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서의 예고된 미국행과 태준과의 싸늘한 대면 이후, 현우와 지수는 역설적으로 서로에게 더욱 절실해졌다. 보이지 않는 위협이 다가올수록, 현우는 지수를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게 지키고 싶어 했다. 그는 미국으로 떠날 날이 다가올수록 지수와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오늘은 딱 1분만 늦게 갈 거야.”
현우는 매일 밤 지수의 집 앞에서 헤어지기 직전, 1분이 10분, 10분이 30분이 되는 마법을 부렸다. 그는 지수의 손을 놓지 못하고 깍지 낀 채 "더 못 참겠다.” 며 갑자기 지수를 끌어안기도 했고, 지수가 웃으면 "오늘 충전 완료!” 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현우는 언제부터인가 작은 디지털카메라를 항상 목에 걸고 다녔으며, 그는 지수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그녀의 모든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오빠, 나 오늘 화장 잘 됐어?”
"아니, 지금 웃는 게 제일 잘됐어. 찰칵!”
밥을 먹는 지수의 모습, 공부하다 잠든 지수의 모습, 무심하게 창밖을 바라보는 지수의 옆모습까지.
현우의 카메라 속 폴더 이름은 'My Cornerstone'로 가득 찼다. 지수는 처음엔 어색해했지만, 그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깊은 애정에 결국 익숙해졌다. 사진을 찍는 현우의 눈빛은 마치 세상에 단 하나뿐인 보물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두 사람의 데이트는 특별하지 않아도 완벽했다. 현우의 회사 입사 준비와 지수의 학과 공부 틈틈이, 두 사람은 공원을 걷고, 동네 맛집에서 따뜻한 국밥을 나누어 먹고, 서로의 손금에 새겨진 미래를 읽어주며 웃었다.
모든 순간은 현우의 카메라 셔터 소리와 지수의 해맑은 웃음소리로 채워졌다.
"지수야, 나는 너한테 뭘까?” 현우가 문득 진지하게 물었다.
지수는 턱을 괴고 현우를 바라보았다. "음… 오빠는 나한테 '안심'이야.”
"안심?”
"응. 나를 온전히 사랑하고 존중해주는 오빠 존재 자체가 나한테는 안심이야.”
그 말에 현우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지수의 두 볼을 감싸 안았다.
"너도 나한테 그래. 네가 나한테는 세상의 모든 답이야. 영원히 떨어지고 싶지 않아, 진짜로.”
Nova Structure로 떠나기까지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어느 주말 저녁, 현우는 지수를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데려갔다. 식사를 마친 후, 현우는 와인잔을 빙글 돌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수야, 내가 너한테 잊을 수 없는 선물을 해주고 싶어서 생각한 게 있어.”
"선물? 갑자기?”
"응. 우리, 다시 방콕에 가지 않을래? 너와 네가 처음 만났던 곳.”
지수의 눈이 동그래졌다. 방콕은 지수가 태준과 헤어지고 혼자 떠돌 때, 우연히 현우를 만난 특별한 장소였다. 지수에게 방콕은 상처가 아닌, 새로운 시작점이었다.
"우리 그때, 방콕의 북적이는 짜뚜짝 야시장에서 처음 만났잖아. 그곳에서, 우리가 함께 맞이할 미래를 약속하고 싶어." 현우는 지수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내가 미국에 가도 우리 관계는 변하지 않을 거고, 네가 나한테 얼마나 큰 의미인지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싶어. 그곳에서 우리의 새 역사를 시작하자, 지수야. 응?”
현우의 제안은 단순히 여행을 넘어선 깊은 약속이었다. 지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난 여행, 바로 그 곳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
"오빠…” 지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좋아. 우리 방콕으로 가자."
현우는 환하게 웃으며 지수를 안았다.
며칠 후, 두 사람은 각자의 짐을 챙겨 함께 태국 방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현우의 카메라에는 이미 '방콕, 우리의 시작과 미래'라는 새 폴더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들의 눈앞에는 낯선 위협과 복잡한 미래가 있겠지만, 서로를 향한 단단한 사랑은 그 어떤 불안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강했다.
*다음회 연재는
#31. 우애수와
#32. 너의 빈자리에 놓인 의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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