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은, 응급실 안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섬처럼 느껴진다.
뉴스문구: “최근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병원마다 격리실 부재로 119를 받지 못하는 사례까지 급격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코로나 언제쯤 없어질까요? 이번에 저희 신규 선생님도 걸려서 격리 들어가면서 근무 스케줄이 엉망이에요.”
티비를 멍하니 주시하던 김정안 간호가 말했다.
“그러게요. 다들 정말 힘드네요.”
“제일 힘든 건 애들이죠. 코로나 걸리면 격리병상 없다고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그때 119 폰이 울렸다.
“부모가 다 코로나로 확진된 4세 남자 환아인데 경련 중이에요. 벌써 세 번째 경련이고 지금 15분 넘게 이어지고 있어요. 그런데 주변에 격리실이 없어 어디서도 안 받아준답니다.”
“어쩔 수 없죠. 소생실로 받겠습니다. 보안 요원한테 이야기해서 다른 아이들과 접촉 없도록 동선 확보해주세요. 소생실에서 먼저 보고, 격리실 1번 아이 퇴원하면 그리로 옮길게요. 나머지 환자들은 경증 구역 열어서 그쪽에서 초진 봅니다.”
10분 후, 환자 도착. 아이는 아직도 경련 중이었다.
“라인 확보되면 아티반 주세요.”
아티반이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련은 멈췄다.
“혈액가스 결과 나왔습니다. 이산화탄소(CO2)가 200 넘어요.”
“청진상 양쪽 천명음 들리네요. 기관삽관 준비해주세요.”
그날 그렇게 소생실로 들어온 4살 아이 조동진의 경련은 멈추었고, 삽관은 성공했다.
그러나 경련만 멈춘다고 해결될 것이 아니었다. 이제 환자를 받아줄 곳이 필요했다.
“유민 교수님? 선배 아이 좀 받아줘요. 지금 응급실 차트에 떠있는 조동진 4세 남아로 코로나 확진, 모세기관지염과 바이러스성 폐렴이 동반되어 있는 기관 삽관되어 있어요. 올라갈 중환자실이 있을까요?
“선배 소리까지 나왔네. 왠만하면 받아주고 싶은데 어쩌지? 중환자실 풀인데.. 에크모 달고 안좋은 애들이 많아서 당장 자리가 날 거 같지가 않아. 자리가 있어야 받는데. 모니터할 기계도 필요하고..”
소아중환자 의학과 유민 교수가 난처함을 담아 대답했다. 격리 중환자실 병상이 없었다. 전원문의를 위해 거의 전국에 있는 병원에 전원문의를 하였으나 격리병상이 없다는 답변 뿐이었다.
“우리 병원 중환자실도 못 올라가고 전원도 불가능하네요.”
“일단 응급실에서 봐야 할 거 같아요.”
안 그래도 계속 응급환자가 실려오고 격리 해야할 환자를 가려내야 하는 시기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그렇게 응급실에서의 하루가 지나갔다.
우현은 갑갑한 마음을 가지고 응급 병동 환자를 보기 위해 병동을 향했다. 어느새 뒤에는 지아가 따라 붙었다.
“선생님 회진 돌아야해.”
“나도 같이 돌아, 요.”
지아 할머니께 부탁드리려고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달래다가 하는 수 없이 응급 병동에 들어섰다.
“교수님 오늘 회진돌때는 작은 아이도 데리고 오셨네요.”
성격 좋은 장염 환자 보호자가 말을 건넨다.
“학생들, 전공의가 주로 따라오는데, 오늘은 꼬마 의사가 같이 왔어요.”
우연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회진 중에 계속 우는 아이에게 지아가 주머니에서 비타민을 꺼내서 건넨다.
“이거 잘해서 주는 거야. 지아도 잘해서 받았어.”
아이가 다가서자 낯을 가려 울던 아이가 조심스레 손가락을 내밀어 잡았다. 그 사이에 우현은 아이에게 청진을 했다.
