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나만 이럴까?
태어나면서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살다 죽을 것이다.’라고 정해놓은 인생이 있을까만은 그래도 상상했던 삶과 너무도 다르게, 그것도 별 걸 다 하며 살고 있는 내가 가끔 당혹스럽다.
스무 살 시절, 학교를 졸업하면 취직해 돈을 벌고, 결혼도 하며 늙어갈 것이라 좋은 것만 상상했을 것이다. 체험 삶의 현장을 들어서니 남의 재떨이를 씻기도 하고, 씻은 재떨이에 물 묻힌 화장지를 깔아 담뱃재가 날리지 않게 단도리까지 해야 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결혼은 또 어떤가? 백마 탄 왕자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고만고만한 인성과 능력을 갖춘 남자가 내 남편이 될 것이라 확신했었다. 그리고 결혼을 하면 봄이 지나 여름이 되듯 당연하게 아들도 낳고, 딸도 낳아 오순도순 살 것이라는 당찬 기대도 했지 싶다. 그뿐일까? 적당한 시기에 아파트 분양도 받고 자동차도 사고, 남들이 간다는 해외여행도 다니며 그야말로 백설 공주처럼 행복하고 살았답니다로 끝날 줄 알았지. 그대가 저놈이 되고, 원수가 될 줄도, 내가 아들을 못 낳을 줄도(이건 나의 절망이 아니라 내 어머니의 절망이었다), 또 이쁘게 낳은 딸들이 골라서 골라서 내 속 뒤집는 일만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내 그림 속에 없던 풍경이었다.
그랬다.
처음 ‘나는 이런 일도 해 봤다.’라는 글감을 접하고 아주 특별한 무엇인가를 찾으려 해 봤다. 이것도 새로웠고, 저것도 나만 해본 일이지 싶었는데 또 누군가에게 나는 그랬노라 이야기를 해보면 더 특이하거나, 그 정도의 일은 거의 경험하고 살고 있었다. 그러니 나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모두 자기가 특별하다. 더 특별하고 기가 찬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고 쳐도, 그래도 뉴스에 나오는 상황보다는 나을 것이니 그냥 내가 볼 때는 그럴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더 특별했다면 뉴스에 나왔지 않았을까?
생명의 무게를 저울에 달면 개미나, 하루살이나, 사람이나 그 무게가 똑같다고 했다. 그처럼 삶의 무게 또한 나나, 당신이나, 그들이나 다 비슷하게 무겁고 또한 귀하지 않을까? 그러니 내 삶의 여정에서 만났던 어이없음이 비슷한 사회구조 속에 살고 있는 그들의 삶에도 분명 있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들에게도 나와 비슷하게 감당하기 어려운 삶이 굴곡이 있었으리라 생각하니 어제까지 얄미워서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었던 동료에게까지 괜한 친밀감이 생겼다.
지난 주말 직장 후배의 하소연을 위장한 공격적인 전화를 받았다. 내용이야 자기의 능력을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 상사들에 대한 서운함이었고, 더 깊이 들어가면 나에 대한 서운함을 항의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기분이 상했고, 나중에는 그 지옥을 헤맬 마음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해한다고 해서 내가 그 생각에 동의한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이해라기보다는 그 후배의 맘속에 들어앉은 지옥이 보였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나는 특별했고, 열심히 했고, 노력했노라는 말을 할 수 있을 때는 극한의 경험을 안 해본 이들만 할 수 있는 말인걸 아직은 저 젊은 친구는 모르는구나 싶어 그 얇은 삶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래도 나는 마지막 말은 삼켰다. ‘이 놈아 너 만큼 일 안 하고, 고생 안 하는 사람 좀 데리고 와 봐라.’하고 싶은 걸 누르느라 무던히도 힘들었다.
나는 34년을 넘게 직장에 다니고 있고, 두 딸을 키워 사회로 내보냈다. 그 시간 속에 어찌 기쁨만 있었고, 환희만 있었을까? 한 가닥가닥 풀어보면 너덜거리는 실일 것이나 그걸 아슬아슬하게 씨실과 날실로 묶어두니 그럴싸한 천이 되고, 옷이 되듯 내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시인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고 했지만 우리네 삶이 꼭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자세히 보면 비극임에도 대충 보면 희극이 많고, 잠깐 보면 좋은 사람도 오래 보면 징글징글해지는 상황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니 우리, 현재 너무 지옥이다 싶어도, 이런 일까지 하면서 내가 여기 붙어 있어야 하나, 이 남자랑 살아야 하나 싶어 질지라도 나의 삶을 대충 바라보고 있는 이들에게 나는 꽃밭에서 벌이 날아든다고 짜증을 내는 사람쯤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보면서 살자. 위로가 될지 어찌 알겠는가?
또 모르지. 내가 바라보는 어느 방향에서는 명품을 휘감고 남편이랑 해외여행 간다고 나서는 이가 실상은 비행기 타기도 전에 이번 여행만 다녀오면 반드시 이혼하고 만다고 수 없이 결심 중일지 또 어찌 알겠는가? 부러울 것도, 아쉬울 계산기 두드려 보면 다 거기서 그기라고 오늘 나는 또 나를 위로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