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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아 Apr 30. 2022

2. 포트폴리오를 위한 포트폴리오

학원에 다니려면 시험을 봐야한다고요?

UI/UX가 돈이 된대


현재는 비록 하찮더라도 ‘디자인’을 제대로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지성 속의 선택. 그 선택은 인생 중 몇 안 되는 거대한 결심임이 분명했다. 손이 덜덜 떨릴 정도였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일주일은 죽은 사람처럼 잠만 잤던 것 같다. 주어졌던 길을 제대로 걷지 못해 이런 도전을 감내해야 하는 내가 미웠다. 하지만 눈을 뜨지 않으면 휴대폰 요금을 낼 수 없었다. 문득 정신을 차린 나는 네이버에 '디자인 취업'을 검색했다. 답은 쉬웠다. 'UI/UX 디자인을 배워야겠다'는 것이었다. 왜였냐고? 평균 연봉이 가장 높았다.


또한 UI/UX 디자이너는 혁신과 관련된 일자리로 분류되어 내일 배움 카드로 용돈을 받으며 배울 수 있는 코스들이 상당수 개설되어 있었다. 당장 하반기 들을 수 있는 수업들을 검색했고, 문의했다.


그러나 만만치 않았다. 평이 좋은 학원들은 시험을 봐서 수강생을 선발한단다. 시험에 붙지 못하면 기초과목들을 따로 돈을 내고 수강해야 했다. 맙소사. 또 시험을 봐야 한다니. 옆 방, 은퇴를 앞둔 아버지가 틀어둔 TV 소리가 와글와글했다. 수아야, 차근차근히 준비해. 라고 말하는 그의 힘없는 모습이 아른거렸다. 아버지, 어떻게 차근차근하겠어요? 이미 실패밖에 없는 인생인데.


나는 결국 시험을 보지 않아도 등록할 수 있는 학원에 등록했다. 동시에 개강 전 선행할 수 있는 간단한 툴 수업을 다시 검색했다. 업계에선 '스케치'라는 프로그램을 쓴다고 하더라. 스케치로 검색하던 중, 탈잉에 개설되어 있는 올인원 강좌를 발견했다. 프린시플과 애프터 이펙트까지 써보며 전체적인 프로세스를 배우는 수업이었다. 너무 듣고 싶어서 나는 다시 쿠팡 알바를 뛰었다.


쿠팡이 미운 마음과, 쿠팡이 있어 다행이라는 마음. 로봇보다 싼 인력이 되었다는 자괴감과, 아직은 로봇이 비싸 다행이라는 마음. 그렇게 나는 머릿기름 자욱한 벽에 기대 마지막 쪽잠을 잤다.



포트폴리오를 위한 포트폴리오


기대가 컸기 때문이었을 거다. 국비지원 학원은 형편없었다. 수업은 퍼블리싱 위주로 진행되었는데, 이미 생활코딩 정주행으로 다 아는 부분을 아주 느리게 배우는 구조였다.


반면, 탈잉을 통해 들은 스케치 수업은 아주 유익했다. 현업 종사자 선생님께 기본적인 해상도에 대한 이해부터 추천 도서, 준비법까지 배울 수 있었다. 그분께 학원에 대한 고충을 털어놨다. 일단 포트폴리오 준비를 해보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감사한 인연이다. 학원의 지루한 수업을 견딜 수 없었던 (그럴 시간적 여유도 없었던) 나는 그 길로 학원에 교재를 반납했다.


그리고 뒤이어 만난 알고리즘의 인연. 아카데미 정글이라는 학원에서 '후불제' UI/UX 디자이너 취업 코스를 운영한다는 광고를 봤다. 당장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나에겐 정말이지 매력적이었다. 간절한 마음에 상담을 하러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준비된 포트폴리오와 자기소개서가 필요했다. 그렇다면 합격하려면 어느 정도로 해야 하나요? 학원 홈페이지에 있는 포트폴리오 몇 개를 추천받았다. 마감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잠을 못 자겠더라. 돈을 당장 지불하지 않고 배울 수 있는 기회. 나의 첫 포트폴리오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생애 첫 리디자인 - YBM NET


상담과정에서, 비전공생이니 UX 기획을 함께 하는 방향이 좋을 수 있겠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때문에 내게 있는 기획력을 최대한 발휘해 이유 있는 디자인을 만들고자 했다. 유저의 불편과 사측의 니즈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YBM의 현 상황과 유저의 반응을 열심히 구글링 했다. 또한 이전 만났던 현업 종사자 선생님의 포트폴리오를 뜯어보며 구조를 살펴보고, 최대한 핏을 맞추려 노력했다. 장표 구성은 거의 선생님의 작업을 클론 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저의 니즈와 비즈니스 니즈에서부터 첫 작업을 시작하고자 했던 사고방식은 지금 프로덕트 디자인을 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도움이 되고 있다. (2019년 후반, 프로덕트 디자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흔치 않았다.) 운이 좋았다.


