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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이사 Jan 31. 2021

필연적 변덕

행복의 조건


변덕 : 이랬다 저랬다  변하는 태도나 성질.

필연적 : 사물의 관련이나 일의 결과가 반드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


유독 곱창전골이 땡기는 날이었다. 출근도 전에 오늘 퇴근하면 꼭 곱창전골을 먹으리라 했다. 오전에는 지루하리만치 일이 없더니 오후에는 주둥이 터진 병처럼 업무가 쏟아져 나왔다. 정신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니 어느덧 퇴근시간이다. 매가리 없이 도어락을 풀고 들어가니 뱃속은 허전한데 아침만큼 곱창전골이 간절하지 않다. 배달음식마저 귀찮다. 옷만 간신히 벗어놓고 얼른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한 입 들이켰다. 아마 유통기한이 지났을 소시지를 굽지도 않고 선체로 주워 먹는다. 이런 컨디션에 곱창전골은 사치다.


꼭 먹어야지 했던 곱창전골은 안중 어디에도 없었다. 오래전 언젠가의 경험들로 곱창전골을 먹어야겠다 다짐했던 그 순간부터 아마 오늘 저녁엔 곱창전골 냄새도 맡기 싫겠다 하는 '필연적 변덕' 예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경험으로 얻게 되는, 예견할 수도 있었겠다 싶은 변덕. 행복의 조건이 변하는 과정도 이런 필연적 변덕이 작용하는 게 아닐까.


주식


미디어로 학습된 행복의 조건


20대 초반에 생각했던 행복의 조건은 내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드라마나 영화 같은 미디어에서 학습한 '남의 것'이었을지도 모를 풋풋했던 20대의 행복의 조건은 서울 도심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은 시멘트 빌딩에 출근하는 회사원. 사원증을 휘날리며 터치다운하듯 사무실에 들어서면 동료들이 낄낄 웃으며 "으이그~" 하는 분위기에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고 자리에 앉아 업무 시작. "벌써 퇴근시간이라고?" 업무에 집중하는 워커홀릭. 아 오늘도 열심히 살았구나, 오늘도 이 회사를 내가 지켰구나 하는 사명감과 자존감에 취해 동료들과 서로의 어깨를 다독이며 엄지를 치켜드는 쿨한 직장인. 회사 앞에는 하얀색 SUV를 대기시켜 놓고 환하게 웃는 정장 핏이 좋은 윤계상을 닮은 남자 친구가 멋지게 손을 들어 나를 반기고, "나밖에 모르는 멍청이" 라 말하며 못 말린다는 듯 그의 얼굴을 비비는 삶.


지금 생각해도 참 이상적인 삶이다. 평범한 듯 쉽지 않은 베이스 위에서 각을 잡던 나의 행복의 조건들은 치열하게, 혹은 나태하게 보내온 20대의 경험을 기반으로 현실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흔히 하는 '아직 어려서 그래' 라던가, '조금 더 크면 알게 돼'라는 말들에는 경험의 부재가 전제되어 있다. 아직 어려서, 더 크지 않아서 모른다는 건 결국 경험 없는 어린 네가 앞으로 걸어갈 나이의 길이 꽤나 멀고 험할 것이라는 무서운 말.


설마 조울증인가. 별 게 다 행복한 30대


내가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지, 전혀 행복하지 않은데. 싶은 날이 있다. 바꿔 말하면 어느 극한 순간에는 죽고 싶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5분 전에 해놓고도 별 것 아닌 기억에 낄낄대고 웃는다. 이게 조울증인가 싶었다. 멀리서 보면 미친 여자로 봐도 이상할 것 없겠다 싶었다.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실 조금씩 미쳐있는 것 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어지자 별 게다 행복해졌다.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하는 게 나이이지만, 결코 무료는 아니라는 깡패 같은 논리를 깨닫게 된 건 최근의 이야기. 온몸의 뼈마디는 더 이상 20대의 것이 아니니 병원의 VIP가 되라는 의미의 페이와는 다르고, 그 나이에 겪게 될 경험들이 주는 고통과 정신적 고뇌를 지불하고 '조금 더 크면' 불현듯 뭔가 하나 주고 간다. 아마도 내가 나잇값으로 얻은 건 소소한 행복을 되새기게 된 정신적 여유.


