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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노 Apr 13. 2024

틈과 멍

물멍 불멍 말고 모래멍 

‘와.. 벌써 4월이라고? 이제 금방 여름이겠네?’

가끔은 시간이 너무 빨라서 왈칵 두려워진다. 

 

두려움은 강박으로 이어져 이내 단숨에 목을 콱 죄어온다. 날짜가 언제 이렇게 됐지? 시간은 어떻게 이렇게나 빠르지? 시간에 빨려 들어가 버릴 것만 같은 기분. 할 일은 많고 나는 무엇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초조함. 결국 우왕좌왕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아 이게 아닌데... 

나도 알고 있다. 급한 마음이 해결해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그런데 어쩌나? 마음이 전부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참 마음처럼 안돼... 



그럴 땐 오히려 작정하고 태평하게 

툭. 내려놓는 것이 도움이 된다. 

정반합의 반, 반대로 가보는 것이다. 



오래오래 요가를 하거나 긴 이완을 하면서 잠시나마 일과 완전히 분리된 시간을 갖기. 내 일상을 멀리서 감각하는 일. 아, 물론 시간에 쫓기는 우리에게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덕분에 요즘은 새로운 루틴이 생겼다. 


너무 조급한 마음을 대하기 어려울 때, 종종 시간을 달리 대하고 싶을 때

난 몰라. 하고 눈 앞에 모래시계를 톡 뒤집어본다. 

모래가 토도도도 떨어지는 걸 멍하니 보고 있으면 다시 조금씩 마음이 차분해질까 하고.


모래는 정직하게 흐른다. 


시계침보다는 덜 노골적이고 알람벨보다는 가시적이다. 또각또각 시계침을 보면 일분 일초 마음이 초조해지고, 언제 요란하게 울릴지 모를 알람벨은 언제나 불안하게 마음을 옥죄여오니까. 


그러나 모래는 다르다. 

조금씩 틈을 비집고 나가며 차분히 비워지는 모래를 보고 있자면 어딘가 나도 함께 비워지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는 정확히 반대편에서) 바닥면을 딛고 차곡차곡 쌓여가는 티끌을 보면서 시간이 어디로 증발되어 사라지는 것은 아님을 깨닫는다.  세밀한 흐름을 가늠할 수는 없지만 모래 가루는 분명히 시작과 끝이 있다. 그것이 나에겐 안전망이 된다. 언젠가는 반드시 끝이 난다는 사실, 그리고 그 끝이 고요하게 찾아온다는 사실이 오히려 그 시간 안에서만큼은 온전히 편안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안정감을 준다. 



심지어는 물멍 불멍보다 손쉬운 모래멍.  멍 마저 손쉽게 해치우고 싶은 나에게 딱 적당한 방법 아닌지. 

(혹시 당신은 어떤가…?) 



툭 뒤집고 잠깐 들여다보며 멍하니 존재하는 시간. 나만의 소박하고 담백한 전환.  


내가 요즘 가장 애정하는 잠깐의 틈이다.

오늘도 모래시계 앞에 마음을 다독인다. 


괜찮아. 침착하게 가. 잘 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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