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친구 엄마가 내 친구가 되면 위험한 이유 (망한 관계에 대한 소회)
그녀의 그 자랑질은 말린 옥수수알갱이 같은 자존감을 뻥튀기한 강냉이 같았다. 씹을수록 뻑뻑하게 목을 틀어막는 강냉이.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샤넬백이 아니라 숭늉 한 대접이었다.
내려가는 이삿짐을 바라보다 떠오른 문장을 받아쓰며 생각했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함을. 다소 꽁한 마음을 꾸짖는데 미니 세탁기를 버리고 가는 게 보였다. 필요하다며 선뜻 가져갔던 그날, 문 앞에 서 있던 그녀의 표정이 가물거렸다. 자존심 때문에 한 번도 들지 못했다던 그 샤넬백은 챙겼겠지. 감춰지지 않는 꽁한 마음은 버려진 세탁기 마냥 처량했다. 언제라도 내던지면 산산이 부서질 수 있는 유리 같은 관계. 그 말로는 씁쓸했다. 스칠 인연이 스쳐간 것뿐이라 다독여도 스치느라 입은 상처는 쓰렸고 남는 건 냉소뿐이었다. 다시는 속지 않겠다는 다짐처럼. 남은 이들의 상처는 저마다 달랐고 내내 상처만 응시하고 웅크리고 있던 또 다른 여자를 바라보는 것 또한 쉽지는 않았다. 불혹이 지난 지 한참이었으나 여전히 미혹했던 그때. 이제는 웃으며 얘기할 여유가 생겼으니 불혹에 한 발짝 쯤 가까워진 것일까.
하얀 얼굴에 간드러진 목소리를 한 그 여자가 친히 우리를 소집했다. 이것이 이 모든 사달의 시작이었다. 그때 그 초대에 불응했다면 어땠을까 가끔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 나오는 쥐들처럼 줄줄이 그 집에 따라 들어갔다. 그녀에겐 그런 묘한 재주가 있었다. 사람 홀려 자기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재주. 그건 보통 사람들이 하는 이미지 메이킹이나 매력 어필을 넘어선 묘한 그 무엇이었고 홀린다는 말 말고는 적당한 말을 찾기가 어려울 것 같다. 21평 복도식 아파트 가장 꼭대기층. 어질어질한 것은 25층이라는 물리적 높이가 아니라 꺾일 줄 모르는 자존심이 불러온 심리적 현기증이었다는 걸 자그마치 5년이 지나고서야 알았다. 그 베일이 벗겨진 날, 사람 볼 줄 안다고 나름 자신 있어했던 세 여자들은 다 기함했다. 여태껏 현모양처와 며느리 사이를 오가며 눈치 하나로 버텨왔던 이 능숙한 여자들이 결국엔 후려 맞은 뒤통수를 부여잡고 누가 더 세게 맞았는지 대결할 판이었다. 그랬다. 어떤 자존심은 장장 25층에서 수직 낙하한 짱돌보다 더 단단하고 위험했다. 그 가속도의 여파로 뒤통수에 혹을 단 세 여자의 뒤늦은 하소연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이럴 때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게 잔뜩 집어 먹은 나이는 오히려 창피할 뿐이었다. 결국 제 발등을 찍은 거라며 자기반성으로 이어졌지만 어쩐지 그걸로는 영 개운치 않아 긴 뒤끝을 남겼다. 그래서 아직도 가끔 그 여자는 우리 커피 테이블에 소환된다. 주면 고맙고 안 줘도 그만인 서비스 쿠키처럼.
