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노벨 문학상수상자, 앙드레 지드
난해하다. 에세이도 시도 소설도 아닌 글을 읽다 보니 내가 무엇을 읽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메모장을 읽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낙서를 읽는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중반부로 접어들 무렵 드디어 읽힌다는 느낌을 받았다. 후반부에 가서는 더 잘 읽힌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난 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작가 뭐지? 뭔데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스쳤다.
우리에게 좁은 문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다.
그의 명성에 비해 <지상의 양식>은 그 당시 빛을 발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필자가 난해하다고 느꼈던 그 느낌 때문이다. 그러나 앙드레 지드가 이토록 난해한 책을 쓰게 된 이유를 19세기 프랑스의 예술적 문화적 환경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알 수 있다. 19세기 말엽은 장르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져 가는 가운데 대상을 설명, 묘사하는 리얼리스트 소설이 종언을 고하는 한편 새로운 종합적인 장르를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나던 시기였다.
이성에 의한 합리주의가 지배력을 행사했고 이에 대한 반발로 예술세계에서는 신비, 환상, 난해함을 표출하였는데 <지상의 양식>은 정확히 그 시기에 쓰였다. 따라서 당시의 작품들은 정해진 틀을 벗어나되 이도 저도 아닌, 동시에 그 모두인 무엇이 되려 했다.
그 때문에 난해한 이 책이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난해 하나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보인다. <지상의 양식>을 지나 약 40년 뒤에 집필한 <새로운 양식>까지 다 읽고 나니 더 잘 보인다.
<지상의 양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옥같은 문장들로 가득하다. 개인적으로 책이 더러워지는 것이 싫어 밑줄을 그어가며 읽는 것을 지양하는 편인데, 두고두고 읽으면 좋을 법한 문장들이 많아서 펜을 들고 말았다. 이 책의 8할은 이런 곳곳에 숨겨놓은 문장들이 다 했다고 본다.
지상의 양식은 그런 책이다. 지상의 양식은 병을 앓는 사람이 쓴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회복기의 환자나 완쾌된 사람, 혹은 전에 병에 걸린 적이 있는 사람이 쓴 책이다.
이 책의 서문에 붙인 앙드레 지드의 첫 단락이다. 앙드레 지드는 힘든 시기에 지상의 양식을 집필했다. 틈틈이 볼 수 있는 문장에서도 밝은 미래를 갈구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끊임없이 청춘을 노래하고 응원하며 어루만지며 용기를 준다. 사전적 정의에서 설명하는 ‘청춘’ (십 대 후반(後半)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人生)의 젊은 나이)의 범주에 속해있는 필자가 청춘을 노래하는 앙드레 지드의 주옥같은 문장들에 어떻게 매료되지 않을 수 있을까. 오히려 이십 대 초반에 더 빨리 읽지 못해 아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또한 서문의 첫 단락을 읽고 순간 ‘아파본 자만이 타인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수 있다.’라는 출처는 모르되 어디서 듣고 기억하고 있던 문장이 생각났다. 이 글을 작성한 시점인 앙드레 지드의 27살 청춘도 때때로 힘든 일이 많았었구나 싶었고 기억에 남았던 문장 몇 개를 함께 나누고 싶어 공유한다.
나의 이야기를 읽고 난 다음에는 이 책을 던져버려라 - 그리고 밖으로 나가라. 나는 이 책이 그대에게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욕망 – 어느 곳으로부터든, 그대의 도시로부터, 그대의 가정으로부터, 그대의 방으로부터, 그대의 생각으로부터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기 바란다.
나타나엘이여, 결코 미래 속에서 과거를 다시 찾으려 하지 말라. 각 순간에서 유별난 새로움을 포착하라. 그리고 그대의 기쁨들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말라. 차라리 준비되어 있는 곳에서 어떤 ‘다른’ 기쁨이 그대 앞에 불쑥 내닫게 된다는 것을 알라.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사색하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강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로 말하면, 내 모든 사랑이 새로운 경이를 위하여 매 순간 나를 기다린다. 나는 언제나 새 사랑을 알 뿐 결코 옛사랑을 다시 알아보는 일은 없다.
별 하나하나가 저마다 유난히 아름답게 보이던 그러한 밤을 나는 알고 있다.
아! 청춘-사람이 그것을 가지는 것은 한때뿐, 나머지 시간은 그것을 회상하는 것.
<지상의 양식>에는 서사가 많다. 반면 나는 깔끔하고 담백한 글을 좋아한다. 서사가 많은 글은 귀찮아하는 편이다. 그런 내가 <지상의 양식>을 구석구석 탐독하며 읽어보게 될 줄은 몰랐다. 눈에 대한 묘사, 석류에 대한 묘사(무려 8페이지나 된다), 그리고 피렌체-스트라스부르-로마-파리로 시시각각 옮겨지는 시선 이동은 그곳을 방문했던 과거의 경험과 맞물리며 더욱더 풍부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제공해주었다. 그리고 그 길을 차근차근 따라 가보니 마치 세세한 감각이 깨어나는 감각 여행을 다녀온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떠한 작품을 마주할 때 작가의 의도와 그가 사유하려 하는 것을 수용자인 내가 읽어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고 있던 것 같다.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보다는 해석의 여지를 남겨놓는 것을 좋아하기에 깔끔하고 담백한 글을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상의 양식>의 서사는 나의 이런 은연중의 강박을 무너트려 주었다.
마지막으로 <지상의 양식>과 전체적인 맥락을 같이 하는 앙드레 지드의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이 문장이 곧 <지상의 양식>의 토대가 되지 않았나 싶다.
노래할 것도 없이 그저 모든 것을 열거하기만 하면 되는 그러한 때에 나는 시인으로 태어났으면 좋겠다. 나의 찬탄이 사물들 하나하나에 차례로 내리어 찬송이 나의 찬탄을 증거 했을 것이고 그것으로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었을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