“어머 아이가 이런말도 할 줄 알아요?”
보호자들이 감탄했다. 꼬마 의사와의 짧은 회진은 끝이 났다. 지아는 아쉬운지 우현에게 몇가지 질문을 하다가 나타난 할머니 손에 이끌려 사라졌다. 답답하고 고된 시간 속에서 아이의 선의는 이렇게도 따뜻하다고 우현은 생각했다.
“오늘도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요.”
“받아줄 병상은 없는데 아이는 드라마틱하게 좋아지네요. 기뻐해야 하는지 슬퍼해야 하는지.”
“설마 여기서 퇴원하게 되는 건 아니겠죠?”
“김정안 간호사가 뱉은 말대로 이루어질때가 많던데..”
김정안 간호가 입이 방정이라며 뒤늦게 후회했다.
“기관삽관 제거가 가능할 거 같으니까 적어도 격리 중환자실까진 필요하진 않으니 내일은 희망이 있지 않을까요? 희망을 가집시다.”
우현은 힘차게 말했다. 그래도 아이가 좋아져서 인지 다들 표정이 나쁘지만은 않다.
“교수님 보호자께서 병원 식사 시키고 싶다고 하세요.”
응급실 체류의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응급실 체류중인 환자의 식사는 나오지 않는다는것. 보호자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밖에서 배달을 시키면 간호사가 전달해주는 식으로 보호자는 끼니를 떼웠다. 간호사들의 일이 많아졌다.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응급환자를 보면서 병동처럼 아이 상태를 확인하고 거기에다 식사까지 넣어주고 오물이나 쓰레기도 치워야 했다.
의료진의 부담이 커져 매일 아침마다 다시 전원문의를 하였지만 여전히 받아줄 병원이 없었다. 그래도 아이는 응급실 안에서 빠르게 호전되어 주렁주렁 달려있던 튜브와 중심정맥관, 모니터 줄이 하나씩 사라졌다. 식이도 가능해졌다. 미음을 먹어보고 죽도 먹더니 이제 뭐든지 먹을 수 있다.
5일만에 아이는 완전히 회복되었다. 어느순간 격리실 안에서는 꺄르르 웃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퇴원해도 될 거 같다는 소식을 전해주러 들어간 우현에게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나 김밥 먹었어요! 왕창! 많이!”
그 한마디에 의료진 모두가 잠시 멈춰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엔 모두 지쳐 있었다.
아이가 머무르던 동안, 응급실 환자를 보면서 격리중환자실에 이어 격리병실도 운영한 셈이었다. 아이 상태가 좋지 않았던 초기엔 다른 중증 환자를 받지 못한 날도 있었다. 감염병으로 인한 병상 부족, 계속되는 인력 공백, 환자를 살리기 위한 선택과 그로 인한 또 다른 환자의 희생. 그것이 그들이 매일 감당하는 현실이었다.
“감염병이 돌때의 응급실은 더 전쟁터의 최전방 같아요. 응급실이 뚫리면 병원 전체가 감염되니 응급실을 거치지 않으면 안으로 진입할 수도 없고, 감염병 환자가 발생하면 이 안에 고립되네요.”
전공의 이정민이 말했다.
“맞아, 그렇다고 온 환자를 내보낼 수도 없고, 보낼 수 있는 공간이 없으면 응급실 내에 계속 쌓여가고 그럼 또 다른 환자가 막혀서 못 들어오고, 정말 어려운 문제다.”
생명이 위태로운 한 아이가 와서 기쁘게 생을 다시 느끼며 퇴원하였으나 그것은 빙산의 일각 같은 일이었다. 감염의 시대에서 응급실은 하나의 고립된 섬처럼 남아 있다. 바다처럼 밀려오는 환자 사이에서,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모두가 함께 버텨낸, 조용하고 긴 사투의 기억만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