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항해사 어름 May 30. 2023

착한 증오

혐오 사회에 대하여


고요한 전쟁


 몇 년 전부터 세대나 젠더 간의 갈등은 어느 때보다 더 심각한 주제로 부상했다. 일명 MZ세대와 기성세대의 첨예한 다툼을 비롯해 각 성별끼리의 전쟁은, 얼핏 평화로워 보이는 이른 새벽에도 이어진다. 가로수의 살랑거리는 소리와 산책길을 걷는 외딴 커플의 소곤거리는 이야기까지 들릴 법한 고요함 속에도 여전히 숨을 죽인 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서로 물고 헐뜯는 첨병이 즐비한다.



 유서 깊은 전쟁


 여기에 대고 “요즘 사람들은 정이 없어”라거나 “역시 헬조선이야”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으나 사실 이런 전쟁은 인간이란 종이 생겨난 시점부터 국가나 지역을 불문하고 끊임없이 존재했을 것이다. 단지 그 대상이 옆 동굴 아저씨, 부족장, 탐관오리, 다른 종교, 다른 이념 등으로 끊임없이 옮겨갔을 뿐이다. 일례로, 적어도 요즘 세상에서는 단지 기독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들입다 처형하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지금의 상황이 더 낫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정도는 비슷하되 그 양상만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전쟁을 치르는 사람들은 칼이 아닌 말로 다른 이들을 죽인다.



 나쁜 증오


 '증오'라는 것은 참으로 중독성이 강하다. 여기에 한 번 잠식되면 다시 빠져나오기는 매우 어렵다. 그렇기에 이 증오라는 감정만큼 기가 막힌 콘텐츠가 없다. 유튜브 영상 제목을 조금만 자극적으로 뽑아내면 증오라는 약물에 중독된 이들이 물밀듯 밀려들어오고, 조회수를 먹고사는 이들에게 그로 인한 수입은 꽤나 짭짤하다. 그에 반해 이 낚싯바늘에 걸려버린 수많은 이들은 마음속에 멈출 수 없는 분노를 가득 쌓은 채 하루를 통째로 더러운 기분으로 망치고야 만다. 이 '나쁜 증오'를 재생산한 이들을 비롯해 단순히 이에 노출된 사람들까지도 무의미한 불행을 끊임없이 지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증오가 병들게 하는 것이 비단 사회뿐인가? 사실 그 증오로 인해 가장 피해를 보는 이는 그 증오를 생산한 당사자들일지도 모른다. 심리학자 알프레트 아들러는 사람이 자신의 가치를 실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라고 여겨질 때뿐이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 나쁜 증오를 통해 주변인에게 도움이 되지는 못할 망정 해악만을 끼치는 사람은 왕창 벌어들인 수익으로 인해 그 순간만큼은 쾌락을 맛볼 수 있을지라도, 적어도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절대 할 수 없으며 그로 인해 종국에는 삶의 무의미함을 절실히 느끼는 순간에 다다를도 모른다.



 착한 증오


 그래서 증오가 나쁘기만 하냐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기득세력인 왕족에 대한 증오가 없었다면 프랑스혁명이 과연 일어났을지 알 수 없다. 일제에 대한 증오가 없었다면 3.1 운동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며, 일당독재에 대한 증오가 없었다면 4.19 혁명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감정은 그토록 강력한 만큼 수많은 사람들을 한데 결집시키고 세상을 변혁시키는 힘이 있다. 이럴 땐 이 증오라는 놈은 나름 '착한' 친구라고 볼 수 있다. 착한 증오는 다른 증오와는 사뭇 다르다. 이 감정에 매몰된 순간은 미친 듯이 괴로웠을지언정, 결국엔 그것이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는 세상에는 ‘자산'과 ‘부채’라는 두 가지 상충되는 개념이 있다고 한다. 자산은 끊임없이 추가적인 수입을 불러오는데 반해 부채는 추가적인 지출만을 불러온다. 부자가 되려면 부채는 최대한 없애고 자산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착한 증오'라 함은 결국 사회에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게 하는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나쁜 증오는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기는커녕 사람들의 하루를 망치고 사회를 악과 어둠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하는 ‘부채'인 것이다. 증오를 생산하거나 소비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이 사회에 자산을 창조해내고 있는가 아니면 부채만을 축적하고 있는가?



 빚덩이가 아닌 자산이 되어


 내가 이 사회에 그저 빚덩어리일 뿐이라면 그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슬픈가? 그저 서로를 부추기고 이로써 조회수만을 올리기에 바쁜 유튜버, 그리고 이를 소비하며 증오를 탐닉하고 끝도 없이 재생산해내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깊게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세상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 어려운 것들을 가지고 거래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이 마약 판매상이나 마약 중독자와 다를 게 뭐란 말인가?


 증오는 어떤 면에선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 사회의 썩어 문드러진 면들을 제거하고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어줄 수 있는 기폭제가 된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자칫 초래할 수 있는 어두운 면들에 대해 좀 더 면밀히 생각해 보고 내 감정과 다른 이들의 감정을 다룰 때 조금 더 신중해져 보는 것이 어떨까? 당신이 착한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리고 세상에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기억의 씨줄, 그리움의 날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