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바다쟁이

선박의 똥이라니..

선박의 어원에 얽힌 이야기

by 항해사 어름

자동차의 왼편 또는 오른편을 뭐라고 부르나요?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나요? 왼쪽, 오른쪽이라 부르지 그럼 뭐라고 부르냐고요? 맞아요, 말씀하신 대로 왼쪽과 오른쪽이라는 말 외에는 굳이 달리 표현할 말이 없어요. 이게 무슨 말장난인가요? 혼란스러웠다면 죄송합니다. 이 질문을 드린 이유는 이게 오늘 주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에세이에선 선박에서 왼쪽과 오른쪽, 앞쪽과 뒤쪽을 일컫는 용어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실습생들이 첫 승선한 선박에서 의외로 많이 하는 실수가 바로 왼쪽 오른쪽을 헷갈려 지시와 반대의 위치로 가는 것입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왼쪽 오른쪽을 뜻하는 선박용어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박에서 좌측은 좌현(Port), 우측은 우현(Starboard)라 칭합니다. 좌현, 우현이라고만 하면 참 좋을 텐데 실무에서는 영어인 Port와 Starboard를 많이 혼용하여 씁니다. 이 용어들은 승선에 익숙해지고 적응되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믿기지 않는다고요? 이건 단순히 은어일 뿐이고 실제 공식 용어는 따로 있을 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신기하게도 Port, Starboard라는 용어는 전세계적으로 공통으로 쓰이는 공식 용어이면서 국제해사기구 및 각종 국제 법규에서 쓰이는 법적 용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방향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 용어들은 대체 어쩌다가 왼쪽과 오른쪽을 뜻하게 된 것일까요? 가장 유력한 설은 바로 ‘Starboard’란 용어가 ‘조종하다’라는 의미인 ‘steor’와 ‘측면’이라는 의미인 ‘bord’가 합성된 ‘steorbord’에서 유래했다는 설입니다. 선박의 역사는 약 6천 년 정도가 되었는데, 선박이 발명되면서 방향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조종 노(steering oar)’라는 것도 존재했습니다. 이때, 선원들 다수가 오른손잡이였기 때문에 선박의 오른쪽에 조종 노를 놓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선박의 우측을 steorbord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용어가 긴 세월 동안 굳혀져 오면서 ‘Starboard’라는 지금의 용어가 된 것이고요.


선박의 조종 노(steering oar)


좌현이 ‘Port’라 불리게 된 이유도 이와 똑같은 이유입니다. 조종 노가 우현에 위치했던 선박들은 자연스럽게 접안을 좌현으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항구를 뜻하는 ‘Port’라는 말이 좌현을 뜻하는 용어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굳어진 용어가 현대까지 변하지 않고 쓰이고 있다니! 신기하지 않나요?


이 용어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무전기는 보통 PTT(Push To Talk)라고 불리는 버튼을 누른 뒤 말을 하는 방식입니다. 이때, PTT가 눌리고 나면 2초 간 말이 먹히는 ‘딜레이 타임’이 발생합니다. 그러니 PTT를 누른 후 한 박자를 쉬고 이야기해야 시작 부분까지도 생략되지 않고 들리는 것이죠. 문제는 간혹 바쁠 때는 사용자가 이 사실을 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Starboard’라는 단어와 결합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지는데요. PTT를 누르자마자 “Starboard로 오세요”라 말하면, 앞의 “Star..” 부분이 먹히면서 마치 “Port”처럼 들리게 됩니다. 상대방이 대단한 독심술사가 아닌 이상 이게 사실은 “Starboard”였다는 진실을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상대방은 결국 전혀 의도와 다른 좌현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차라리 좌현, 우현이라는 말을 썼다면 앞부분이 잘렸다는 것을 상대방이 금방 눈치챌 텐데 말이죠. 그래서 선내에서 교신을 할 때에는 상대방의 말을 복창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네, 그럼 Starboard로 가겠습니다!" 혹시나 생길 수 있는 혼선을 막는 데는 복명복창 만한 것이 없습니다!


선박에서는 앞쪽, 뒤쪽을 뜻하는 용어 또한 별도로 존재합니다. 그건 바로 선수(앞쪽, Forecastle)와 선미(뒤쪽, Poop)입니다. 다만 이 용어들은 Port, Starboard 와는 달리 공식적인 용어는 아닙니다.


선수를 뜻하는 ‘Forecastle’은 중세 시대 건조된 선박 구조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당시 선박에서는 전투 시 선박 방어를 위한 목적으로 성 모양을 띤 구조물을 선수에 설치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앞쪽’을 뜻하는 ‘fore’와 ‘성’을 뜻하는 ‘castle’이 합성된 형태로 지금까지 이어온 것입니다. 이 용어는 신기하게도 보이는 대로 ‘포어-캐슬’이라고 발음하지 않고 ‘폭-슬’이라고 발음합니다. 이렇게 발음이 신기한 형태로 축약된 이유는 선원들의 발음 편의성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믿기지 않으시다면 주변 선원에게 ‘포어-캐슬’이라고 발음해 보세요. ‘Wednesday’를 ‘웨드-네스데이’라고 읽는 사람을 보는 듯 신기한 눈길로 여러분을 쳐다보고 있을 것입니다.


harbor-3493887_1280.jpg 선박의 forecastle


선미를 뜻하는 ‘Poop’는 ‘선미’를 뜻하는 프랑스어인 ‘poupe’에서 기원합니다. 사실 얼핏 들으면 다른 것이 먼저 생각나기 십상인 웃픈 용어입니다. 현재는 영어로 ‘대변’을 뜻하는 단어로 알려져 있어, 선원들조차 그 단어가 어원인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공교롭게 의미 또한 ‘뒤쪽’이라 더 믿기 쉽겠네요) 하지만, 알고 보면 그 의미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사실! 정말 구설수도 많은 재미있는 용어입니다.


‘Poop’가 너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보니 이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선원들도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분은 그 단어에 대한 거부감이 좀 컸던 나머지 하급자들에게 ‘Poop’라는 말 대신 ‘선미’나 ‘Aft’라는 말로만 선미를 지칭하도록 지시한 적도 있습니다. 물론 그 이후로 그 오해는 풀렸지만 말이죠.


선박은 참으로 용어가 독특합니다. 어원에 관심이 없다면 굳이 모르고 습관처럼 사용하는 선원들도 많고, 처음 선박이란 곳에 승선하는 실습생들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기민하게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서 용어를 오해해서 지시를 다르게 받아들이면 큰 사고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혹시 여러분은 여러분만이 갖는 업무 상의 은어 같은 것이 있나요?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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