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그렇게 흘러가고
시인의 산문을 읽었다. 평소에도 단정하다 느꼈던 시와 같이 산문도 단정했다.
시는 없었으나, 시인의 생각과 그 생각의 자리가 있었고, 그들을 따라 걸으며 계절을 보내고 나면 얼마 되지 않은 날들이 꼭 일 년을 꽉 채워 산 것만 같아서, 게으르지 않게 산 것 만 같아서 몹시 뿌듯했다.
책을 읽으면서 몇 개의 페이지를 접어 두었는데, 그중에 가장 마음에 든 구절은 이것이다.
‘따뜻한 물에 몸을 반쯤 담그고 천천히 숨을 쉬어보았던 시간 같은 것으로 이 겨울날이 기억되기를 희망합니다.’
이 장의 제목은 ‘쉼’이었는데, 이 책이 꼭 나에게 오고 가는 계절의 사이사이 그리고 하루 안에 잠시 쉬어가는 ‘쉼’ 같은 것이어서, 책 속의 계절이 흐르는 동안 나의 자리도 다듬어질 것만 같았다. 나는 허정 허정 걷다가 살금살금 자리로 돌아와 조용히 앉힌 어깨와 뉘인 머리를 떠올렸다.
유난히 춥게 느껴지는 이번 겨울과 그 겨울의 입김 사이로 작게 느꼈던 따스함의 기운들, 그 기운들을 얻고 나서 책의 마지막 장을 조심스럽게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