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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el Apr 02. 2024

3월과 이별하며.........

2023년 봄을 보내는 날의 기억 

내게 한 해의 시작은 3월 1일부터다.


 유관순 누나도 아닌 내가 굳이 3월 1일에 이렇게까지 의미를 두는지 모를 일이다만 아마도 내 사회생활의 처음이 학교 입학을 하면서부터 시작된 연유가 아닐까 싶다. 시골에서 집을 나서서 또 다른 구성원으로 들어갈 일이 학교 가는 거 말고 뭐가 있었을까? 


그러니 내 새로움은 언제나 3월부터다.     


2021년 막 가을이 시작할 때 암 진단받았고, 그해 가을이 깊어가는 날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받기 전에는 아프지 않았는데 막상 수술받고 나니 아파서 죽는 줄 알았다. 체력도 몸에 암을 안고 있을 때 보다 몸에서 암을 떼 내고 나서 더 나빠졌고, 맘도 덩달아 무너져 내렸다. 직장을 쉬면서 열심히 운동하고, 좋은 음식을 먹었으며, 불필요한 물건들을 갖다 버렸다.


그런 시간 틈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주식이 얼마나 올랐는지? 아파트 가격은 어디가 오르고 있는지? 누구 줄을 잡아야 승진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한 관심도, 그것들에 관심을 가질 만큼 주머니도, 맘도 얇은 사람들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와 비슷한 종류의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2022년 2월 매화를 보러 가고, 복수초를 찾아다녔다. 사무실에는 주말까지 맘 쓸 일을 만들지 않았으니 주말만 되면 사람들과 어울려 꽃을 보러 다녔다. 꽃만 봤겠는가? 꽃을 보며 시를 쓰는 사람들은 시를 쓰고, 산문을 쓰는 사람은 산문을 쓰기도 하며 각자의 깜냥에 맞춰 봄놀이를 즐겼다. 그렇게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계기가 되었다. 지리산 자락의 염소농장도 꽃구경 다니는 사람들을 따라간 그들에게는 익숙하고, 내게는 새로운 장소였다.     


지리산 한 골짜기를 더 들어가 이젠 길도 없겠다 싶은 곳에 있는 염소농장에는 봄에는 봄꽃이 천지고, 여름에는 시원함이 천지에 널렸다. 지난 늦봄에는 마당 평상에 앉아 개울 건너편에 피는 함박꽃(산목련)을 보기도 했다. 아침나절에 조그맣게 꽃잎을 벌려놓았다 해가 점점 높아질 때마다 조금씩 더 꽃잎을 벌려 가는 함박꽃을 슬로비디오를 보는 느낌으로 평상에 앉아 봤었다. 계곡을 가득 메운 산수국도, 눈처럼 휘날리는 때죽나무꽃도 그곳에만 있는 모습이었다. 작년 한 해, 봄부터 늦여름까지 그 사람들과 어울려 주말이면 지리산 자락에서 보냈다. 덕분에 많이 건강해졌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시 겨울이 왔고, 나는 예전의 나로 살아가고 있다. 

내가 아픈 사람이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어떤 일도 피해 가지 않았으니 몸은 고단했고, 일 년을 넘게 먹은 호르몬제 부작용으로 제일 먼저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았다. 처음에는 손가락이 잘 접히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팔까지 꽁꽁 아리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단순하게 안 접히는 문제에서 가끔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일이 부대낄 때도 있다. 이러다 이렇게나마 일을 하는 게 불편해질 수 있고, 글 쓰는 일도 포기해야 할 시간이 다가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끔은 두렵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의사가 먹으라고 하면 개똥이라도 열심히 주워 먹어 가면서 생명 연장의 꿈을 꿔봐야 하지 않겠는가?


 겨울이 되면서 나를 지리산으로 데리고 돌아다녀 주던 친구는 긴 겨울잠에 들어갔고, 나는 또 지리한 겨울을 보냈다. 그렇다고 곰처럼 구들장을 지고 방에서 나오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만남이 뜸해졌다.  

   

2월 복수초가 피기 시작한다고 연락이 왔다. 겨울잠에서 깨어나 연락해 온 친구에게 감사했다. 다시 시작된 봄꽃 여행은 지난해보다 더 경이로웠다. 알고 있는 맛이 더 참기 어렵듯, 이미 알고 있던 날들의 감동이 더 기대되고 좋았다. 작년에 만났던 장소에 올해도 여전히 피어난 복수초는 햇살을 받아 앙증맞았고, 봄비를 맞아 물방울을 머금은 매화, 산길을 다 막아선 얼레지 군락지를 찾아 몇 번의 꽃 나들이를 함께 하고 지난 주말 휘날리는 벚꽃의 마지막 인사로 2023년 3월과 이별을 했다. 올해는 봄비가 제법 내리는 날 지리산의 아지트 처마 밑에서 화전을 부쳐 먹느라 산속이 소란스럽기도 했었네. 


이 얼마나 살아 펄떡이는 봄날의 모습인가?


3월과 이별을 했듯이 다시 봄잠에 드는 그도,  그 옆에서 일 년 내내 가 겨울잠을 자는 곰들인 그들과도 또 짧은 이별을 한다. 그들은 또다시 노각나무꽃이 필 때나 돼야 연락이 올 것이다. 꽃의 만개를 기다리듯 그들의 소식을 나는 또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꽃도, 그들도 때가 되어야 내게 올 것이기에.  


    2023. 3월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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