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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런저런

<널 보낼 용기>, 절망을 이겨내는 글쓰기의 힘

송지영 지음

by 룸펜

11월 11일. 날이 날이다 보니 수능이 코앞인데도 고3 아이들은 서로 빼빼로를 나누며 깔깔깔 웃고 있다. ‘이것들이 정신이 있나 없나…’ 혀를 끌끌 차고 있는데 뒤에서 한 여학생이 뭔가를 슥 내민다.


“쌤, 선물이에요.”


직접 만든 마카롱이었다. 수줍게 선물을 건네고는 또 친구와 팔짱을 끼고 호호호 웃으며 복도를 뛰어간다. 저 대책 없는 낙관주의란… 손에 쥔 과자를 바라봤다. 친구들을 응원하려고 만든 정성이 느껴졌다. 저리도 밝은 아이들 속에도 서려있을 어둠을 나는 어찌 이해해야 하나… <너를 보낼 용기>의 송지영 작가의 딸, 서진이가 생각났다.


정성을 다한




'딸을 잃은 자살 사별자 엄마의 기록’이라는 참담한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은 양극성 장애 판정을 받은 딸을 지키기 위한 엄마의 사투, 결국 찾아오고야 만 비극, 그리고 절망과 후회의 순간에도 그 이유를 찾기 위한 작가의 분투를 때론 담담히 때론 뜨겁게 풀어내고 있다. 또한 그 과정에서 깨달은 사회 구조의 문제를 냉철히 분석하면서도 소중한 인연들과의 만남을 핍진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끝끝내 더 좋은 엄마로, 더 좋은 인간으로 살고자 하는 작가의 결연한 의지와 희망을 노래한다.


처음에는 소파에 기대고 읽었다. 곧 허리를 세우고 읽었다. 마지막엔 무릎을 꿇고 읽었다. 편한 자세로 읽을 책이 아니었다. 읽는 내내 몸이 아팠다, 실제로. 자주 책을 덮었다. 그러나 다시 펼 수밖에 없었다.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으며 읽었다.


작가가 절망을 온몸으로 맞서며 벼려낸 속 깊은 문장들은 비극적으로 아름답다. 아들과 식사를 하며 서진이와의 추억을 함께 나누는 장면은 평범하지만 소중한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보게 한다. 서로를 걱정하는 중년의 작가와 늙은 엄마가 나누는 문자는 참혹하고 아름다워 책을 내려놓고 한참을 울었다.


작가는 또한 비범한 사회병리학자이다. ‘약 대신 책을 펼쳤다.’는 구절처럼 그녀는 어둠의 심연을 끝없이 탐구하다, 이 비극이 단순한 한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내놓아야 할 하나의 질문으로 정리한다. ‘왜 몰라보는 구조인가?’


더 놀라운 점은 그녀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무자비한 구조를 조금이나마 개선하고자 작가는 ‘지금, 여기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과감하게 해 나간다. 비슷한 참극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미는 것. 책의 시작과 끝에 배치된 윤지와의 에피소드는 작가의 세심한 관찰력, 그리고 따뜻한 배려와 응원의 마음이 돋보여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어느 한 구석 쉽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없지만 특히나 2장 ‘떠나기를 결심하는 아이들’이 각별히 다가왔다. 내가 여전히 힘겹게 하루를 살아가는 수많은 서진이들을 만나는 고등학교 교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장례식장에 온 담임교사와의 대화 부분을 읽다가 뼈가 아팠다. 나 또한 매일매일 그런 일들을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아이가 많이 아파요. 오늘 못 갈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이런, 환절기라 아이들이 많이 아프네요. 걱정마시고 오늘 하루 푹 쉬게 해 주세요. 어머님도 건강 조심하시구요. 내일 올 때 진료확인서 챙겨 보내주세요.’


지극히 의례적인 나의 답 문자를 읽은 부모님들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올해 나는 고3 담임이다. 황금돼지의 해에 태어나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입시 조건 하에서 학생들은 불안하고 힘들어했다.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알기에 나도 몸을 갈았다. 매일 아침 학급 구호를 외치며 응원을 보내고, 느슨한 모습을 보일 때는 혼을 내기도 했다. 학생부 종합전형을 준비하기 위해 전공 관련 책을 읽히고, 자율적인(?) 탐구활동을 하라고 끝없이 잔소리를 해댔다. 지난한 과정이었지만,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하고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로 힘든지 몰랐다. 어려운 상황을 돌파한 경험을 통해 좀 더 성장하리라 희망하면서.


