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육의 연애는 언제나 쓰다

부모이면서 자식인 너에게 그리고 나에게

by 달과 앤


"세상에 자식이 뭐 길래. 네 오빠 발톱이 다 빠졌단다."


저릿한 가슴을 타고 올라왔을 그 말에 아직 채 식지 않은 안쓰러움이 하얗게 피어나고 있어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반백일망정 여전히 안쓰러운 그 이름, 자식. 그 귀한 자식이 제 몸 상해도 지켜야 할 존재가 있다는 건 늙은 부모에게 또 다른 아킬레스건이 되는 걸까. 내가 낳은 새끼보다 더 예쁜 존재라는 손주. 그래도 막상 내 자식을 아프게 하면 꺾인 팔 안쪽 일등석은 당연히 내 배 아파 낳은 내 새끼 차지인 것이고, 그 새끼의 팔 안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이것이 우리네 부모 사슬, 부모 생태계인 것일까. 부모의 내리사랑은 쉴 새 없이 한 방향을 향해 흐르고 뜨문뜨문 거슬러 올라간 치사랑을 반성하려 올려다봤을 땐 이미 때는 늦어 덩그러니 남은 자리에 하염없이 눈물 짓고 마는 어리석음. 그렇게 뒤늦은 후회나 하는 게 자식의 숙명 혹은 한계 아닐까. 그래서 인생 중반 이 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음은 어쩌면 축복인 것이다. 이 기회가 아니라면 제대로 깨닫기란 불가능할 테니 자식이면서 부모이고 부모이면서 자식인 이 시기가 우리에겐 더없이 소중한 시간 아니겠나. 닥친 현실을 살아내다 보면 과거와 현재가 얽히고설켜 덩어리졌던 마음이 홍두깨로 살살 밀어낸 듯 넓게 펴져 뭐든 보드랍게 감쌀 수 있게 되는 순간이 문득 찾아온다. 그래, 드디어는 나도 철이 드는구나 싶어지는 그런 순간 말이다. 이런 순간이 없었다면 진작에 세상은 오만방자로 요지경이 되지 않았을까.




혈육에 대한 의구심은 그에게 온 러브레터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는데 읽을수록 물음표가 둥둥 뜨는 게 의아하다 못해 기가 막혔다. 도대체 왜 우리 오빠 같은 사람이 좋은 건가? 보기에도 아까울 만큼 예쁜 편지지에 단정한 글씨로 꾹꾹 눌러 담은 사랑의 언어를 보고 있자니 그 묘령의 여인에게 순간 동정심이 일어 그의 실체를 폭로해 버리고 싶었다. 집안의 실세라도 되는 양 동생들을 부려먹고 엄마 심부름이란 심부름은 족족 내게 미루고 제일 좋은 건 언제나 제 차지인 저 이기적인 인간을 좋아한다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도대체 이 여인은 누구길래 아가페를 끌어다 써도 모자란 내 오빠 같은 사람에게 정성을 쏟는단 말인가. 갑자기 테레사 수녀님과 동격인 것 같은 그 언니의 거룩한 사랑이 안쓰러워졌다. 하지만 사랑이 깊으면 병이 된다는 건 모를 이제 막 중학교 입학을 목전에 둔 소녀는 몇 달 후 그 중병의 수녀님을 마주하고는 그것이 손 쓸 수 없는 영역임을 직감했고 조용히 입에 자물쇠를 채웠다. 그리고는 저절로 떨어지는 콩고물을 받아먹으며 내게 온 호의를 즐겼다.(이런 얌통머리 없는 가시나.) 오빠와 나는 세 살 차이로 그가 졸업하던 해 나는 1학년이 되었다. 제법 모범생이었던 덕에 누구 동생이라는 꼬리표는 낯설은 학교 생활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특히 오빠를 사모하던 그 언니가 3학년이었다는 건 결정적이었다. 교내 내게 호의를 품은 3학년 선배가 있다는 건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그래서 나의 현실 타협은 다소 얌통머리 없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그동안 그에게 끓여 바친 수 없이 많은 라면과 불평등한 심부름에 대한 보상쯤이라 여기며 콩고물을 날름 받아먹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은 그의 사회적 가면 소화 능력이 짐캐리가 쓴 마스크를 능가했던 것인지 그리 대단한 외모도 키도(사실 남자 키 치고는 작다.) 아닌데 호감을 표하는 여자들이 계속 이어졌다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가족 안에서의 그와 사회에서 나름 어엿한 모습을 구축한 그가 만들어내는 이 괴리감은 불가사의한 미스터리를 만들어 내고 그것이 혈육의 연애를 유독 뜨악스럽게 만드는 지점인 것이다. 사실 유난히 그의 연애가 눈꼴신 이유는 그와 나 사이 존재하는 좁혀지지 않는 갈등 때문인 게 가장 크다. 어린 시절 그를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가 나와 동생을 대할 때 와는 다르다는 것이 마음속에 부당함 내지는 반감을 싹트게 했다. 그런데 내내 자식으로만 살다 부모가 되어 가던 어느 날 그동안은 못 보던 걸 보게 되는 개안이 찾아왔다. 그러니 이 시기는 축복인 것이다.



