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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해사 어름 Apr 10. 2023

적당한 것은 나쁘다

에센셜리즘

 '가장 우선되는 것'이라는 뜻을 지닌 영어단어 'priority'가 처음 등장한 것은 1400년대의 일이다. 그 이후 500년 동안 'priority'는 단수로만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1900년대 이후 'priority'의 복수형인 'priorities'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현실을 왜곡한 비현실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가장 우선되는 것'이 어떻게 여러 개일 수 있단 말인가.  - 그렉 맥커운, <에센셜리즘> -


우리는 늙는다


 째깍째깍. 시간은 흐른다.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다. 매초 380만 개 이상의 세포가 우리 몸속에서 죽고 살아난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우리는 촌각을 다투어 늙어가고 있다. 


 한없이 늙어가고 있는 우리에게 시간은 황금과도 같다.  그리고 이 황금의 주인은 우리 자신이다. 누구에게 이 반짝거리는 보석덩어리를 줄지는 오롯이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어떤 사람에게, 또는 어떤 일에게 우리의 황금을 건네주었는가?



우리는 '적당하게'


 우리 주변에는 '적당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완전히 좋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싫지는 않은 것, 그저 적당하게 좋은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적당한 것들에 우리의 시간을 쏟아붓는다. 나름의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예전부터 너무 가보고 싶던 맛집인데 줄이 너무 길다. 딱 마음에 드는 옷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나쁘진 않은 것 같다. 마음에 드는 후보는 없지만 저쪽 진영을 뽑기는 싫다. 직장 동료가 부탁한 일에 딱히 자신은 없지만 거절하기가 애매하다. 원래부터 고 싶던 직장은 아니지만 다른 곳으로 가기엔 자신이 없다.


 우리 삶을 가득 메운 적당한 것들에 우리는 '나름' 만족한다. 어쨌든 나쁘지는 않으니까. 물론 이런 순간도 필요하다. 세상은 항상 내가 바라는 대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순간들로만 삶을 채운다면 그때부터가 문제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우선순위는 사라지고, 그저 적당하게 늙어가는 것이다.



우리만의 필터 만들기


 <에센셜리즘>의 저자 그렉 맥커운의 일화는 '적당한' 것을 위해 살았던 과거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보여준다. 아내가 아이를 막 낳았을 때, 그렉은 고생한 아내와 건강하게 태어나준 아이를 위해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직감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에 중독된 그는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는 이메일을 무시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가족을 뒤로한 채 회의를 나갔고, 일에 '열정적인' 그의 모습을 보며 직장 동료들은 대단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정작 그렉 스스로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닌 것만 같아 온종일 좌불안석이었다. 결국 불안을 감지한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다지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나름 일과 주변인을 위해 했던 선택이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못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가족이 최우선이었던 사람에게 자신의 잘못으로 가족의 대행사를 같이 하지 못했던 기억은 얼마나 큰 괴로움이 될지 가히 상상하기 힘들다.


 그렉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삶에서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 우선순위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우리만의 강력한 필터를 만드는 셈이다. 필터가 완성되어야만 우리의 인생을 좀 더 일관되고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그 필터는 우리의 삶에 직접적으로 적용할 수 있어야 하기에 매번 고침의 과정이 필요하다. 아무리 가족이 먼저라고 한들, 유동적으로 시간을 바꿀 수 있는 가족 외식이라면 일에서 생사가 달린 중요한 임원회의보다 뒷전일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에 어떻게 필터를 적용해야 할지는 결국 정답이 없기에 사람마다 또는 경우마다 다를 수밖에 없고 그 선택은 오로지 그 사람에게 달린 것이다. 그리고 그때 중요한 것은 어떤 선택을 했는가가 아니라 그 선택에 대해 내가 후회하지 않는가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현명하게 꾸려나가는 단단한 필터를 가진 자는 자신의 선택에 확신이 있다.


 조금은 기다리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맛집을 가볼 줄 알고, 마음 한구석에 석연치 않은 옷이라면 과감하게 던져버린 후 다른 가게를 둘러볼 줄 알아야 한다.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그러면서 조금씩 큼직한 것에도 도전해 보자. 때론 결단력 있고 단호하게 말이다. 그러면 내 직장은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직장에 근접할 것이고, 내 여가생활은 더더욱 풍요롭고 활기차게 변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동안에도 여러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계속 흐르는 중이다. 오늘 당신이 했던 일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그것들에 당신은 얼마만큼의 황금을 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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