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였기에 가능했던 사랑
영화 〈만약에 우리〉를 보며
많은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나의 시절연인이 떠올랐다.
연애를 통해 나는 사랑을 알았고, 배웠고,
그 과정 속에서 조금은 성숙해졌다고 느낀다.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가진 것은 없었지만 전부를 주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와 함께 성장하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갖지 못했던 우리는
서로의 전부를 주면서도 늘 미안해했다.
그 시절의 우리는 참 단순했다.
돈이 없어도 떡볶이 하나만 있어도 충분히 행복했고,
차가 없어도 버스를 타고
버스 안에서 이어폰을 나눠 끼고 음악을 들으며
그의 어깨에 기대 잠들던 순간은 참 포근했고,
함께 걷던 그 밤의 공기가 유난히 좋았다.
그와 함께라면 어디든
그 길은 마치 라라랜드의 한 장면 같았다.
배낭 하나씩 메고 떠난 여행에서는
서로의 짐을 나누어 들었고,
9시간 기차를 타고 환승하며 새벽에 도착한 정동진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정동진의 작은 민박집에서 민박집 할머니가 차려준
소박한 아침밥을 먹고 나와
바다를 구경하고 돌아온 적도 있다.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었지만
그날의 기억만은 아직도 선명하다.
더운 여름이든, 추운 겨울이든 변함없이 나를 데리러 오며
활짝 웃은 얼굴로 손을 크게 흔들던 그의 모습,
돈이 없던 시절의 크리스마스이브,
그가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던 선물을
머리맡에 몰래 두고 그가 좋아하겠지 기대하며
일어나기만을 기다리던 밤도 있었다.
그때의 나는 사랑이란 이런 것이라고 믿었다.
부족해도, 가진 게 없어도 함께라면 충분하다고.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보잘것없다고 느껴졌던 나의 전부를 내어주며
나는 나 자신에게까지 자괴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가 내가 아니라 더 나은 사람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그도 같은 생각이었을까?
그 생각으로 우리는 마지막 이별을 맞았다.
우리의 헤어짐 속에 나의 마지막 말은
영화 속 여주인공이 울면서 했던 말과 닮아 있었다.
“너를 만난 후에 눈물이 많아졌다.”
행복해지려고 시작한 관계에서
왜 점점 눈물이 많아지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분명했던 건 더 이상 울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관계를 놓았다.
놓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나를 붙잡아 주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부족한 사람인 것 같아 미안하다며
그 말만 남기고 나를 떠났다.
남자 주인공이 마지막에
“만약에 우리가…”라고 말했을 때,
여자의 대답에 깊이 공감했다.
그 장면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별 후에 남자는 후회가 남고,
여자는 다 써버린 마음이 남는다.
나는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꼈을 때
그 관계를 놓았던 것 같다.
돌아보면
그 시절의 우리는 참 찬란했고, 생각보다 아름다웠다.
불안했고 부족했지만
누군가를 전부로 사랑할 줄 알았던 나의 청춘이었다.
그 시간을 혼자 지나온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건너왔다는 사실이
이제는 고맙게 남는다.
그 시절의 나를 함께 걸어줘서,
그 청춘의 한가운데를 함께해 줘서
고맙다는 마음이 든다.
시절연인은 보내주는 게 맞다.
그 시절, 그 사람과 함께했던 기억은 분명 소중했고
그 시간을 통해 나는 성장했다.
하지만 그를 만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때가 바로 그 시절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 시절을 통과한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