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오래된 친구에게

뒤늦은 축하와 축복이 네 삶에 전해지길 바라며

by 달과 앤

때로 우정은 부담스러운 감정으로 변모해 스스로의 그릇 크기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그때 나의 마음은 우정이었을까 측은지심이었을까. 명확하지 않았던 그 우정 덕분에 얕디 얕던 내가 그래도 손가락 한 마디만큼은 깊어진 게 아닌지. 고향의 봄을 부르며 우리 집 앞을 사뿐사뿐 지나갔던 그녀를 이제 한눈에 알아볼 자신은 없지만 그럼에도 먼저 다가와 반갑게 웃어주는 쪽은 분명 그녀일 거라 확신할 수는 있다. 밝아서 다행이었고 그래서 내내 걸렸다. 그 밝음이 세파에 꺾이지 않고 계속될 수 있길 바랐기 때문에. 이제는 알만한 나이가 됐음에도 그녀에게만은 여전히 동화 같은 해피엔딩이 펼쳐지길 바라는 치기 어린 이 마음은 끝내 우정이고 싶은 바람 같은 것이겠지.




" 참, 해정이 결혼했다. 지난달 교회에서 목사님이 주례해 주셨단다 "


불쑥 튀어나온 나의 반응은 누가 봐도 비정상적이었다. 신부가 얼마나 예뻤는지 혹은 신랑은 잘 생겼는지, 뭐 하는 사람인지 그런 흔해 빠진 질문을 던졌더라면 차라리 내가 덜 꼬인 사람 같았을까.


" 아니, 왜 결혼을 시켜. 그래도 아줌마 곁이 가장 안전할 텐데. 믿을 만한 사람 맞아?"


폭주하는 내 반응을 충분히 예상했던 엄마는 부모 마음이 다 그런 거라며 그 마음에 가닿기엔 아직 멀은 철부지 딸을 달래며 그날의 소식을 하나씩 전했다. 부모도 허락한 결혼인데 남인 내가 뭐라고 감 놔라 배 놔라 했던 건지. 그 흔한 축하 한마디를 안 하고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던 나. 하얀 드레스를 입고 환하게 웃고 있었을 그녀. 그리고 그 옆에 서 있었을 남자. 그 남자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라야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그녀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었던 걸까.


나의 오래전 친구 해정은 경도의 지적장애가 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까지는 동네 골목에서 함께 뛰어놀았고 고무줄놀이도 제법 잘했던 평범한 동네 친구였다. 유난히 해맑은 성격에 잘 웃는 예쁘장한 친구였고 붙임성이 좋아 언제나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줄 만큼 밝아 장애가 드러나 보이지 않았다. 친구가 나와 조금 다르다는 걸 언제 알게 됐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녀를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와 눈빛이 저절로 내게 스며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른인 지금, 아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에 등골이 서늘해질 때가 있다. 그녀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학교에 들어가면서 좀 더 명확히 드러났고 그것이 그녀에게는 수난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등굣길에 마주친 해정이의 엄마는 초조한 모습이었다. 초1에게 가장 중요한 한글 수업. 따라갈 수 없었던 해정과 어떻게든 끌고 가려던 선생님 사이 갈등이 불거졌었다. 중심을 잃은 선생님께서는 학교에 오지 말라는 말을 해버렸고 상처받은 해정이 등교를 거부하면서 엄마의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 갔던 것이다. 당시 일반학교에서 도움이 필요한 학생에게 시행되는 통합교육은 한계가 분명했고 사는 곳 가까이 특수학교가 있던 것도 아니라서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또한 해정의 지적 수준이 경계선에 가까워 부모 입장에서는 일반학교를 다니며 사회화되는 편이 아이 미래를 위해 더 나을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시작된 해정의 학교생활이 모녀에게 가시밭길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었지만 빨라도 너무 빨랐던 것이다. 지나가는 해정의 반 친구들을 한 명 한 명 붙들고 사건의 내막을 물었지만 모두 선생님이 했던 말을 그대로 전달할 뿐이었다. 그러다 마주친 여덟 살짜리 여자애가 던진 말에 해정이 엄마는 큰 위로를 받았다 그동안 위로를 위한 위로를 받느라 더 비참했던 것은 아닌지. 그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왜 그렇게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어린 눈에도 애끓는 모정이 읽혔으리란 추측만 해본다. 의도 없이 전달한 그 말이 마음 읽기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여덟 살 아이는 지금도 그런 제 모습이 생경할 뿐이다. 세월이 지난 후 엄마에게 들었던 그 꼬마의 말은 선생님이 속상해서 그렇게 말씀하신 거지 해정이가 미워서 그런 게 아니라고 그러니 해정이 학교 가야 한다고 했단다. 그 말이 위로가 되었다며 고마운 마음 전하러 와 눈물을 훔쳤다는 해정이 엄마. 엄마를 통해 전해 들었던 말 때문일까 가끔씩 해정이를 떠올릴 때면 자연스럽게 그녀의 엄마가 같이 떠오른다.



