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따뜻한 바람이 불기만 하면 어쩌자고 저렇게 성실하게 꽃을 피우는지, 한 해쯤 게으름도 피우고, 귀찮다 싶으면 파업도 하고, 살아있다면 그럴 수도 있지 않나? 그런데도 나무는 봄바람이 코끝에 닿기도 전에 죽자고 꽃을 피운다. 나무의 그 성실함으로 말미암아 가을에 맛있는 과일을 먹을 수 있지 않냐고 하겠지만, 뭐~ 없으면 안 먹으면 되고, 비싸면 또 못 먹을 수도 있지 않나?
괜히 봄에, 꽃에 심술이 나는 날이다.
이게 무슨 되지도 않을 심술이란 말인가?.
작은 애가 이라크로 간 후 3개월이 지났다. 학교를 졸업하고 프리랜서로 일을 할 것인지, 직장을 잡아 들어가 일해야 할지를 두고 몇 번이나 이야기를 나눈 끝에 일단은 어떤 일이 적성에 맞을지 알 수가 없다는 결론과 오라는데 있을 때 돈 많이 준다는 데를 골라서 간다고 떠난 이라크 길이었다. 자주 궁금했고, 가끔 알려 줘서 그쪽 생활을 알았다.
아이가 전화할 때는 대부분 지 속이 터지거나, 서러울 때라 긴장했고, 점점 소식이 뜸해질수록 안도했다.
첫 휴가다. 3개월마다 보름씩 나온다는 휴가를 맞아 이집트에서 만나기로 정해놓고 아이는 아이대로 설렜겠지만 나는 나대로 아주 봄바람이 나버렸다. 아이를 볼 수 있어 좋은 것인지? 피라미드를 볼 마음에 설렌 것인지, 이도 저도 아니면 사무실을 쉬어서 좋은 것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사실은 이 모두가 좋을 것이다.
여행 일정을 잡아두고 이미 혼자되신 양쪽 어머니를 모시고 봄나들이를 다녀왔다. 여행 기간 엄마 집에 우리 강아지를 맡겨야 하니 그게 죄송해서 모시고 바람 한번 쐬 드리고 싶다고 했고, 마침 토요일이라 남편도 아무 일정이 없어 동행하기로 했었다. (일요일은 거의 매주 나쁜 친구들이랑 운동을 나간다. 써글) 그런데 이 남자가 금요일 저녁부터 부쩍 창원에 계신 시어머니를 모시고 같이 다녀오면 안 되겠냐고 묻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두 어머니를 모시고 나갈 계획이었다면 내가 맘을 단단히 먹고 단도리를 했겠지만, 우리 엄마한테 부탁할 게 있어 미리 약을 치는 봄나들이라 내심 ‘저게 또 왜 저러나?’ 했었다. 코대답도 안 하고 내 버려뒀는데 자기 전에 또 어쩔 거냐고 묻고는 내 대답도 안 듣고 자버렸다. 참 나 원
맘 약한 사람이 늘 진다.
아침에 일어나서 먼저 창원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니 너무도 반가이 하시며 엄마를 모시고 창원으로 오라고 하셨다.( 또 어긋났다. 써글….) 결국 아침에 칠암동에 들러 엄마를 모시고 창원으로 갔다. 내 계획은 우리 엄마께서 회를 좋아하시니 남해 벚꽃을 보고 숭어회와 시원한 미역국으로 점심을 먹은 후 분위기 좋은 찻집에서 커피 한잔 하는 코스였다. 그런데 점심은 우리 시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숯불고기 집으로, 데이트 장소는 창원 앞바다에 있는 돝섬으로 바꿔져 버렸다. (또 써글)
우리 시어머니 승!!!(남편과 더불어 창원라인의 일방적인 승리 대 잔치다)
아직도 우리 엄마는 시어머니 앞에서 딸 가진 죄인이다. (나는 내 죄가 무엇인지 아직도 모른다.)