운전 잘하는 택시기사님을 만났을 때.

급똥이 밀려오는데 모든 신호등이 파란색일 때.

중학생 시절 좋아했던 오빠를 닮은 단골 카페 사장님이 싱글인 걸 알았을 때.

새벽까지 마신 술로 기억을 잃었는데 아침에 더듬어 보니 세수한 얼굴일 때.

샤워 후에 혹시나 하고 열어본 냉장고 구석에서 맥주캔을 발견했는데, 심지어 무심코 켠 TV에서 재방송으로 봐야지 했던 유 퀴즈 온 더 블록이 예약한 듯 나오고 있을 때.

한 시간 걸린다던 허니콤보가 40분 만에 도착했는데 새 기름으로 튀겼는지 바삭함이 전과 다를 때.


20대에 쫒던 행복의 조건과 비교해 보면 이렇게 구체적이고 단순할 수 없다. 어쩌면 힘든 현실에서 나를 위로하고자 만든 안전책일지도 모르지만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고자 노력한 이후 온갖 화이트닝을 갖다 발라도 칙칙하던 낯빛이 확실히 환해졌다.


하쿠나 마타타 : 문제없다.


같은 상황에서도 각자 다른 결정을 하고, 그에 따르는 각기 다른 경험의 과정이 만든 베이스 위에서 '본인 기준'의 집을 짓는다. '본인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아직 어린' 경험치의 사람들은 '행복이란 무엇인가'란 정답 없는 난제에 '오순도순한 가정과 출근할 직장이 있으며 가끔 놀러 갈 수 있는 여유로움'이라는 교과서 적인 베이스를 선택한다. 객관적 인척 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난제에 마치 정답인 양 구는 조건들을 설정해 놓고는 밑돌면 모자란 상태라 인식하는 셀프 고문을 한다. 개인적인 성향과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스탠다드를 각자의 틀에 끼워 맞추려니 고통이다. 그 고통의 과정이 주는 경험은 '아직 어려서 그랬던' 표본적인 기준을 다시 반죽하게 하고, 그 반죽은 본인만의 기준을 만드는 재료에 사용된다. 행복의 조건을 이전과는 다른 것으로 변하게 하는 필연적 변덕의 시작이다.


번외로 무지개다리 이야기.

큰 강이 바로 옆에 흐르는 고등학교에 다녔다. 야자 전 쉬는 시간에 한참이나 그 강 아래를 쳐다보곤 했다. 어느 날 저 멀리 공사 중이던 다리가 완공이 되었는지, 그 길고 웅장한 다리가 어둠이 찾아오면 무지개 색으로 빛났다. 창 밖으로 멍하게 쳐다보며 나는 언제 저 멋진 다리 위를 건너 볼 수 있을까 했다. 졸업 후 기억에서 잊혔던 그 무지개다리를 다시 마주한 건 1종 트럭 위에서였다. 유행하는 건 꼭 따라 하는 스타일인지라 앞다퉈 취득했던 1종 운전면허 도로주행 시험 중 시험관 아저씨가 입을 텄다.


"당장 차도 안 다니는 다리를 왜 뚫나 했는데, 참 잘 뚫렸어."

"신생 도로인가 봐요."

"저기 여고 나왔다며? 바로 보이는 그 다리야."

"그 무지개 반짝반짝..?"


맙소사. 꿈의 무지개다리 위를 생각지도 못한 계기로 달리고 있었고, 시험 중이라 잔뜩 긴장만 했지 당장 그 다리 위에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막상 다리 위에 있자니 오색 무지개는 내 타이어 밑에 깔려 있고, 내 눈엔 그 멋진 무지개가 보이지 않으니 더 이상 그 다리는 꿈의 다리가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아스팔트일 뿐. 그 날 나는 1종 보통 면허를 취득했고, 미숙하지만 울림 있는 깨달음을 얻었다.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이 이미 꿈의 무지개다리일지도 모른다. 다만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 뿐.

그대로 잘하고 있다. 그러니 문제없다. 우리 모두 마법사가 되어 주문을 외워보자. 하쿠나. 마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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