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을 나온 교육생

진격하는 B급들

by feel

교실을 나온 교육생

한 달이 넘는 교육을 받은 기회가 학교 졸업하고 처음이지 않을까?


인재원에 들어올 때 주야장천 남은 시간인 줄 알았고, 3일 남은 지금은 무슨 시간 도둑이라도 다녀간 듯 허망하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머....


30년 넘는 시간, 그 망할 놈의 복무점검에 몸이 묶여 책상머리에서 코를 박을지언정 밖으로 뛰쳐나가지는 못했는데 오늘 내가 무슨 용기를 냈는지? 비가 와서 그랬을 것이리라.


3시간 연강짜리 수업에 중간 쉬는 시간 가방을 챙겨 나왔다.


대단한 결심도 없이 세상밖으로 나온, 동화책 속 마당을 나온 암탉 정도된다. 마침 비까지 내려 영락없는 그 꼴이다. 하지만 이건 누군가 나를 볼 때 그렇고 나는 자유를 향해 뛰쳐나온 마다가스카르의 알렉스 픽쯤이다.


좀 모자라 보여도 스스로는 대견했다.


무악산도립미술관에서 “진격하는 B급들‘’ 이란 제목으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아침 뉴스시간에 들으며 이번 교육 끝나기 전에 들려보고 가리라 했던 일을 차일피일 밀어놓고 있던지라 땡땡이친 김에 그쪽으로 나섰다.


‘그런데, 누가 급을 나눴죠?‘


그러게나 말입니다. 5개의 테마로 전시회는 열리고 있었고 3번째부터 내가 그들임을 완전히 동화되는 순간이었다.


비키니를 입고 싶은 88 사이즈, 속옷이 똥꼬에 낀 88 사이즈들의 고통.

그리고 4명의 늙은 게이샤의 삶의 철(화장하는 모습, 웃음을 연습하는 그녀들)

퇴직 후 일본의 시골마을에서 여유로운 은퇴자의 삶을 하루아침에 벗어던지고 미서부를 40대 애인과 바이크를 타며, 목젖이 다 보일만큼 황홀한 웃음을 웃을 줄 아는 80대의 할머니..... 과연 그녀들을 그들이 B급이라고 누가 정할 수 있냐고?


나도 그래... 내 속에 말캉거리는 것들을 누가 감히 ‘겨우’라 할 수 있겠냐고?

미술관을 나서며 아무도 동참하지 않을 B급 연대를 결성했다.


미술관 1층에서는 똥을 주제로 동화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한테 똥, 방귀는 여전히 웃음 포인트인 듯하다. 마침 어린이집에서 단체 관람을 왔는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어른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저렇게 웃었다면 분명 쫓겨났을 일이다, 그래 저들은 그냥 천사인 것이다.


미술관을 돌아 나와 ‘오늘 제빵소’로 향하는 길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식당이 눈에 띄었다. 다슬기 탕을 주메뉴로 하는 집이다. 식당 뒤편에 다목적문화센터가 있어 주차를 하고. 들어서니 다행스럽게 점심시간이 살짝 지난 시간이라 빈자리가 있었다. 혼자 식사를 할 때 맛집의 경우 자리가 없어 모르는 사람과 합석해야 할 경우도 있는데, 사실 모르는 사람과 마주 앉아 밥을 먹는 게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식당에 사람이 북적이는 데는 그 이유가 분명히 있다. 다슬기 국물에 얇은 수제비와 부추, 적당한 청양고추 다진 게 살짝 들어있어 시원 칼칼했다. 수제비 양이 많지 않으니 공깃밥이 딸려 나왔다. 밥을 조금 말아먹으니 또다시 별미다.


굳이 빵집을 갈 필요는 없었지만 커피는 한잔하고 싶었다.

아름드리나무들이 가득한 계곡, 빵집보다 평상을 펴놓고 닭볶음을 파는 집이면 더 익숙할 풍경이다. 한적한 숲에 있다고 하여 그 내부까지 한적한 집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네이버에 올라온 집이라면. 세상사람 다 그 집에 몰려 앉아 있고 나는 그 사람들 중 한 사람 일 뿐이다. 그 한 사람으로 끼여 커피 한잔 마시고 맛있어 보이는 빵 몇 개 담아 다시 교육생으로 스멀스멀 숨어들었다.


교육원에서는 내가 땡땡이치고 나갔다 온 줄을 내 옆 사람만 알고 있었다. 즉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내 딴에는 어마무시한 용기를 내서 일을 쳐도 세상의 움직임엔 아무 영향을 주지 않았다.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니, 문을 열고 나서는 일에 망설이지 않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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