오빠는 초등학교 2학년쯤 큰 수술을 받고 3년간 병원을 오가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 부모님은 아들이 평생 걷지 못하는 장애를 갖게 될까봐 노심초사하며 병상을 지켰고 이후 3년이란 시간 그 아들을 업고 지방에서 서울을 오가는 고생스런 날들을 보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어린 그의 몸과 마음을 관통해 고스란히 남았을 것이다. 어느날 그간 모르고 지나친 그의 내면을 채웠던 불안과 공포의 시간이 눈앞에 생생히 그려졌다. 그래서 내게 보인 전제군주 같은 행태는 공포와 불안조차 억압되었던 어린 날에 대한 보상 심리 내지는 투정이 아니었나 싶었고 내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노력했던 육아의 시간 덕분에 그의 어린 시절 마음이 더 헤아려졌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씩 버리지 못한 그 이기심이 삐죽 올라오는 걸 볼 때면 피지도 못하고 시들어갔던 그의 어린 날이 떠올라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때 피지 못한 그 마음은 반 백이 되어도 흉처럼 남아 저렇게 불쑥불쑥 비집고 올라오는구나. 그래도 그 마음 조절하며 만만치 않은 여인 모시고 악 소리 절로 나는 사자 아들 키우느라 고생이 많다 싶어져 부르르 끓어오르던 마음도 어느새 누그러진다.


사자가 돼서 날뛰는 아들을 구둣발로 찾아다니느라 발톱이 빠졌다는 소리에 30여 년 전 그날이 떠올라 웃음이 다. 그때만 해도 혈기 왕성해 울그락 불그락했던 아빠와 싸우고 집을 나갔던 너. 너 또한 그때 사자였으니 도리가 없었겠지. 불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뭐라도 해야 할 듯 해 나선 길. 새카맣게 어둠이 내린 동네는 오히려 내 가슴을 더 방망이질 해댔고 허둥대다 제 발에 걸려 길바닥에 나동그라졌던 어린 나. 찢어져 줄줄 피가 나던 내 무릎과 딱딱한 구두 속에서 시퍼렇게 멍들어 빠져 버린 네 발톱. 오버랩되는 두 상처를 마주하니 생각이 많아졌다. 명확한 것은 그때의 우리도 지금의 우리도 여전히 크는 중이란 것이다. 빠진 발톱을 보며 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거운 책임감으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린 아들을 등에 업고 서울로 향하던 그 안쓰러운 발길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그러니 너에게도 나에게도 이 시간은 축복인 것이다. 자식이면서 부모인 시간. 자식이었다 부모 됨으로 나아가는 이 시간. 살살 밀어 한 뼘이라도 더 넓혀서 뭐든 좋으니 감싸 안을 수 있게 홍두깨 운전 잘해보자. 찢어진 무릎도 흉터 없이 잘 나았으니 빠진 네 발톱도 금세 자라 제자리를 찾지 않겠나. 그러니 빈자리 올려다볼 날이 머지않았음을 잊지 말자. 눈물은 아무런 힘이 없지 않은가.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은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한시외전 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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