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을 통해서 사람은 시야가 확장된다.
스물여섯 살에 처음 가본 해외가 영국의 본머스였다. 영국 잉글랜드 남부에 있는 해안을 끼고 있는 작은 도시. 맥도널드 하나 없고 100년 된 펍이 있는 영국 사람들도 휴양을 하러 많이 찾는 곳이다. 첫 해외여행으로 어디를 갈까 설레면서 고민하던 중 대학교때 친구가 어학연수를 하고 있었던 본머스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때는 영국과 미국이 정확히 어떻게 다른지도 모르고, 영국이란 나라가 어떤 곳인지도 모른 채 단지 친구가 숙소를 공짜로 제공해준다기에 무작정 떠났다. 대학시절 영미문학 시간에 배웠던 제인오스틴이란 영국의 여류작가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래서인지 언젠가 한번은 영국이란 나라에 가보고 싶기도 하였다.
너무 추웠던 영국의 날씨만 기억이 난다. 5월이었기에 검정색 반팔원피스에 얇은 가디건 하나 걸치고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린 후 처음 맞았던 어두운 입국장과 바닥에 깔려있던 오래된 카페트 냄새가 생각난다. 여기가 영국이구나. 초여름 옷들을 가지고 갔는데 챙겨간 옷들은 한번 입어보지도 못하고 친구한테 빌린 두꺼운 겨울잠바만 걸치고 돌아다녔다. 그때 찍은 사진들을 보면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먼 곳까지 가서 사진기에 담아온 사진이라고는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코치를 타고 런던으로 구경을 간 첫날은 빅토리아 스테이션 역 화장실에서 가지고 갔던 돈 20만원을 잃어버렸다. 화장실에 가방을 두고 나와서 아차 싶어 금방 다시 들어갔지만 몇 분 안 되는 사이 가방이 없어졌다. 낯선 땅에서 돈을 잃어버리니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관광이 될 리도 없고 우울한 마음을 다잡으며 잃어버린 돈을 찾아보겠다고 역 근처에 있는 경찰서를 찾아갔다. 열변을 토하며 가방 생김새와 그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평소에는 말수가 많지 않은 편인데 위급한 상황이 되자 말이 빨라지면서 많아졌다. 역에서 잃어버린 가방을 찾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여행자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아서 미련을 버려야만 했다. 가라앉은 마음으로 본머스의 친구숙소에만 박혀 지내다가 가끔 코코아를 마시러 100년된 펍에 가거나, 해안가 산책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결국 예정보다 일찍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떠나온 영국이 그 후 내내 마음에 남았다. 제대로 못 즐기고 온 아쉬움이 컸던 건지 미련이 남았다고 해야 할지 자연스럽게 영국관련 서적을 찾아 읽게 되었고 읽으면서 그리움을 달랬다. 워낙 살인적인 물가의 나라이다 보니 연수를 가는 것도 쉽지가 않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새삼 본머스로 연수를 갔던 친구도 다르게 보였다. 그리움은 집착으로 바뀌어 언젠가는 영국에 꼭 다시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생각만 하던 일을 서른한 살에 정말 이루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서 현실도피처로 도망치듯 떠나간 곳이 영국이었다. 처음처럼 아무런 준비 없이 또 무작정 떠나게 되었지만 그동안 책을 통해 쌓아놓은 지식과 그곳으로 다시 가게 된다는 생각에, 절망 속에서도 알 수 없는 설렘을 느끼면서 이번에는 영국을 제대로 볼 수 있겠다는 확신까지 갖게 되었다.
런던에서 약 한 시간 기차를 타고가면 엘리자베스 여왕이 즐겨 찾았다는 브라이튼이라는 작은 해안가 도시가 나온다. 그곳에서 어학연수를 했던 선배에게서 아름다운 도시라는 얘기도 들었고 런던에서도 가까워서 망설임없이 연수지로 정했다.
영국인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현장에서 집을 짓는 영국인 남편과 그 남편과 결혼하면서 영국인이 된 인도인 아내, 그들 사이의 조와 매튜라는 여덟살 한 살된 남자아이 두 명이 있는 집이었다. 항상 들어왔던 미국악센트에 익숙해서, 강한 악센트와 연음이 없는 영국영어를 금방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다. 수업내용을 모두 이해할 수도 없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노동자계급층에 속해있던 영국인 집주인이 쓰는 영어는 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영국은 귀족신분이 존재하며 상류층, 중산층, 노동자계층의 사회적 계급이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다. 중산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현대사회에서는 계급의 구분이 많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의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각 계층끼리 쓰는 언어도 다르며 서로 어울리는 일도 많이 없다. 보수적인 나라인 것 같지만 찰스왕세자와 그의 오래된 내연녀였던 카밀라 파커 볼스와의 결혼, 최근에 해리왕자와 미국의 여배우인 메건 버클의 결혼을 허락한 것을 보면 시대의 흐름을 타고 변화를 수용하는 나라이다. 《런던, 숨어 있는 보석을 찾아서》란 책에서는 “런던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변화에 순응하며, 또는 변화를 리드하면서도 런던 자체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을 언제나 유지한다는 점에 있다.” 고 하였다. 하지만 이 말은 비단 런던이라는 도시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영국이라는 나라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2층 내 옆방에는 일본에서 온 나미라는 여자아이가 머물렀다. 1년 가까이 그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있었는데 상냥하고 친절해서 어느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성격이었다. 집주인은 나미가 가족들에게 너무 잘 적응해서 진짜 가족과 다를 것이 없다고 했다. 학원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집주인이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아이들과 한 시간 이상씩 놀아주었다.