  



본격적인 포트폴리오 빌드, 취업과정 시작.


첫 포트폴리오를 만들며, 내가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UX 기획을 배우는 것이 필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때문에 라이트 브레인 조성봉 이사님이 강의하시는 기획 강의에도 등록했다. 아버지의 TV 소리를 뚫고 옆방으로 전진한 성과였다. 수업 듣게 50만 원만 주세요. 그 용기를 주었던 막걸리 한 잔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간절히 원했던 취업과정, 일명 '타잔스쿨'에는 결국 합격했다. 아직도 첫 수업을 들으러 갔던 날이 생생하다. 첫눈이 온 다음 날이었다지. 주님의 종이 되겠다 선언하며 웅장한 삶이 시작된 바울처럼, 디자인을 선언한 이후엔 마치 운명교향곡이 BGM으로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적어도 살아있었음을. 모종의 용기를 낼 수 있었던 모든 여건들에 감사를. 여전히 돈은 없었지만.





2019. 11.20 : UX/UI 취업과정 입과 당시의 일기


첫눈이 온 다음 날이라지. 새로운 과정 개강을 맞이하여 일부러 혹은 억지로 서태지를 들었다. 서태지 5집과 8집과 함께 학원으로 첫 출근. 거의 서른이지만 마치 반올림의 출연자가 된 것처럼 열정적으로 찬 공기를 마실 수 있었다. 그 어떤 때보다 서태지를 비롯, 대한민국의 음악들에 감사하는 시간이었다.


UX 기획 수업을 듣고서 마주한 GUI 위주의 수업은 내가 한국에서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림의 센스, 컬러의 센스, 손의 빠름, 등등. 기획을 하는 동안 고려하지 않았지만 고려해야만 하는 장벽들이 눈을 가렸다. 첫 번째 과제를 받고 콘셉트를 정한 후에도 방황하는 내 손이 정말 애꿎었다.


사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나를 설명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 일러스트를 그리는 감각을 늘린다고 해서 몇 년 동안 그래픽 작업을 한 디자이너들을 이길리 만무하므로. 내가 혹 돈 주고 데이빗 호킨스를 고용해 작업물을 그린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정말 그렇다면 어떤 방면에서는 앞지를 수 있겠지. 그래도 나 스스로 할 의지와 실력이 길러질까... 모르겠어)


그래도 나는 나의 가능성을 믿는다. 노력을 하면 더 잘 그릴 수 있다고. 하지만 내가 정말 욕심을 낼 부문이 어디인지 아직 명확히 청사진이 그려지지는 않는다. 마케팅 수업을 처음들을 때 느껴졌던 기시감이 느껴진다. 신학은 마케팅인데? 마케팅은 UX인데? UX는 UI와 같은 호흡을 하는데, 무엇이 산업을 나누지?


그 산업을 나누는 기준이 연봉/지위/책임 상, 사회의 권위와 위계에 크게 의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 더욱 헷갈린다. 나도 남들처럼 이왕 가장 좋은 시작을 하고 싶다 보니, 어디에 포커스를 맞춰야 할지 혼란하다.


어찌 되었든 12월까진 내게 부닥친 기술의 영역을 숙지하는 데 중점을 둘 생각이다. 세 가지. 그 세 가지는 “1. UX기획 프로세스 2. Java script 까지를 이용한 포트폴리오 사이트 빌드업 3. Ui-Gui 툴 및 디자인 감각”이다.


최대한 세 가지의 밸런스를 언, 수, 외(아... 국수영^^)처럼 길러간다면 시장이 원하는 방향이 어쨌건 내 강점을 찾고 집중할 수 있겠지. 너무나 쉬운 말이고 정답 같은 말일 수 있겠지만.


그러나 기억할 것. 내겐 또 하나 잊지 않고 함께 가져가야 할 짐이 있다. 앞으로 찾아나갈 새로운 가능성 외에, 내가 지금껏 거쳐왔던 생을 가능성으로 만드는 것. 기시감을 해결하고 내 삶의 맥락을 당당히 꺼낼 수 있게 만드는 것. 곧 서른인 채 비전공자로 아무 거리낌 없이 현직자들에게 말을 걸 수 있도록.


짐이 아닐 수 있을까. 새로운 인사이트가 될 수 있을까. 학창 시절 가장 열심히 읽었던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이 계속 떠오른다. 메모 메모.


어찌 되었든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할 건 허리가 아프지 않도록 ‘어떻게든 무거운 것을 드는 것’과 그를 지속할 수 있는 ‘성실’입니다.





Only Lovers Left Alive
* 사랑이 아니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제 좌우명이에요.

동네알바, 알바 구인구직 시장을 혁신한다
* 제가 만들어가는 서비스를 이 세상에 꼭 필요한 것으로 만들겠다는 주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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