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일개미 시점-균형 part 2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지탱하는 그 무엇에 대한 이야기

by 달과 앤


전지적 일개미 시점-균형 part1



코드블루 환자의 CPR은 대개 30분 정도 시행한다. 그 이상은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보고 사망 선고를 하는 편이다. 물론 예외적인 상황은 있으나 그날 그 환자의 CPR시간은 길고도 길었다. 수술 중 위험한 고비를 넘긴 환자였고 회복실에서도 애를 태워 이목이 집중된 것도 있었지만 과장님 환자라는 이유도 한몫 거들었다. 집도의가 도착할 때까지 레지던트는 최선을 다해야 했고 그 여파로 쉽지 않은 밤이 될 거라 짐작은 했지만 길어진 시간만큼 파고는 거셌다. 탑 시니어는 CPR 환자 차팅에 집중해야 했고, 경험 많은 차지 한 명이 CPR 액팅을 보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발이 묶인 두 간호사의 환자까지 돌아가며 봐야 했으니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해 1분을 쪼개 쓰는 심정으로 뛰어다녀야 했다. 그러니 그 밤이 어떻게 돌아갔겠는가. 오더에 구멍 내지 않으려 정신줄을 붙들고 사력을 다했다. 네 환자 내 환자 나눠 집중적으로 각개전투하는 곳이 중환자실인데 그날 밤은 모두가 내 환자인 것처럼 서로 엄호하며 지켜내야 했다. 알아서 먼저 처리해 주고 놓치는 게 생길까 서로 묻고 확인하며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마치 한쪽 날이 부러진 톱니바퀴가 헛돌지 않게 부러진 날에 한 사람씩 들어가 몸으로 버티는 것 같았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밤 새 뒤치다꺼리 하느라 가랑이가 찢어진 일개미 간호사들은 동이 틀 즈음엔 서 있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신경외과를 지나 외과계 출입구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동료들의 눈빛, 실루엣인데 대충 봐도 그날은 대재앙 수준이었으니 출근하던 데이는 뒤돌아 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처참한 전쟁터로 변한 일터로 걸어 들어와 너나 할 것 없이 일찌감치 손을 보태 정리에 나섰다. 언제나 그렇듯 심란한 마음 묻어두고 출발선 한참 뒤로 걸어 나와 바통을 이어받아 묵묵히 이어 달리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고 최상이었다. 돌아보면 참 고마운 일이나 언제라도 입장이 뒤바뀌는 변화무쌍한 현장에서 일하던 우리에게 그건 그냥 기본값 같은 것이었다. 굳이 더 갖춰야 할 덕목을 꼽자면 감정을 상수로 묶어 두는 굳건한 마음정도. 감정마저 변수가 되면 결코 일할 수 없는 곳이었으니까. 그래서 일은 오직 일로만 대하고 퇴근과 동시에 빨리 잊어버리는 사람이 오래 버틸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결과적으로 일과 삶을 산뜻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지엽적인 것에 연연해 돌아선 사람에게는 여전히 그곳이 히말라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날 마스크를 벗어던지며 탈의실로 들어선 우리는 아무 말 없이 한숨만 내쉬었고 옷 갈아입기 바쁘게 3층을 탈출해 병원 밖으로 되도록 멀리 떨어지고만 싶었다. 숙련된 경력자도 넌더리 치는 상황인데 영혼까지 털린 쌩신규는 오죽했을까. 모두가 출근을 서두르는 아침, 무거운 몸을 이끌고 터덜터덜 퇴근하던 내 앞에 붉은 악마 몇몇이 지나갔다. 월드컵 직관 보다 현실 직시가 시급했던 나에게는 그들의 여유를 부러워하는 것조차 사치 같았고 그래서인지 붉게 물든 그들을 볼 때마다 그렇게 비현실적일 수 없었다. 모두가 붉게 기억하는 2002년이 나에겐 온통 암울한 초록이었고 이 보색 대비의 잔상은 꽤 오래갔다.(그때의 유니폼은 수술복 같은 짙은 초록색이었고 초록이 다시 싱그러운 의미로 돌아오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나저나 바통을 이어받은 현장은 무사했을까. 상황이 꽤 복잡해 질거라 예감은 했으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대단했다. 심란한 분위기는 데이를 넘어 이브닝 때까지 이어졌고 사건의 여파로 병원 분위기까지 어수선할 정도였다. 수술 중 마취 이상으로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고 그걸로 마취과냐 외과냐 책임소재 공방이 오고 가고 보호자의 소송으로 간호사도 레지던트도 여기저기 불려 다녔다. 가장 큰 문제는 소중한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보호자의 반응이었다. 완강했던 보호자의 거부로 사망한 환자는 영안실로 내려가지 못했다. 그로 인해 데이번 간호사들은 망자를 옆에 두고 일을 해야 했다. 장장 8시간을 말이다. 그래봐야 대부분이 스무 살 중 후반의 어린 여인들이었다. 슬프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고 아깝지 않은 생명이 어디 있겠는가. 그것을 모르지 않기에 더 힘들었을 것이다. 체험 삶의 현장은 언제든 생의 마지막 현장으로 돌변했고 심장이 없는 사람이라 스스로를 몰아붙여봐야 돌부처 같은 마음을 갖는 게 어찌 쉬운 일이겠나. 언제나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일하고 있어 웬만한 일에는 무뎌졌을 그녀들이라 해도 그런 상황이 쉬울 리 없었다. 또한 생이 다했어도 마땅히 받아야 하는 한 인간의 존엄마저 묵살된 이 참혹한 현장에 남은 거라고는 여기저기 상처받은 영혼들 뿐이었다. 생은 끝나기도 했고 계속되기도 했다. 그러니 피고 지는 생명을 마주할 때마다 요동치던 그 감정도 언젠가는 상수가 되어 굳건해졌을지 모를 일이다. 언젠가 내게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말했던 누군가의 말처럼. 그랬다면 로프 하나에 몸을 맡기고 히말라야 등반에 나서는 전문 산악인의 그 담대함이 내게도 찾아오지 않았을까.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그날의 일개미 간호사들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참혹했던 그 밤을 지켜낸 것은 결연했던 우리의 의지라 믿고 있었다. 끊어지기 직전의 마지막 방호선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성실하고 정직했던 일개미들이 만들어낸 균형이었다고. 그때 다른 이들의 푸념을 듣다 혼잣말처럼 내뱉은 한 간호사의 말에 얕은 내 마음이 넘실넘실 울렁였다.


그날 우리가 운이 좋았던 것이라고. 그 밤 우리를 지켜준 건 우리의 팀워크가 아니라 환자들이라고. 아무 탈 없이 안정적인 컨디션으로 우리를 지켜준 거라고. 그래서 내내 미안하고 죄스럽다고.


그 후로 오랫동안 이 말이 내 안에 싱잉볼이 돼 울려 퍼졌다. 그리고 오늘로 인도해 이 글의 서막을 열게 했으니 이걸 또 어떻게 봐야 할까. 때로 삶은 미리 준비된 시나리오라도 있는 양 삶의 한 부분이 전체를 아우르는 상징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날의 강렬했던 경험은 내게 상처로 남았지만 결국 약이 되어 나를 지키게 했다.


균형이란, 성실과 정직이 만나 이루는 겸손의 미학 어디쯤이 아닐까.


스페인 카탈루냐의 카스텔(인간 탑 쌓기)/ 게티 이미지


사진출처-pixabay,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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