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by. 미야자키 하야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꽃」 일부
우리는 이름이라는 것을 명시하고 살아간다.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준다. 나는 그에 대해 반응한다. 서로의 호칭이 될 수 있고, 상호 대상을 향한 존경 혹은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표현일 수 있다. 그만큼 이름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나라는 존재를 타인이 인식하기 위한 지표이다. 동시에 나라는 의지를 땅에 닿은 상태에서 버텨가기 위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이름이 사라지면 어떠할까? 처음에는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다. 단지 이름일 뿐인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름은 불러지는 나를 대상화시키는 의미이다. 즉, 이름이 아닌 것으로서 나를 정의되는 것이 익숙해질 때 나라는 존재의 의식은 사라진다. 바로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처럼 말이다.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치히로라는 여자아이와 부모님의 이사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이 지내던 곳을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게된다. 새로운 관계를 맺고, 삶의 새로운 지점을 받아들여야 하는 치히로에게 지금 이 순간은 최악이다. 하지만 치히로는 자신이 그렇게 싫어하는 이사보다도 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다. 바로 부모님을 잃고, 자신의 이름마저 잃어버린 사건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잃어버린 것을 찾고자 모험을 떠난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지만 나름 힘겹게 버텨가는 일을 수행한다. 동시에 그녀는 부모님을 되찾고, 이름을 돌려받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과연 그녀에게 이름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항상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매사에 뚜렷하고, 의지가 강인하다. 영화이기에 이러한 목표점을 보인다. 사람들은 입장을 공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상시라면 이야기가 다를 것이다. 지금 현대에서는 누구라도 쉽게 자신의 이름을 개명한다.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이름을 거부하고, 새로운 정체성으로 여겨질 이름을 바꾸고자 노력한다. 그만큼 이름으로 인해 정의되는 자신의 모습과 태도를 중요시 여긴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름을 불러주는 것을 민감하게 여긴다. 그렇게 나라는 존재를 타인으로부터 맞춰지며 이미지를 형상화 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치히로’와 같이 ‘센’이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자신의 존재를 잃어가는 시간을 잠재우고, ‘치히로’라는 존재로 돌아가고자 하는 태도를 의식하면서 자신을 만드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이름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시되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부풀려서 말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만들어낸 모든 애니메이션에서 이름 혹은 정체성은 항상 의미를 중요하게 여겨지도록 하였다.
그만큼 자신을 잃는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내가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끝내 용기를 내어 그 시련을 버틴다. 그렇게 견디다 보면 스스로를 완성시키는 과정에 이른다. 삶이라는 것이 비록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모험과 운명을 넘어 개척해야 하는 과정이 없을 수도 있다. 그저 반복되는 순간에 따라 살아가는 과정이 다가오더라도 나의 이름의 의미를 쫓아야만 진정한 나를 찾는다.
그것이 너무 힘들고 어렵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나의 이름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나 자신의 끝에 설 수 있다고 믿는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하쿠, 치히로 모두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냈고 과정의 종결을 맺을 때 자신의 운명을 성장시킨다. 그것은 하쿠와 치히로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운명을 따라 개척하는 삶은 아닐지라도 나의 이름의 정체성을 새기다 보면 언젠가 나를 찾아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