기혼 여성들이 맺는 애매한 관계 중 하나가 아이 친구 엄마와의 관계가 아닐까. 일찍이 여초사회에서 이 꼴 저 꼴 다 본 입장이라 나름 거뜬하리라 생각했던 건 크나큰 오산이었다. 자신보다 더 소중한 존재를 키운다는 것은 오히려 복병이 되었고 때로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상황까지 벌어지니 일견 계륵이라 여길만 했다. 이 사회에서도 소위 인싸 기질이 다분한 엄마가 분위기를 주도한다. 커피 한 잔으로 시작해 뜻이 맞으면 브런치나 밥이 되고, 결국 쇼핑에 행사에 몰려다니다 보면 언니나 동생이 하나쯤 생기고 정신 차리고 보면 남의 집 숟가락 젓가락 개수까지 빠삭해지는 사이. 때로 남편보다 의지가 되는 육아 동지라는 이 연대감은 빗장을 느슨하게 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나드는 불안한 관계로 이어지니 경계가 필요하다. 그러니 어떤 관계이든 묵직한 자기중심이 기본이다. 그 중심 아래 관계를 맺을 때 명확한 선이 보인다. 엄마 이전에 건강한 사람이어야 하는 이유는 그래서 더 명확하다. 영글지 못한 중심은 엄마에게도 아이에게도 혼란만 가중시키니 중심추를 단단히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그럼에도 걸려 넘어지고 말았으니 할 말은 없지만 그 여자의 트릭 때문이었다는 구차한 변명을 해본다. 그 여자의 코스는 조금 달랐다. 깜빡이도 켜지 않고 바로 훅 들어와 판단력이 흐려진 사이 허를 찔렀으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서서히 파악할 시간 같은 걸 허용하지 않는 대범함과 거절이 힘든 사람을 기가 막히게 알아보는 사냥능력까지. 영악한 사람은 정나미가 떨어져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멀리한다는 걸 알게 된 계기였다.
아이 등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핸드폰에 모르는 번호가 찍혔다. 당황하긴 했으나 천둥벌거숭이를 유치원에 보내 놓고 하루하루 긴장하던 엄마에게 모르는 번호를 거를 만한 여유는 없었다.
동글이 엄마, 나 ○○엄마예요. 우리 집에 커피 마시러 오라고. 다른 엄마들도 오라고 했으니까 와서 같이 차 마셔요.
당황해서 "네네"만 반복하다 끊었으니 이 당황스러운 초대를 수락해 버린 건 나의 소심함인 건가. 그날 입학식에서 분명 내 번호를 불러주긴 했었다. 그 여자가 내 폰에 전화를 해 자기 번호라며 저장하라 했던 것 같은데 천지분간 못하는 아들 때문에 입학식 내내 미어캣 꼴이었던 나는 대충 얼버무렸던 것 같다. 이제와 생각하니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도 그녀의 레이더는 가동 중이었고 같은 반 엄마들을 쭉 스캔해 나름 수집한 데이터를 가지고 바로 실전에 돌입했던 것 같다. 얼마나 치밀한 계획형 인간인가. 뒷북을 쳐 봐야 아무 소용없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흘린 사인도 많았는데 왜 그리 어리숙했을까 자꾸 자책하게 된다.
'아니, 집으로 오라고? 처음부터 오픈 하우스를? 자기 집을 보여 주는 건 내 집도 보여 달라는 말 아닌가. 아, 어쩌지.'
짧은 순간 동안 참 많은 생각이 스쳐 가기도 전에 피곤이 밀려와 어깨가 굳었다. 워낙 낯을 가리는 편이라 나만 걸린 일이면 피치 못할 이유를 대서라도 거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내 아들과 연관된 문제였다. 3년 동안 같은 반 친구로 지내야 하는데 아들의 첫 사회생활에 윤활유가 되지는 못할망정 걸림돌이 될 수는 없었다. 탯줄이 끊긴 지 벌써 5년이 넘어가 이제 좀 자유로운가 싶었는데 또다시 사회적인 탯줄로 이어져 아이와 팽팽히 연결되는 느낌이 불편했다. 이제 나는 앤이 아니라 동글이 엄마로 엄마들 세계에 명함을 내밀어야 하는 것이다. 피곤한 여자들의 세계로 다시 진입해야 하다니. 엄마가 되지 못해 울었던 그 많은 날들을 제치고 내 생물학적 염색체가 XX라는 게 원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여고, 간호학과, 간호계를 거치며 여자라면 진저리를 쳤던 나는 엄마라는 이 세계 또한 '웰컴 투 헬 우먼 월드'가 아닐까 두려워졌던 게 사실이다. 그래도 어쩌랴. 결국에는 여자라는 사실보다 엄마라는 사실에 팔도 모자라 다리까지 걷어 부치고 덤비는 게 엄마라는 사람의 속성인 것을. 빈 손으로 가는 건 어쩐지 예의가 아닌 거 같아 싱크대를 뒤져 주섬주섬 마땅한 물건을 꺼냈다. 게다가 딸 키우는 엄마라니 포장에도 신경이 쓰여 단정한 쇼핑백에 지인에게 받은 루왁커피 원두를 담아 무거운 걸음을 떼 그 여자네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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