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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Jul 25. 2023

자유로부터의 도피


어떠한 심리적 뿌리에 기원해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자유'의 가치를 인생의 최우선으로 두고 살고 있다.


물론 현실에선 사회적 책임, 개인적 책임으로 내가 발휘할 수 있는 '자유'의 가치가 무척이나 제한되긴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 만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뽑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자유'를 선택할 것이다.







우리가 자유란 단어에서 흔히 생각하는 '자기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상태'는 사실 진정한 자유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자유에는 수동적 자유와 능동적 자유가 존재하는데, 수동적 자유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의미한다면, 능동적 자유란 자기에게 주어진 자유의 권리와 책임을 짐과 동시에 개인의 정신적 자유를 달성하는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자유를 말한다. (돈, 좋은 집, 좋은 차와 같은 물질적 가치에서부터, 권위, 정치 이념 등과 같은 정신적 가치에 자신을 종속 시키지 않는 자유를 의미한다)



수동적 자유는 시대의 압박과 더불어 우리 위 세대의 피땀어린 노력으로 쟁취한 가치이지만, 그 시대를 겪지 않아도 되는 대다수의 우리에겐 태어나면서 주어진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유의 영역은 세대가 지남에 따라 충분히 익숙해지고 꾸준히 수준도 높아지고 있는데 반해 능동적 자유는, 책임을 도외시하고 권리만 누리려 하는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과, 사회적 또는 문화의 한계로 인해 개인의 독자성과 개인성을 제한 당해 아직은 그 성숙도가 수동적 자유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능동적 자유의 한계성으로 불안증을 겪고 있는 개인들은, 종래 자신의 자유를 타인에게 양도하고 그 아래 종속되길 희망한다.


과학문명이 아무리 발전하고 교육 수준이 높아져도 정치적 이념의 믿음으로 인한 갈등과 미신 또는, 우상 숭배가 끊이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는 이렇듯 인간 사회의 근본적인 현상이 그 이면에 숨겨진 심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논리적인 주장을 통해 펼쳐 나간다.







에리히 프롬의 통찰에 감탄하며 조용히 사색을 하던 그때, 거실에서 문득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빠! 오늘 분리수거해야 돼! 가서 쓰레기 좀 버리고 와!"



난데없는 방해를 받아 살짝 기분이 상한다. 그러나 이내 현실에 순응하고는 나직이 투덜대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뒷베란다로 터덜터덜 무거운 걸음을 옮긴다.



'나는 가족과 함께 하는 자유를 얻은 것일까? 아니면 가족으로 인해 자유를 제한받은 것일까? '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쓰레기 더미를 챙겨 1층으로 내려가던 그때, 다시 한번 아내가 말한다.



"다녀와~ 시원하게 커피 한 잔 타 놓을게!"



아무래도 후자가 맞는 듯하다.











#자유 #도피 #가족 #가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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