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대륙 최서단, 포르투갈 카보다로카 여행기
30여 개에 가까운 나라를 여행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여행하는 그 순간을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일상생활로 돌아와서 지난 여행을 어떻게 곱씹느냐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기대했고 재밌었던 곳이 다시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기억에서 점점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있고, 기대 없이 갔지만, 두고두고 몇 년이고 생각나는 그런 여행지가 있다.
나에게 포르투갈이 그런 곳이다. 이전에 포르투갈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마카오를 식민 지배했던 나라, 에그타르트가 맛있는 곳 그리고 축구선수 호날두의 나라라는 것 정도였고 이번 여행 일정 중 스페인을 가기 전 잠시 들리는 곳으로 생각했기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곳이다.
인천에서 직항으로 13시간 30분을 비행하여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 도착했다. 문화의 차이를 건물과 사람들의 모습보다는 언어에서 가장 먼저 와 닿음을 느끼는 나는 읽을 수조차 없는 포르투갈어 표지판을 보고 포르투갈에 왔음을 실감했으며 표지판 아래에 표시되어있는 방향 표시를 찾아 리스본 시내로 들어갔다.
2018년 1월이었기에 한창 겨울이었지만 푸르른 나무들이 가로수가 되어 아름답게 길을 꾸며주고 있었다.
에그타르트를 사서 한입 물고, 코 메이르시우 광장에서 앉아 커피를 마시며 주변을 살펴보다가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산타 주 스타 엘리베이터를 탑승하여 리스본의 시내를 구경했다. 그리고 그날은 가까운 호텔을 찾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카보다로카를 가기위한 여정이 시작됐다.
리스본에서 차로 두 시간 남짓이면 도달할 수 있는 카보다로카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장소다. 다른 말로 호카곶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곳은 지도상으로 보면 유럽 대륙 최서단에 볼록 튀어나와 있으며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전 유럽 사람들은 이곳이 세상의 끝이라고 굳게 믿었던 곳 이다.
이러한 역사적 일화들을 듣고 나면 어떻게 카보다로카를 마주해야 하는지 느낌이 온다. 그 시절 카보다로카로 돌아가 그곳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나는 굽이굽이 차를 몰아 드디어 카보다로카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탁 트인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바람은 세찼지만 시원했고 덩달아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카보다로카는 육지의 끝이지만 바다의 시작이기도 하다. 실제로 포르투갈 시긴 루이스 바스 드 카몽이스(Luís Vaz de Camões)는 “여기에서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Onde a terra acaba e o mar começa)”라고 말했으며, 이 글귀는 십자가 아래 돌탑 아래 새겨져 있다.
카보다로카는 이러한 역사적 상징 때문에 의미가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시선을 옆으로 살짝 옮겨보면 깎아지른 언덕과 새파란 바다, 그리고 잔잔한 풀꽃들이 시선을 더 사로잡는다. 높은 건물 하나 없이 탁 트인 곳이기 때문에 일행들과 조금 떨어져 감상해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이곳을 왔다 갔다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카보다로카는 하루 일정이었고, 다녀온 지 1년이 지났지만, 그 후로도 가끔이 아닌 순간순간 꽤 자주 떠오르는 곳이었다. 이곳의 모습과 분위기를 설명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유명 관광지이긴 하지만 다른 유명 관광지에 비해 유명세가 떨어지기도 하고 핫스팟이라던지 랜드마크라 할 것이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사진을 남겨오긴 했지만 실제의 카보다로카 분위기와 느낌을 담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했다.
잔잔한 여행지만이 주는 매력이 있다. 사그라다 파말리아 성당이나 에펠탑을 같은 웅장한 스케일의 건축물과 그랜드캐년 같은 거대한 자연환경을 볼 때 느끼는 압도적인 느낌도 좋지만, 잔잔한 여행지는 나에게 여유와 사색 시간, 그리고 생각거리를 선사한다.
그런 이유만으로도 우리에게 카보다로카를 방문할 핑계는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