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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Aug 04. 2023

소외(疏外)의 시대



칼부림 사건이라니... 옆 나라의 일이라고만 치부했던 사건들이 최근 대한민국에서 판을 치고 있다.

사는 건 예나 지금이나 각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각박함이 존재해 왔건만 어째서 최근에야 전에 없던 혐오 범죄, 묻지 마 범죄가 날뛰는 걸까?


이는 사회 전체에 스며든 소외가 극에 달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비교 문화의 확산, 소득 격차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 SNS의 발달로 인한 열등감을 자극하는 시대적 분위기, 이러한 요소들이 개인들의 소외감을 부추긴다. 그리고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이 쌓이면 소외의 대상이 된 사람들의 마음을 뒤틀리게 만든다. 이번 사건은 그저 뒤틀린 마음의 소유자가 자기의 내면의 분노를 불특정 다수에게 표출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유형의 피의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나만 빼고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라고...




그들의 추악한 범죄를 '소외감'이라는 단어로 포장해 옹호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아무리 자기의 마음이 힘들다 해도 타인을 해치는 식의 범죄는 당연히 처벌되고 지탄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소외감이 분명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의 확산을 손 놓고 방치한다면 그 결과는 자살, 범죄 혹은 다량의 정신질환 환자를 낳게 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해야 할까?

소외로 인한 사회적 문제의 결과야 행정과 법에 따라 처리한다고는 하지만, 소외감이라는 막연하고 모호한 인간의 감정적인 문제를 대체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답답하지만 원론적인 얘기 밖에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사람으로 인한 감정의 문제는 사람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


소외의 감정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살면서 소외되고 외로움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스스로가 쓸모없게만 느껴져 괴로움에 빠져보지 않은 어른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들 웃는 얼굴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듯하지만 사실 모두가 각자의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만일 당신이 나만 뒤떨어진 것 같고 혼자 소외된 것 같다고 느껴질 때는 주위를 둘러보고 서로 기댈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아보면 좋을 듯하다. 서로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가진 괴로움이 반이 된다는 말은 구태의연하게 들리지만 진리이기 때문이다.




다들 마음에 여유가 없겠지만 주변에 누군가 어려운 사람을 본다면 조금은 부드러운 시선으로 슬며시 손을 내밀어 주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조건 없는 선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안 그래도 살기 힘든 세상, 내가 먼저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정작 내가 외로울 때 나를 도와줄 사람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국의 '정' 문화를 되찾아올 시간이 되었다.









#소외 #묻지 마 범죄 #사회 #배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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