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나는 나를 드러낼 것이다.
나는 나를 인정하기로 하였다.
「창작을 좋아하는 나는 감으로 어느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다.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개입되는 모든 창조는 나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행위라는 것을. 하여,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보이는 대로 표현만 하면 된다는- 사진을 좋아했던 내 이유는 사진에 대한 일종의 모독이었다는 것을. 나는 너무 안일했다. 결국, 글뿐만이 아닌 사진 역시 나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날이 오고 말았다.」
첫 글을 쓸 때까지만 해도, 나는 글이든 사진이든 뭐든 나를 드러내는 것이 무슨 꼭 큰 일을 하는 대단한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매우 조심스럽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런데 쓰고 보니 웬일로 별 게 아니었다! 나는 현재 이혼도, 가난도 흠이 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현재 기혼이며 가난하지 않다.
게다가 사진을 찍고 글을 배우는 행위가 고마웠던 것은, 뷰파인더로 보는 세상에 내가 조금은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인연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나의 과거의 기억 혹은 사랑하는 사람의 본질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어떤 사진을 찍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배워보니, 그리고 또 써보니, 사진과 글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인지 궁금해하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다는 것, 착하게 되고 싶으면 그 이상 나아지지 않는 것, 특이하지 않게 되고 싶지 않으면 끝맺음을 할 수도 없고 당당하게 설명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그 둘은 닮았다. 그러나 가장 닮은 점은 사진과 글은 둘 다 언어여서, 근본적으로 화자인 나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받아들이고 인정하지 않으면 피상적인 미사여구만 나올 수밖에 없다. 진실된 힘은 나에게서 비롯된다.
어느 맑게 개인 날, 나는 마음속의 문을 똑똑, 두드렸다.
이파리가 어쩐 일이냐고 열린 문 틈에서 살랑거렸다. 나는 내 안에 살고 있는 그 관엽식물에게 이파리라는 이름을 진작에 지어주었다.
나는 말했다. "아니, 그냥 놀러 와 봤어."
그러자 이파리는 나에게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나는 초대받은 집에 한 발, 몇 발을 내디뎠다.
이파리의 집은 작았지만 아늑했고, 나무 향기가 났다.
내 말에 이파리는 웃었다. 그러고선 하던 일이 마저 있으니 천천히 집 구경을 하라고 안락의자에 앉았다.
나는 그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서 지켜보았다.
이파리는 신고 있던 신발에서 흙을 탁탁 털고 뿌리를 꺼내더니 창문으로 가득 들어오는 햇살에 뉘었다.
나는 오래전에 보았던 모습이 생각났다- 하야면서도 노리끼리한 뿌리가, 칼로 머리카락을 끊어버린 것처럼 얼기설기 잘려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 뿌리가 머리카락처럼 곱게 길어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뿌리를 가리켰다. "어, 뿌리가 많이 길었네."
이파리는 말했다. "응, 햇빛에 말리니까 좀 자라더라고. 한 번씩 이렇게 케어해줘야지."
뿌리는 한 번 잘리더라도 쉽사리 죽지 않는다.
썩은 부분은 도려내거나 영양을 배양하면 어떻게든 살아난다.
'나는 널 절대 포기하지 않아, 네가 좋아하는 건 뭐든 해줄게' 하며 다정한 말과 행동으로 시간을 들여 찬찬히 돌보다 보면, 뿌리는 어떻게든 힘을 내어 제 몸을 일으키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망설이고 미뤄왔던 사진 포트폴리오를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끝낸 적이 없었던 글 한 편을 드디어 마무리하고 있다. 이렇게.
이파리는 눈을 감고 햇볕을 얼굴에 가득 받고는, 눈 한쪽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어때? 나는 여전히 빛나고 있지?"
그런 그를 나는 열심히 쓰다듬었다.
"그래. 반짝이는 건 누가 와도 막을 수가 없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