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에 걸린 아내를 위해, 라면 밖에 끓일 줄 몰랐는 남편이 요리를 하고, 그 레시피를 기록하듯 SNS에 올렸던 사연들을 책으로 만들었다.
요리에 관해 이야기를 하던 중 겨울이 되면 유난하게 목도리가 어울리는 남자가 이 책을 소개했었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며 차일피일 미루다 제주도를 다녀올 일이 있어 e-BOOK으로 내려받아 오가는 비행기 안에서, 제주도의 풍경 좋은 찻집에서 읽었다. 제주도의 그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중년의 여자가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눈물을 질질 흘리고,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면 그걸 보는 이들은 필경 다른 상상을 했으리라.
혹 11월 어느 날, 제주도에서 그런 여자를 보신 분이 있었다면 무슨 대단한 사연이 있어서가 아니라 책을 읽고 그 감정선을 따라가다 콧물이 흘렀노라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
나는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 ‘오늘 조금 매울지도 몰라’에서도 비슷한 말이 나오는 것 같은데, 나에게 요리는 대화이고, 계절의 맞고 보내는 의식이다.
봄이 오면 봄에 새순이 올라오는 것들로 밥상을 준비한다. 아침에 재래시장엘 나가보면 코끝에서 부딪히는 바람은 여전히 겨울인데 생선가게며, 채소가게에는 벌써 봄 냄새가 올라오고 있다. 어차피 다 죽은 생선들이 얼음 위에 누워 있는 가판대라 할지라도 어째 봄이 되면 생선의 때깔이 다르다. 더 분홍빛을 띠고, 싱싱하다. 나에게는 그렇다.
그런 날이 되면 양손 가득 봄 것들을 사 들고 온다. 취나물은 약간 아삭하게 데쳐 어간장에 조물조물 무친 후 참기름과 냉동실에 빻지 않는 깨소금을 손바닥으로 으깨서 넣어 살살 무쳐 낸다. 머위 순은 줄기가 투명해질 때까지 데쳐 건져낸 후 퍼뜩 찬물에 헹궈야 한다. 안 그러면 줄기가 물렁물렁해져 한 맛 덜하다. 물기를 잘 짜내고 생된장을 조금 넣어 아주 조물조물 된장이 머위 순에 스며들게 무친다. 여기는 참기름은 느끼하다. 깨소금만 같은 방법으로 넣어 살살 무친 후 그릇에 담아둔다.
그리고, 이제 갓 새순이 올라오는 부추는 꼬리 부분에 지저분한 것들이 많이 붙어 있으니 일일이 손질해야 한다. 매우 귀찮은 작업이긴 하지만 꼭 필요한 작업이다. 손질이 잘 된 부추는 두세 번 찬물에 씻어 물기를 적당하게 빼주면 된다. 부추무침도 역시 어간장이 맛있다. 어간장으로 살짝만 간을 한 후 참기름과 깨소금만 넣으면 된다. 마늘을 좋아하는 사람은 넣어도 되지만 이미 부추가 마늘 이상으로 향도, 맛도 강하니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이미 이 사람 저 사람한테 조리법을 다 보냈는데 인제 보니 부추겉절이에 고춧가루가 빠졌다. 반드시 마른 고춧가루를 솔솔 뿌려서 맛을 보태야 한다.
이젠 이것들을 한 번에 버무릴 된장을 자작하게 끓여야 한다. 된장국에는 멸치와 다시마를 아끼면 안 된다. 맑은 물에 멸치와 다시마를 듬뿍 넣고 충분히 육수를 우린다. 그리고 된장을 풀어 간을 맞추고, 물이 많으면 안 된다. 풀어놓은 된장에 냉장고에 있는 모든 버섯과 가을에 뽑아서 곪아가고 있는 무도 얇은 넓적 썰기를 해서 넣으면 된다. 그리고 반드시 애호박은 들어가야 한다. 보글보글 끓어 채소에 맛이 들면 두부와 청양고추 두어 개 썰어 넣는다. 그때쯤 이미 침샘이 터져 오다가다 손으로 나물을 집어 먹고, 된장은 간 본다고 두부 서너 개는 건져 먹고 있다. 실제로 해 보면 누구나 그렇게 된다.