날씨도 꾸무리하고, 유난하게 비도 많고, 꽃샘추위가 많았던 올해라 돝섬의 벚꽃은 필 준비만 주야장천 하고 있었다. 하필 날씨까지 구름이 잔뜩 끼어 쌀쌀한 봄나들이가 되었다. 배를 타고 돝섬에 도착하자마자 안내소를 찾아 휠체어를 빌려왔다. 시어머니께서도 허리가 아주 불편하시긴 하지만 몸이 가볍고, 걸음이 단단하시다. 그런데 엄마는 일단 많이 걷지를 못하시니 지난해 언니들이랑 여행 이후로 관광지를 가면 휠체어를 빌린다. 우리도 편하고, 어머니도 고생이 덜하다. 휠체어를 탄 엄마를 내가 밀고, 시어머니를 챙겨야 할 남편은 내 옆에 붙어 따라 걷고, 졸지에 시어머니만 뒤에 처져서 걸으시는 모양새가 되었다. 나는 신경이 쓰여 죽을 지경인데 눈치 없는 남편은 시어머니와 보폭을 맞출 생각이 아예 없다. 미치겠다. 아~ 우리 시어머니 얼굴이 이미….
이런 불편한 그림을 상상하고 내가 미리 피해 가고자 했던 일인데 저 인간이 기어이 같이 가자 하더니 이 그림을 만들고 만다. 환장할 노릇이다.
어색하게 섬을 한 바퀴 돌았다. 평소 같으면 남편이랑 둘이 교대로 휠체어를 밀면 덜 힘들었을 일에 장모 휠체어나 밀고 다니더란 소리를 듣게 할까 혼자 오르막까지 밀었더니 나도 기운이 다 빠졌다. 시어머니를 댁에 모셔다 드리고 이것저것 먹을 걸 잔뜩 싸 들고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엄마랑 같이 지냈다.
이미 저 웬수같은 남편 덕분에 양쪽 어머니를 다 모시고 불편한 여행을 다녀왔던 적이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되었으니 벌써 9년 전의 일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듬해 혼자되신 우리 엄마와 둘이서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겠노라 했더니 무심하게 그냥 다녀오라던 남편은 그 해 설날 시댁에 가서 홀라당 내 계획을 어머니께 일러바쳤다. 너무도 솔직한 우리 시어머니. 당신께서는 해외여행보다 제주도가 더 좋더라는 말씀을 하셨고, 덕분에 나는 효부가 되어야 했다. 다 눈치 없는 남편 덕분(?)이다. (세 번째 써글)
그렇게 며느리로, 딸로 두 어머니를 모시고 제주를 다녀온 이후로 사돈지간이라고는 하나 좀 편해진 사이라 일 년에 두서너 번 두 분을 같이 모시고 바람을 쐬곤 했다. 그런데 엄마의 다리가 말썽을 부리고부터는 두 분의 보폭이 달라졌고, 이젠 엄마는 휠체어에 앉아 가셔야 하고, 시어머니는 뒤따라 걸어오셔야 하니 이게 결코 편한 모습이 아니게 되었다. 나는 또 중간에 끼어 내 엄마 휠체어를 당신 아들이 밀게 한다는 말이라도 날까 지레짐작으로 시어머니 눈치를 보게 되었고, 이런 눈치조차 없는 남편은 또 자기가 밀어보겠다고 나서고…. 아이고 신간스러워라….
어머니와 차반으로 싸 온 음식들로 저녁을 먹고 ( 내려오는 길에 차에서 살짝 낮잠을 주무시더마) 요새는 잠을 못 잔다는 둥, 어젯밤도 하얗게 세웠다는 둥 하소연이 길어지는 엄마에게 수면제 한 알을 드렸더니 깊게 주무셨다. 주무시는 엄마를 보면서 내가 몇 번이나 더 이런 나들이를 같이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젠 시어머니와 엄마를 한 번에 모시고 나서지는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나저나 저 웬수같은 남편이 사고를 안 쳐야 가능한 일 있은데…. 그래 줄랑가 그게 더 걱정이긴 하다. 2024.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