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토니 타키타니 by. 이치카와 준
“나의 외로움은 장전되어 있다. 하하, 그러나 필경은 아무도 오지 않을 길목에서 녹슨 내 외로움의 총구는 끝끝내 나의 뇌리를 겨누고 있다.” - 최승자, 외로움의 폭력
영화 ‘토니 타키타니’는 최승자 시인이 말한 ‘외로움’의 형태에 이미지를 덧붙인 영화라고 생각했다. 마치 최승자 시인이 말한 나의 뇌리에 깊게 박힌 총알처럼 외로움의 이미지처럼말이다. 스스로가 빼낼 수 없는 괴로운 질감으로 이루어진 형태이다. 설령 그것을 빼낼 방법을 찾고자 의학적인 처방을 받아도 사그라들지 않는다. 외로움은 인간에게는 평생 숙제처럼 강요받는다. 그래서 인생을 사는 우리가 죽음에 다다를 때까지 마주해야 한다는 점이 괴롭기만 하다. 언제나 느끼는 반복적인 부조리에 지쳐간다. 하지만 인간은 수레바퀴처럼 흘러가는 과정을 결코 끊어내지 못한다. 그런 점을 영화는 담았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영화를 보던 나에게 1시간 하고 16분은 나의 오만을 반성하고, 외로움을 정의를 새롭게 습득하는 시간이 되었다. 먼저 오만한 나의 반성을 글로 써본다. 영화는 하루키 작가의 단편소설에서 짧게 활자로 써간 글자의 외로움과 이미지는 이질적이었다. 감독은 영화를 만들 때 외로움의 형태를 장면을 이어가며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영화를 단편적인 장면으로 끊는 대신에 ‘165cm, 230 mm, size 2의 유명 명품 옷’, ‘토니라는 주인공의 인생사’, ‘그가 업무로 인해 그리는 그림들’, ‘영화에 덧붙인 혼잣말’ 등의 모든 외로움의 제시어처럼 쓰인 것들을 영화에서 조각처럼 붙여나갔다. 그런 점은 나에게 전혀 다른 표현법이었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기 전에 이미 하루키 작가의 원작을 읽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가 만들어둔 외로움의 표현이 담긴 책 표면 우위에 활자를 이미지로 새겨졌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영화는 이미 외로움의 무언가를 이미지로 만들기에 너무 쉬운 것은 아닐까?라는 오해를 덧붙였다. 그 뒤로 영화를 보기 전까지 선입견이 없었다고는 말 못 하겠다. 단지, 영화가 보이는 외로움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이 활자에 적힌 대로 이미지에 그려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로 인해 만들어진 외로움이 부각되어 아쉬울 것 같다. 이상한 착각을 하며 영화에 대한 나의 평가를 쉽게 결론지었다.
하지만 영화는 하루키의 단편과 느낌적으로만 비슷했다. 오히려 하루키에서 보여주지 않은 외로움이 보였다. 독서를 하는 동안에 나는 주인공의 외로움을 따라갔다. 자신이 생각하는 옷의 주인이 나에게 찾아온다. 그녀가 모아 왔던 옷을 입은 또 다른 그녀가 온다. 그러면 나의 외로움의 근본을 해소될 것이라고 막연히 믿었다. 그렇게 소설은 얽힌 플롯을 따라가며 주인공의 외로움을 호흡해 나간다. 나는 소설에서 외로움을 인식하지 않고, 토니의 외로움에 동조된 셈이다. 소설이 이렇게 되었다고 나쁜 것은 아니다. 단지 영화는 소설과 다른 지점에 서서 외로움을 동조한다. 그렇게 영화가 나에게 다가왔을 때 오만한 나를 꾸짖었다.
그러면 영화는 어떻게 소설과 다른 고독을 제시했는지 나만의 생각을 나열한다. 앞서 말한 '그녀의 옷'에 대한 강박과 사라질 것이라는 불안이 나타난다. 특히 독자가 그런 불안에 동화되지 않도록 객관적 화자의 내레이션을 통해 적막한 감정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관객에게 던져준다. 관객은 이것에 대한 외로움의 감정이라는 것에 대한 강요일 수 있다. 하지만 끝내 인간은 이별하고, 망각하고, 받아들인다. 반복되는 순간을 매 번 겪어나가는 과정은 비슷하다. 설령 그것이 옷이 가득 찬 방이 아니더라도 그와 동일시되는 외로움이 있기에 공감을 느끼고, 쓸쓸한 슬픔을 이해한다.
그렇게 받아들인 나만의 감정은 감독이 의도한 바대로 따라갔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이 글로는 말하기 어렵다. 아직 질감이나 형태의 고독을 최승자 시인처럼 말할 자격이 아직은 없으니까. 그래도 언젠가 더 많은 외로움이 형태를 찾는다면 토니 타니타키처럼 말하거나 size 2가 맞는 여자를 찾으려는 시도로 나의 외로움을 고백할지 모르겠다. 지금은 단지 내가 느끼는 외로움의 지표를 영화에서 원작 소설에서 그리고 내가 앞서 말한 그녀의 시에서 알아낸 것이라고 믿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