하루는 다함께 즐거운 저녁을 먹고 얘기를 나누다 2층 각자의 방으로 올라왔다. 나미의 방문이 조금 열려있어서 나는 살짝 노크를 하고 방문을 열었다. 조금 전까지 환하게 웃고 있었던 나미가 방안에서 혼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당황하고 미안했던 나는 서둘러 문을 닫고 나왔다. 일본인들은 속마음을 표현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밝은 나미도 남몰래 힘든 점을 참아내며 영국인 가족들과 잘 지내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있는 가정 속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일상생활을 하다 보니 한국에서 겪었던 시름들은 잠시 잊혀 가는듯했다. 그렇게 한 달을 같이 지내던 나미가 일본으로 돌아가고 나는 영국인 가족 틈에 혼자 남았다. 나미가 함께 있을 때는 괜찮더니 혼자서 그들과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조는 나미가 그랬던 것처럼 자기와 시간을 보내주길 바랬지만 저녁을 먹으면 방에 가서 혼자 조용히 쉬고 싶고 다음날 수업준비도 하고 싶었다. 그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혼자서 생각하고 정리할 시간을 갖고 싶었다.
저녁도 밖에서 먹고 들어가는 날이 많아지니 며칠에 한번씩 얼굴을 보는 꼴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거실에서 만난 집주인에게 인사를 하자 투명인간 취급을 하며 모른 척을 하고 지나갔다. 놀라서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 후 샤워를 너무 오래한다, 저녁을 다 먹지 않고 남긴다 등 사사건건 트집이었다. 가족과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나의 모습이 못마땅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단 생각은 시간이 한참 지난후에야 떠올랐다.
그 후 이탈리아와 스웨덴에서 예쁜 여학생들이 홈스테이를 하러 들어왔고 그녀들 때문에 집안 분위기가 다시 밝아졌다. 여학생들을 의식해서인지 영국인 집주인도 더 이상 나를 투명인간 취급을 하지 않았다. 어학원에서 한국아이들과 이런 사정을 얘기하다보니 나만 그런 황당한 일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아이도 홈스테이부터 시작했지만 집주인과 맞지 않아서 중간에 나와 플랫에서 생활을 했고, 다른 아이도 집주인과 사이가 안 좋아서 스트레스를 받다가 관계를 위해 노력을 하니 사이가 회복이 되기도 했다. 나는 이미 한국에서 상사와 동료들한테 치이면서 지쳐있었고 더 이상 관계를 위해 노력할 힘도 남아있지 않아서 홈스테이를 나오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마음씨 좋은 이탈리아 할아버지가 집주인인 플랫을 구하게 되었다. 어학원에서 플랫까지 걸어가는 거리가 너무 아름다웠다. 집안의 현관은 어찌나 아기자기한지 마치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 나오는 한 장면 같았다. 무엇보다 하루일과를 끝내고 돌아가서 편히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때부터 주말마다 코치를 타고 숨어있는 영국을 찾아다녔다. 런던에서는 지도만 펼치면 도와주겠다며 다가오는 매너 좋은 영국남자들 덕분에 그 이면에는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든, 여행자로서는 신사의 나라임을 느낄 수 있었다.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의 느낌이 도시 전체에 가득한 캔터베리,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각색해 거리에서 공연을 펼치고 도시 전체가 크리마스 축제 분위기였던 로체스터, 세계 표준시로 유명한 그리니치, 그 외 옥스퍼드, 윈저, 캠브리지, 스톤헨지 등 소도시로 갈수록 그리고 시골로 갈수록 영국의 아름다움을 더 느낄 수가 있었다.
영국의 날씨는 변덕스러운 것으로 유명하다. 그 곳에 머무르면서 변덕스러운 날씨를 직접 겪어보니 왜 세계의 대문학가들이 영국에서 많이 탄생이 되었는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빗방울이 곧 떨어질 거 같은 어둑 푸르스름한 하늘과, 오후 4시만 되면 깜깜해지기 시작하는 영국의 겨울. 무엇인가를 쓰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 날씨였다. 날씨가 무언가를 쓰게 만들었다. 영국에서는 서점과 동네 도서관에 가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다. 내용도 풍부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고 종류도 다양했다. 영국 사람들만큼 문학을 사랑하고 뮤지컬, 연극 등의 공연문화를 즐기는 국민들도 없을 듯하다. 이런 다양한 문화적인 볼거리 때문에 내가 영국을 좋아했나 생각을 해봤다. 함께 공부하던 동생이 명쾌하게 그 이유를 정리해주었다. “누나, 명품 좋아해요? 영국이 명품 같은 나라에요” 나도 명품을 좋아하는 여자였다.
언제 다시 올수 있을지 모르기에 많이 본다고 보고 경험한다고 경험했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았다. 도망치듯 급하게 떠난 영국에서 무엇을 얻어왔을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외국에서 일하면서 살아보기” 가슴속에만 남아있던 못다 이룬 나의 꿈. 좌절된 꿈에 대한 앙금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이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비록 암담한 마음으로 떠나게 된 곳이었지만 거기서 보낸 5개월이란 시간이 그 후 살아가는 내내 나에게 은근한 자신감이 되어 주었다. 공부를 한 것도 자격증을 따온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속에 섞여 살면서 외국이란 곳에 대한 환상과 동경이 사라졌다. 환상과 동경이 사라지자, 사람들의 진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여러 번 들어도 실제로 한번 보는 것보다는 못하다는 뜻으로, 실제로 경험하는 것이 중요함을 이르는 말이다. 백번을 들어도 경험을 통해서 직접 깨우치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다. 나에겐 ‘내 꿈’ 이라는 것이 그렇다. 생각만 하고 가슴속에만 고이 간직한 꿈은 내 자신과 나의 삶에 어떠한 변화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는 말은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