그날의 사건이 아니었어도 해정은 우리 동네 친구들 사이에서 보호 대상이었다. 초등 6년의 학교 생활 동안 짓궂은 남자 애들에게서 때로는 어려운 과제나 조별모임에서 그녀에 대한 배려는 기본으로 깔려 있었다. 다행히 같은 중학교에 배정되었지만 학생수가 더 많아졌고 넓은 지역에서 모인 낯선 아이들 틈에서 차츰 우리의 도움이 미치기 힘든 상황이 전개됐다. 그 사이 그녀를 버티게 한 것은 엄마의 격려와 천성적으로 밝은 그녀의 성격이 한몫했을 것이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대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때였던 것 같다. 내가 집에 내려왔다는 소리에 해정이가 집으로 찾아왔었다. 그녀를 대할 때는 순수했던 초등시절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여전히 그녀는 그때 그 해정이었지만 여기저기서 이 물 저 물 들어버린 나는 그때로 돌아가기 버거웠다. 그때 우리가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가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그날 이후 해정이를 마주친 적이 없다는 기억한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름 밥벌이하며 사회인 노릇하느라 허덕이며 보낸 시간들 동안 그녀의 세상은 어떤 것으로 채워졌을까.


부모님이 이사를 하면서 소식이 더 뜸해졌는데 예상치 못한 결혼 소식을 접하고는 못내 응어리졌던 마음이 터져버린 것 같다. 나는 왜 그녀가 결혼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일까. 나도 한 결혼을 왜 그녀가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잘난 것은 아니지만 남에게 속지 않을 만큼 나름 똑순이, 깍쟁이인 사람도 쉽지 않은 게 결혼생활이고, 무엇보다 믿고 의지할 만한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노파심이 깔린 나의 전제에는 사람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누구보다 존재 그 자체로 인정받아야 하는 사람인데 그 특별함을 사랑해 줄 사람인지 혹은 그런 가풍인지 확신할 수 없어서. 그렇지 않을 바에야 차라리 안전한 울타리 안에 머무는 소극적인 회피가 낫지 않을까 싶었다. 짧지만 겪어 본 세상은 약하고 여린 것에 대한 보호보다는 악랄하고 교활한 오만이 득세하는 곳이라는 나름의 판단으로 순수한 영혼을 가진 내 오랜 친구가 다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앞섰던 거다. 그런데 남인 나도 이럴진대 그녀의 엄마가 어찌 그걸 염려하지 않았겠는가. 그럼에도 그녀가 다른 평범한 이들처럼 살아가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비록 모진 풍파가 온다 한들 그것 또한 겪어 내는 것이 공평하게 삶을 나눠가지는 것이고 그렇게 바랐던 평범으로 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했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나도, 그녀의 엄마도 유일하게 믿는 것은 그녀의 천성뿐이다. 쾌활하고 밝은 그 천성으로 뭐든 훌훌 털어버리고 금방 웃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 그것 하나만은 꼭 믿어보고 싶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녀 앞을 스치는 바람에 행운이 실리기를. 어릴 때부터 열심히 섬겨 온 그녀의 신이 제발 함께 하며 도와주시길 바라고 또 바라게 된다.


후줄근한 모습으로 외출했다 우연히 마주친 옛 친구의 차나 가방에 기가 죽어 하루 종일 심기가 불편한 게 중년 여자들의 세계라지. 그럼에도 속 좁은 그 세계, 내 유일한 예외인 해정이. 그녀가 타고 있는 차가, 들고 있는 가방이 내 것보다 좋다 한들 아무 상관없을 것 같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 차보다 가방보다 더 좋은 사람이 그녀 옆을 지키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너무 늦었지만 너의 결혼을 축하하며 앞으로의 날들도 축복하고 싶구나. 해정아, 언제나 행복하렴.


그렇게 너무 많이
안 예뻐도 된다

그렇게 꼭 잘하려고만
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모습 그대로
너는 충분히 예쁘고

가끔은 실수하고 서툴러도
너는 사랑스런 사람이란다

지금 그대로 너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라

지금 모습 그대로 있어도

너는 가득하고 좋은 사람이란다

<어린 벗에게> -나태주-


* 사진-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