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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 Feb 29. 2024

épanouissement (에빠누이스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나



최근 꽃다발을 선물 받았다. 곧 만개할 꽃봉오리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épanouissement (에빠누이스망) 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개화, 꽃이 활짝 피다 정도로 직역되는 이 단어는, 자아가 발현되는 최고의 기쁨에 사로잡힌 순간 이란 의미로 쓰이는, 실로 벅찬 단어다.





삶이 안정적이고 순탄하게 흘러갔다면 글을 쓰지 않았을 거다. 삶이 요동칠 때, 흔들리고 불안할 때, 글은 언제나 나를 지탱해 주었다. 이제는 좀 알겠다. 이력서를 많이 제출해도 면접이 잡히는 경우는 드물고, 최종까지 가게 되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힘겹게 들어간 회사에서 아무리 잘해보려 노력하고 정 붙이려 이것저것 해도 잘려서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불합리한 것들, 힘든 것들이 디폴트다. 새해 복 많이 받고 내년 목표는 이렇게 저렇게 하자고 들떠서 회식하던 임원분들도 새해 첫날 출근하자마자 당일 해고 통보를 받고 내쫓기는 경우도 많고, 집단은 이익과 이해관계 등에 의해서 움직일 뿐이다. 마냥 친한 것 같던 동료들도 이해관계가 얽히면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된다. 심지어 창업자들도 쫓겨나는 마당에 일개 외국인 신입 직원이 뭐 별 수 있겠나.





2034년,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도와준다고 생각하면 힘이 난다. 이 과정에서의 감정 소모는 필연적일 거다. 아무리 Leetcode 알고리즘 100문제 넘게 풀고, ML DevOps 강의 듣고, 프랑스어도 C2까지 취득한다고 할지라도, 또다시 들어간 회사에서 레이오프 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잘리게 될 수도 있다는 거다.





그렇다고 해서 냉소와 허무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인가? 나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금 80%의 힘을 내며 세상에 나를 계속 던지고, 외부로부터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히 남들이 꺼리는 기술들을 연마하고 나의 세계를 확장해나 가보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0년만 이렇게 하겠다라고 다짐한다.






이력서를 재정비하면서 나만의 경쟁력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봤다. 연구 능력? 코딩 실력? 친화력? 외국어? 다 아님. 내 경쟁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뭐라도 배우고 실행으로 옮기면서 계속 도전하는 능력 같다. 비록 일시적으로 좌절하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는 추진력, 근성이 내 경쟁력이 아닐까 싶다. 가시적인 결과가 없을 때, 애매모호한 상활일 때 오는 불안함을 이겨내고 꾸준히 뚝심 있게 무언가를 해나가는 수극적 수용력. 





99%의 사람들은 외부로부터 거절을 당하면 마음에 상처를 입고 포기를 한다고 한다. 오직 소수의 1%가 다시 일어나서 계속 도전하는 거라고. 예전에 사수 분께서 말씀하시길, 잘하는 사람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끈질기게 남는 사람이 잘하게 되는 거다. 뭐든지 결과가 즉각적으로 나오지 않더라도 꾸준히 오늘의 씨앗을 뿌리는 게 가장 어렵고 대단한 거다 -라는 말씀을 해주셨었다. 그렇지, 다른 것들은 몰라도 그거 하나만큼은 상대적으로 잘하지!





지난 2월은 감정의 파도가 잔잔하게 심장을 때렸다. 뭐... 예상했던 바다. 여전히 흔들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감정이 요동치더라도 일상을 바로 세우는 능력이 생겼다. 비록 저기압일지라도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부정적 감정을 전가하지 않는 것. 슬프더라도 링크드인 프로필을 다시 업데이트하는 것. 흔들릴지라도 학생들한테는 밝은 모습으로 수업을 해나가는 것, 타인의 평가 중 필요한 부분은 귀담아듣고 까짓 거 지금부터 배우면 되지 라는 막무가내의 정신으로 곧장 배워 나가는 것, 지나치게 타인의 판단에 휘청거리지는 않는 것, 또다시 삶의 극소점 (local minimum)에 왔지만, 추운 겨울이 지나면 다시금 꽃이 만개할 따스한 봄날이 올 거라는 걸 알기에 오늘의 쌀쌀한 바람도 마냥 서글프지만은 않다는 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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