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이기에 기한이 있다는 말

비혼은 아니지만, 서두르지 않기로 한 결론

by 수아린


마음은 여전히 사랑을 믿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랑을 이야기하려는 순간 나이는 늘 함께 따라온다.


“마음은 아직 20대인데, 머리는 30대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웃어넘기면서도 마음 한쪽이 불편해진다.

그 말속에는 늘

‘그래서 이제는 그럴 여유가 없지 않냐’는

의미가 함께 들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예전의 나는

결혼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연애는 하더라도

결혼은 언젠가 선택할 수도 있는 일 정도였다.


그런데 30대 중반이 되니 생각이 달라졌다.

결혼이 급해졌다기보다는

‘시간’이라는 현실이

이제는 분명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사람은

미래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책임감,

사소한 순간에도 다정함을 잃지 않는 태도,

성실함,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존중해 주는

사람이라 말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말이 있다.


“그게 제일 어렵지. 시간도 없는데 차라리 조건을 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서 더 마음이 아프다.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이 고민의 대부분은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여성에게 시간은 늘 조건처럼 따라붙는다.


결혼한 친구가 언젠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여자 인생에서 결혼을 선택하지 않으면

선택지가 훨씬 많아져.”


아마 그 말은 그녀가 나라는 사람을 잘 알기에

할 수 있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나는 늘 꿈이 많았고

혼자서도 삶을 잘 꾸려온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한동안은 나를 조금 줄여볼까 생각했다.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 척도 해보고

독립적인 삶을 대수롭지 않게 말해보기도 했다.


그러면 선택이 조금은 쉬워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더 불편해졌다.

설명하기 어려운 자멸감 같은 감정만 남았다.


나는 이상향의 대상조차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조금만 노력하면

나도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을 떠올려왔다.


그런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나이를,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부정하려 하니

마음이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불안은 결국 한 가지 질문으로 돌아온다.


시간.

임신이라는 단어 앞에 놓이게 되는 그 유한함.


이건 예민함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이다.

그래서 나는 자꾸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럼 나는 결혼을 못 하는 걸까?’

‘아이를 갖고 싶은데 아무나 와 결혼할 수는 없잖아.’


주변을 보면 예전에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은

이미 가정을 꾸리고 살아간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괜히 내가 틀린 선택을 해온 건 아닐까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것도 있다.

그들이 더 옳은 선택을 해서 그 자리에 있는 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지금의 나는 이렇게 정리한다.


결혼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비혼은 아니다.

그렇다고 급하게 결혼하고 싶지도 않다.

좋은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때 결혼하고 싶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줄이지는 않겠다고.


요즘의 나는 나라에서 지원하는

임신 사전건강관리 사업을 신청하고

산부인과를 다니며 내 몸의 상태를

차분히 들여다보고 있다.


이건 조급함 때문이 아니다.

선택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스스로 지켜두기 위해서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이 삶이 맞고 틀리다는 판단보다

한 번뿐인 내 인생을

누구에게도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내 길을 걷는 일이

지금의 나에게는 더 중요하다는 것을.


사랑이 먼저 오든 아직 오지 않든

나는 내 삶을 관리하며 살아가고 싶다.


꼭 남들이 사는 방식대로 살지 않아도

틀린 인생은 아니니까.

인연에 대해서는 세상의 흐름에 맡기기로 했다.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아주 늦은 봄 같은 순간에

나와 속도를 맞춰 함께 걸어갈 사람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적어도 나는

나를 버리지 않은 채 여기까지 왔으니까.


지금 이 정도의 결론이면

지금의 나에게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