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는 건축 설계 공모전 마감일이 임박하면서 동아리 방에서 밤을 새우는 날이 부쩍 늘었다.
밤샘 작업으로 그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애써 웃어도 지친 기색이 감춰지지 않았다. 살도 조금 빠진 듯했다. 지수는 그런 현우를 보는 것이 안쓰럽고 걱정스러웠다. 그의 꿈을 향한 열정은 아름다웠지만, 그 열정이 그를 지치게 하는 모습은 마음을 아프게 했다.
어느 날 저녁, 지수는 현우와 동기들이 야식으로 먹을 간식을 바리바리 사 들고 건축학과 동아리 방으로 향했다. 동아리 방문 앞에 다다르자, 안에서 쉴 새 없이 울리는 노트북 타자 소리와 함께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지수는 조용히 문을 살짝 열었다. 예상과 달리 넓은 방 안에는 현우 혼자만 앉아 있었다. 빼곡하게 쌓인 설계 도면 더미와 복잡한 모형들, 그리고 널브러진 스케치 도구들 사이에서, 그는 머리를 헝클어뜨린 채 노트북 화면에 코를 박고 있었다.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외롭고 위태로워 보였다.
"현우 오빠…?” 지수가 숨죽이듯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현우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더니, 지수를 발견하고는 피곤했던 눈이 놀라움으로 가득 차 동그랗게 커졌다. 하지만 이내 그의 얼굴에는 피곤함 대신 반가움과 어린애 같은 기쁨이 물결쳤다. 그의 입가에 번진 환한 미소가 동아리 방 안의 차가운 공기를 녹이는 듯했다.
"지수야! 네가 여길 어떻게…!”
그는 앉아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지수에게 성큼 다가왔다.
"그냥… 오빠 밤새 작업하는 거 보고 싶어서. 동기분들이랑 같이 먹으라고 간식 좀 사 왔어.”
지수는 그의 품에 안기듯 다가가며 들고 온 간식 봉투를 그의 손에 들려주었다.
현우는 간식 봉투를 받아 들고는 마치 세상 전부를 얻은 듯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와… 지수야! 진짜 감동이야! 그렇지 않아도 배고파 죽는 줄 알았는데! 완전 고마워!” 그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아이처럼 활짝 웃었다.
"어서 들어와, 여기 앉아.” 지수는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현우 옆 빈자리에 앉았다. 현우는 간식 봉투를 옆에 두고는 다시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랑스러운 듯, 혹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났던 것처럼, 지수에게 지금까지 작업했던 설계 도면과 3D 모델링을 보여주며 열정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떤 컨셉에서 시작해 어떤 어려움을 극복했고, 어떤 디테일에 공을 들였는지 이야기할 때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빛났고 목소리에는 꿈을 향한 열정이 넘실거렸다. 지수는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가슴 깊이 감탄했다. 복잡한 건축 이론이나 설계 용어는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의 꿈을 향해 밤을 잊은 채 몰두하는 현우의 열정과 재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가끔씩 궁금한 점을 조심스럽게 물으면, 현우는 신이 나서 더 자세하고 재미있게 설명해주었다.
그에게 자신의 세계를 보여주고, 그녀가 그것을 존중하며 진심으로 귀 기울여 주는 그 순간 자체가 큰 기쁨인 듯했다. 차가운 동아리 방 공기 속에서, 두 사람 사이에는 따뜻한 교감과 깊어지는 애정의 기류가 흘렀다.
현우가 다시 작업에 몰두하려 할 때였다. 복잡한 설계 도면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린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그의 피곤하지만 너무나 사랑스러운 옆모습. 헝클어진 머리카락 아래 드러난 그의 곧은 목선.
왠지 모르게 안쓰러우면서도,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해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지수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현우의 의자 팔걸이를 살포시 짚었다. 현우가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충동적으로 몸을 기울여 그의 약간 거친 뺨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짧게 입 맞추었다.
"오빠, 힘내.” 속삭이듯 작게 말했다.
갑작스러운 지수의 입맞춤에 현우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얼어붙었다.
피곤함으로 흐릿했던 그의 눈이 놀라움과 당황함으로 가득 차 동그랗게 커졌다.
그리고 그 눈빛은 곧 걷잡을 수 없는 기쁨과 깊은 애정으로 물들었다. 예상치 못한 그녀의 솔직하고 적극적인 애정 표현은 그를 무장해제시켰다.
그의 얼굴에는‘행복하다' 라고 쓰여 있는 듯했다.
현우는 더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거나 참을 수 없다는 듯 지수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으며 자신의 품속으로 깊숙이 끌어당겼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지수의 귓가와 목덜미에 닿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의 손이 부드럽게 지수의 얼굴을 감싸 쥐며 자신에게로 향하게 했다. 열기에 휩싸인 그의 눈빛이 사랑한다는 듯 지수를 바라보았다.
시선을 피할 틈도 없이, 현우는 지수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
짧았던 뺨 키스와는 차원이 다른, 깊고 뜨거운 키스였다. 서로의 입술이 탐하듯 부드럽게 얽히고, 혀끝이 부드럽게 탐색하며 숨결이 뒤섞였다. 건축 설계 도면과 모형들, 밤샘 작업의 흔적이 가득한 현실적인 동아리 방 안에서, 두 사람의 세상은 오롯이 서로에게만 존재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격렬하게 뛰었고,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듯한 강렬한 짜릿함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율처럼 퍼져나갔다.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상대의 모든 것을 흡수하려는 듯 깊이 파고들었다. 현우는 지수의 뒷목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그녀를 자신에게 더욱 밀착시켰고, 지수는 그의 어깨와 목에 팔을 감아 그의 뜨거운 애정에 응답했다. 터질 듯이 빠르게 뛰는 서로의 심장 소리가 귓가에 합창처럼 울려 퍼지는 듯했다. 사랑한다는 감정이 온몸의 혈관을 타고 넘실거리며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숨이 벅차오를 때쯤 현우가 아쉽다는 듯 입술을 떼었다. 그의 눈빛은 방금 전보다 더욱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지수를 자신의 품에 더욱 단단히 끌어안았다.
"지수야… 너무 좋다. 진짜 너무 좋아.… 사랑해.” 그의 목소리는 억누르지 못한 감정으로 살짝 떨리고 있었다. 지수는 그의 품에 얼굴을 묻고 그의 빠른 심장 박동소리를 들었다.
"오빠…” 지수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품속으로 더 파고들었다.
"응, 지수야…” 현우가 그녀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고 나직이 속삭였다.
복잡한 설계 도면과 밤샘의 흔적이 가득한 차가운 동아리 방 안에서, 두 사람의 뜨겁게 달아오른 마음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서로에게 깊이 파고든 그 순간,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두 사람뿐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차가운 현실의 공간마저 온기로 물들일 만큼 뜨겁고 강렬하게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