쇼팽의 음악은 단순한 연주 이상의 깊이가 있다.
후반부의 극적인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초반에 완급 조절을 잘해야 한다. 비교적 정적으로, 긴 호흡을 유지하며 연주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expressivo라는 표기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있다. 이 곡에서는 비장함보다는 멜랑꼴리하고 차분한 느낌을 전달해야 한다고 했다.
베토벤과 달리, 쇼팽의 음악은 손을 날카롭게 내리치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 끝 단단한 부분을 이용해 꾸욱 눌러주며 또렷한 소리를 내야 한다. 이 섬세함이 쇼팽 연주의 핵심이다.
쇼팽이 자주 사용한 기법인 루바토는 음악적 시간을 표현적으로 늘렸다 줄였다 하며 자유롭게 연주하는 기법이다. 녹턴 8번은 특히나 틀 안에서 자유로움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너만의 이야기를 담아 표현해봐"라고 말하며 내 해석을 강조했다.
쇼팽은 내성적이면서도 섬세하고 소년 같은 성격을 지닌 작곡가였다. 폴란드를 떠나 파리에 정착하면서 느꼈을 그의 감정을 상상하며 쇼팽의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해보려고 했다.
크레센도에서 더 과감하게 빠르게 올려도 괜찮다는 조언을 받았다. 1페이지와 2페이지 초반부의 차이는 악센트인데, 멀리 가려다가도 악센트 부분에서 딱 잡아주는 느낌으로 연주해야 한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성악가가 노래를 부른다고 상상하면서 '파' 부분에서 잠시 숨을 고르듯 연주할 때도 잠시 멈추며 감정을 담아야 한다고 했다. 이는 곡의 흐름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오른손 선율이 명확하게 들릴 수 있도록 엄지를 스타카토로 처리하고, 나머지 손가락으로는 선율을 이어나가야 한다. 녹턴 8번은 정박을 맞추어 연주하기보다는 유연하게, 심오한 감정을 시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이 이곡의 매력이다. 오늘 처음으로 나만의 쇼팽을 연주했다고 사라가 말해준 순간, 큰 성취감을 느꼈다.
오늘 수업에서는 실수도 예전보다 많았지만, 실수는 피아니스트들이 자신만의 감정을 담기 위해 거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사라는 되려 훨씬 좋았다고 나를 칭찬했다. 정확한 연주보다는 실수를 하더라도 나만의 해석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여러번 들으며,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 음악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사라는 관객석 끝에 앉아 있는 할머니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게 연주하라는 조언을 남겼다. 쇼팽의 음악은 섬세하면서도 심오하게 모든 이의 심금을 울릴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마음 깊이 남았다.
오늘은 1년 만에 처음으로 헤드셋을 착용하지 않고 피아노의 자연스러운 울림을 그대로 느끼며 수업을 진행했다. 야마하 사일런트 피아노의 울림이 생각보다 커서 놀랐지만, 이 소리와 함께하는 시간이 참으로 즐거웠다. 사라의 레슨 스타일은 음악을 시각적으로 상상하게 만드는 서정적인 표현이 많아서, 나의 음악적 상상력을 더욱 풍부하게 자극한다.
특히 오늘의 레슨은 이곳 파리에서 내가 추구하는 삶의 태도와도 맞닿아 있어 더욱 의미 있었다. 피아노를 통해 나만의 음악을 찾아가는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