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녀

by Soo

작고 연약한 생이 사라진 자리에 남겨진 건, 울음소리도 아니고 심장 모니터의 평평한 선도 아니었다. 그날 우리를 가장 아프게 한 건, 사망선고 그 순간까지 무명으로 남아 아이의 이름조차 부르지 못한 현실이었다.



"오늘 야식 뭐예요?"

"김치덮밥 컵반?"

"오늘 좀 한가한데 저 야식 좀 먹고 올게요."

"김정안 간호사!!!"

모두가 한 목소리로 외친다.

"누, 누가 응급실에서 '한가'라는 말을 하는가?"

"한가는 한가위에나 쓰는 말." "이정민 선생님, 하나도 안 웃겨요."

"응급실 금기어 중에 '한가롭다', '여유 있네', '오늘 조용하네' 이런 거 있는 거 모르세요?" "앗, 또 제 입이 방정이네요. 방정."

김정안 간호사가 울상을 짓는다.

"괜찮아요. 할 수 없죠. 저 근데 이런 날 꼭 탑니다."

박우현의 괜찮지 않은 말이었다.


새벽 2시, 119 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심정지로 CPR 아기 수용 가능한가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는 다급했다.

"7층 높이에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보통 소아들은 약물 용량을 계산하려면 몸무게나 연령 정보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119 문의가 오면 미리 물어서 준비한다. 그러나 이 아기는 몸무게도, 연령도, 이름도 알 수 없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 심장이 멈췄다는 것, 그것 외의 정보가 없는 상태로 아이가 병원으로 오고 있다.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안고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었고, 엄마는 성인 응급실로, 아기는 소아응급실로 이송 중이라는 보고가 다였다. 둘의 심장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멈춰 있었고, 각기 다른 공간에서 심폐소생술이 시행되었다.

아이의 이름은 아직 없었다. 아이는 '무명녀 1', 엄마는 '무명녀 2'로 접수되었다. 필요한 약과 처치를 오더해야 하기 때문에 접수는 해야 하는데 정보는 없어 생긴 일이었다.

"이카트(E-cart)에서 브로스로우 테이프를 꺼내주세요."

"연령대 대략 6개월입니다. 삽관 준비해 주시고, 라인 확보되는 대로 에피네프린 투약해 주세요."

그 작은 몸에 맞는 기관삽관 튜브를 고르고, 약물 용량을 계산했다. CPR이 시작되었고, 압박할 때마다 아이의 입에서는 우유가 흘러나왔다. 소생실 안은 금세 아기 우유 냄새로 가득 찼다.

"가슴 압박 지속하면서 외상 체크할게요. 두부에 혈종이나 함몰 없습니다. 팔다리 변형도 없어 보입니다."

그 아이는 마치 잠든 듯 보였다. 7층에서 떨어졌다는 말이 무색하게, 어디 하나 크게 다친 흔적조차 없이 뽀얗고 통통했다. 부러진 뼈와 전신에 피를 흠뻑 뒤집어쓴 채 성인 응급실로 실려간 엄마의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다.

극단적 결정을 한 순간에도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고, 뛰어내리는 순간에도 엄마가 온몸으로 충격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의 심장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지만, 리듬은 끝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사망을 선고하고 보호자 정보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아이는 '무명녀 1'였다. 엄마 역시 무명녀 2인 채로, 얼마 후 사망이 선고되었다.

"아이가 떨어지기 직전 분유를 먹었나 봐요."

"생각보다 외상이 심하지 않은 게 엄마에게 꼭 안겨 있었나 봅니다."

두 명의 생명이 꺼져가도록 응급실에는 누구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정적뿐이었다. 그 정적이 서럽게 느껴져 간호사와 전공의 선생이 한 마디씩 보탰다.

"조금만 더 살아보지… 갈 거면, 왜 아이까지…"

누구도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모두가 똑같은 말을 가슴속에서 되뇌고 있었다.

새벽이 지나고,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올 무렵, 한 남자가 헐레벌떡 응급실로 뛰어들어왔다. 작업복을 입은 그에게선 짙은 땀 냄새가 났다. 충혈된 눈과 쉰 목소리로 그는 아기의 아버지임을 밝혔다. 야간 근무 중 연락을 받고 정신없이 달려온 그에게 우리는 아이의 소식을 전했다.

그는 주저앉아 오열했다. 더는 올 수 있는 가족도 없다고 했다. 울음을 멈춘 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서류에 사인했고, 장례절차를 위한 수속을 밟았다. 하루아침에 가족 모두를 잃은 사람의 어깨는,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무거워 보였다.

아마도 산후우울증이 있었을 엄마, 좁은 오피스텔에서 혼자 아이를 돌보던 지친 모습, 생계를 위해 밤낮으로 일했을 아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다른 가족의 부재. 그들의 삶이 하나씩 그려졌다.

아버지가 눈물을 그치기 위해 눈에 힘을 주고는 말했다.


"김이슬. 김이슬입니다. 우리 아기."


아버지가 오고 나서 얼마 안 있어 김이슬, 7개월로 인적정보가 수정되었다. 한참을 울던 아버지는 무거운 걸음을 떼어 서류를 작성하고 사망진단서를 발급받기 위해 원무과로 향했다.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그에게, 의료진은 장례식장으로의 이송, 사망진단서 발급, 경찰 조사 등을 하나하나 차분히 안내했다. 상실의 충격 앞에서도 현실적인 절차는 냉정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우현은 소생실에 혼자 누워있는 아이에게 조용히 말했다.

"미안해. 이슬아.”

우현은 목이 메었다.

“이슬아. 좋은 데서 행복하게 쉬자."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우현조차, 스스로를 용서하기 어려운 밤이었다.



다음날, 우현은 병동에 앉아 구조의 손길을 내밀기엔, 이미 너무 깊고 고단한 절벽 아래 있었던 가족에 대해 생각했다. 의사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도움을 요청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그들의 삶. 단순히 목격자로만 남기에는 너무도 비극적이었다. 이런 슬픔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누군가는 이 어둠을 말해야 한다. 돌봄에서 소외된 이들,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사람들, 목소리를 내지 못한 생명들에 대해 더 많이 말하고, 더 많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토끼 인형을 손에 쥐어주었다.

“선생님 오늘 아파 보여.”

“오늘 선생님이 힘이 없네.”

“그럼 이거 꼬옥 안고 있어, 요.”

“토끼 인형이네, 얘 이름이 뭔데?”

“도도. 비밀인데 엄마가 이 안에 들어가 있대. 그래서 지아가 아프고 힘들고 괴로울 때 꼭 안아주면 괜찮아져.”

“도도가 지아 애착 인형인가 보다.”

“애착 인형이 뭐야, 요?”

“아기 때부터 옆에 있는 인형.”

“아니, 엄마 인형이라니까.”

“그렇게 소중한 걸 선생님한테 빌려줘서 고마워.”

아이의 때 묻은 작은 인형 하나가, 그날 우현에게는 사람의 손길보다 더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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