그러나 지금의 입시체계 하에서 고생을 통해 좀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리라는 나의 바람은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 게다가 엄혹한 경쟁에 지쳐 체념한 친구들을 살뜰히 챙기지 못했다. 서진이처럼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알아보지도 못했다. 그저 열심히 살자고 외치기도 하고 느슨한 생활태도를 질책하기도 했지만 입시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녀석들이 우선이었다. 낙오자라고 무시한 것은 아니지만 그 친구들 입장에선 별 차이가 없지 않았을까. 나의 격려와 질책과 무관심이 그들에겐 너무 큰 부담이거나 날카로운 비수처럼 다가오지 않았을까. 책을 읽는 내내 수많은 후회와 부끄러움이 휘몰아쳤다. 그나저나 서진이가 살아있었다면 우리 반 녀석들과 같은 고3이었겠구나….


부끄럽고 무력한 마음에 기진맥진하고 있을 때, 또 한 녀석이 쭈뼛거리며 들어와 빼빼로를 내민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수능 시험 많이 떨리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다시 심호흡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려본다. 점심시간 외출을 달고 나가 주전부리를 샀다. 공강 시간 우리 반 꼬마들에게 줄 수능 응원 꾸러미를 만들었다. 응원 메시지를 쓰다 불쑥 어린 조카가 보고 싶어 짧지만 진심을 다해 편지를 썼다.


화이팅!




안녕, 조카! 잘 지내시나?

별로 궁금하진 않겠지만 덕분에 저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ㅎㅎㅎ

뜬금없는 편지에 조금 놀라셨겠지만 그냥 꼰대 아저씨의 넋두리라고 너그럽게 생각해 주세요.


음… 우선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될 것 같아요.

당신 고등학교 입학식 날, 우리 같이 만났던 거 기억나?

그때 부쩍 말수가 없어진 조카가 낯설어 당신 엄마, 그러니까 나의 동생이랑만 신나게 떠들었던 것 같아.

고등학교 선생이 뭔 유세라고 이거 준비해야 한다, 저거 준비해야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을 마구 떠들어댔던 것 같아. 얼마나 싫었을까… 미안해.

그리고 외할머니를 모시고 갔던 가을 경주여행도 기억나. 그때도 당신은 말이 없었지. 헤어지기 직전 점심으로 날도 춥고 해서 복어국을 먹었는데 조카 입에는 별로 안 맞았나 봐.

맛이 별로라는 말에 당신 엄마가 싫은 소리를 했었지, 아마.

내가 너무 어른들 취향으로 메뉴를 골랐었다. 좀 더 근사한 곳에서 당신이 좋아하는 걸 사줬어야 했는데… 미안해.


난 올해 고3 담임이야. 아이들은 힘들지만 씩씩하게 버티고 있어.

아무리 수험생활을 하고 있지만 학교도 사람 사는 곳이라 아이들은 신나게 웃고 떠들어.

그러다가도 수험의 무게 때문에 갑자기 우울해지곤 하지.

평소에 긍정왕인 그래서 내가 많이 의지하는 우리 반 반장은 기말고사 한 문제 때문에 등급이 밀렸다고 많이 울었어.

그럴 때 나는 무슨 말을 할지 몰라. 그냥 옆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어.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는 한 남학생 녀석은 결석이 잦아. 자유로운 영혼이구만 하고 넘어갈 때도 있지만, 뻔한 거짓말을 할 땐 속이 뒤집혀 싫은 소리를 마구 퍼부어대기도 해.

그러곤 입이 방정이라고 후회를 한단다…

그리 오랫동안 아이들과 함께 했는데 난 여전히 잘 모르겠다.

같은 또래인 당신이라면 어떤 조언을 해줄까 궁금하다. 진작에 물어봤어야 하는데…

아이고, 당신 안부 물으려고 쓴 편지인데 내 넋두리만 풀고 있구나. 또 미안해.


못난 선생, 어리석은 어른이지만 그래도 한 가지 약속할게.

될 수 있는 한 우리 반 꼬마들 한 놈 한 놈 잘 살필게.

힘이 닿는 한 따뜻하게 대할게.

힘들어하는 아이들 옆에 있을게.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고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할게.

할 수 있는 게 없으면 같이 비라도 맞아줄게. 탈모의 위험을 무릅쓰고!

모두가 소중한 나의 조카라고 생각하면서.


가끔 연락할게요. 언제나 평안한 나날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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