반찬을 하는 동안 고슬고슬하게 밥이 지어지고, 그걸 큰 스테인리스 양푼에 세 주걱 정도는 덜어 만들어 놓은 나물을 곱게 올린 후 된장을 넣고 푹푹 비벼야 한다. 그렇게 먹고 나면 이삼일 뒤에 눈에 다래끼가 난다. 어른들은 비린 걸 못 먹어 생기는 거라 말씀하셨지만 약을 사러 간 약국에서 선생님께서 최근에 과식하신 적 있느냐고 물으시면서 위에 갑자기 무리를 주면 눈에 다래끼가 난다고 하셨다. 내가 매년 봄만 되면 다래끼가 나는 이유를 그때야 알았다. 그러니 봄에 새 나물들이 난다고 해서 자주 해 먹으면 살이 문제가 아니라 다래끼가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봄이 지나고 하지가 되면 감자가 지천이다.
몸에 병이 붙어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닌다. 수술하고 식이요법을 병행해야 한다며 영양사를 만난 자리에서 제발 구황작물을, 과일을 상자로 사 쟁여 두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지만 어디 사람 사는 게 그런가? 누군가 감자 농사를 지었다고 하면 5킬로그램짜리는 어째 좀 서운하다. 적어도 10킬로그램 상자는 사 줘야지…. 누가 양파를 수확했다고 연락이 오면 달랑 두 식구 살림이면서 한 망으로 산다. 그게 시골살이의 참 맛이다. 그렇게 감자를 사면 그때부터 주야장천 감자를 삶고, 감자전을 부친다.
감자는 껍질을 까고 물을 적당하게 붓고, 왕소금 한 꼬집을 넣어 감자가 터질 만큼 삶아야 한다. 그리고 물이 거의 없어질 때쯤이면 유기농 설탕을 감자 위에 솔솔 뿌려 살살 냄비를 까불어야 한다. 까불어야 함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지 도대체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까불어야 한다. 그래야 감자 표면으로 분이 하얗게 올라오고 감자가 포슬포슬해지니까 꼭 필요한 작업이다.
삶은 감자랑 다퉈 볼 만한 게 감자전이다. 감자를 깎아 물에 깨끗하게 씻은 후 강판에 간다. 팔이 많이 아프니 반드시 남편한테 시킨다. 세 개쯤 갈면 감자전 두 쪽이 나온다. 잘 갈아진 감자를 체에 놓고 숟가락으로 꾹꾹 눌리면 물기가 깨끗하게 빠진다. 감자를 볼에 담아 두고 체에 걸러진 감자 물을 그대로 5분쯤 두면 밑에 전분이 가라앉는다. 위에 물을 따라버리고 그 전분이랑 감자를 섞는다. 그런데 이걸로 바로 전을 부치면 다 찢어진다. 그래서 살짝 넣은 듯 안 넣은 듯 밀가루를 섞는데 절대 요리하는 사람만 알아야 한다. 지금도 남편은 우리 집 감자전은 감자만 들어가는 줄 안다. 그렇게 달궈진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감자 반죽을 한 덩어리 올린다. 굳이 처음부터 얇게 부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아래가 조금 딱딱해지면 뒤집어 뒤집기로 꾹꾹 눌러주면 종잇장처럼 펼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작업이 하나 있다. 감자전은 중간마다 구멍을 내서 쭉쭉 눌러주면 그 중간 부분까지 바삭바삭한 맛을 즐길 수 있다. 그렇게 감자를 두 박스쯤 먹어 치우다 보면 탄수화물 과다 섭취로 여름옷이 안 맞다. 이렇게 또 옷을 여름옷을 새로 사는 거로 이래저래 지출이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