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라는 단어에 녹아있는 두려움

이것이 무엇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몰라도 그냥 저질러 보는 거지.

by Subjct

유튜브를 시작해 볼까? 글을 좀 써볼까? 아니다, 운동을 갈까? 아니다, 일 해야겠지? 할 일이 많다. 지금 컴퓨터에 앉아서 이 글을 적는 순간에도 내 컴퓨터 desktop에는 15개 정도의 window들이 열려있고, 그 창문들에는 몇 겹의 tab들이 겹쳐있다. 다른 할 일도 많은데 또 뭘 시작하려니 귀찮다. 아니, '두렵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3년 전쯤 나는 어느 옷가게에서 샘플로 받은 공책을 발견하고 그곳에 일기 비슷한 것을 쓰기 시작했다. 그 당시 세웠던 나름 현실감 있는 목표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글을 쓰자'였고, 동기는 '이런저런 생각이 많기 때문에 정리도 할 겸, 그리고 내 한글 실력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연습도 할 겸' 이였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이라는 목표가 우습기라도 한 듯 매일같이 일기를 썼지만, 오래되지 않아 일주일에 한 번도 숙제같이 쓰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한 달에 한번, 두 달에 한 번을 적다가 2023년 겨울을 마지막으로 그 일기장의 빈 페이지들은 아직까지도 나와 볼펜을 외롭게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pexels-thepaintedsquare-606539.jpg Photo by Jessica Lewis on Pexels


나는 어릴 때 글 쓰는 걸 좋아했던 거 같다. 초등학교 때 공책에 반 친구들을 주인공으로 한 '포켓몬스터'나 '꾸러기수비대'같은 만화들의 영향을 받은 판타지 소설 같은 글들을 써서 친구들과 돌려보기도 하고, 글짓기로 교내 상도 몇 번 받았던 거 같다. 그리고 초등학교 졸업 후에 캐나다로 이민을 왔고 영어라는 큰 벽에 부딪히고 만 사춘기 소년은 말하는 걸 포함해, 읽는 것, 쓰는 것까지 언어와 관련된 모든 것을 거부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즈음에 멈춰버린 내 '글짓기'는 건축수업에서 만들 법한 가느다란 스파게티 면으로 지어진 다리보다 허술하고 불안하다. 그리고 어느덧 30대가 되어버린 나는 이 '짓기'를 다시 재건축해보고 싶은 욕구로 가득 차 있다.


시작은 언제나 두렵다. 처음에는 못하는 게 당연한 건데, 나는 그걸 알면서도 잘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 하고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걸 창피해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나에게 '시작'이라는 건, '실수' 혹은 '실패'라는 무서운 단어들과 함께 손잡고 있기도 하다. 나이가 먹어가면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든 건 아니지만, 남들의 시선을 조금은 덜 신경 쓰게 되었고, '잘함'과 '못함'의 기준이 바뀌어 이제는 "노력함"과 "노력 안 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마저도 상황마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유연함이 조금은 생겼다.


작년에 읽은 책중에 Gary Bishop이 쓴 '시작의 기술'이라는 책이 있는데, 원제는 한글제목보다는 직설적인 'Unf*ck Yourself'다. 이 책은 시작을 두려워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사정없이 채찍질하는 책이었는데, 이 책에는 '행동'이라는 단어가 무려 132번이나 나온다. 책에서 반복적으로 하는 얘기는 생각하고 고민만 하거나, 어떤 완벽한 순간이나 기회를 기다리고 있지만 말고 당장 시작하고 행동하라는 얘기다.


"당신은 당신의 생각이 아니다. 당신 머릿속에 있는 것이 당신을 규정하는 게 아니다. '당신이 뭘 하는가'가 당신을 규정한다. 당신의 행동 말이다."


앞으로 내가 어떤 글들을 쓸지, 잘 쓰는 글은 뭔지, 글을 적어서 올리는 게 어떤 의미인지, 내가 꾸준하게 잘할 수 있을지, 난 어느 것도 알지 못한다. 그래도 그냥 저질러 보는 거다. 일단 시작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이곳에 내가 할 '글짓기'는 오랫동안 고민하고 구상해서 만들어지는 그런 멋진 건축물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자갈이 됐든 조금은 무거운 바위가 됐든 시간 날 때마다 쌓아가다 보면 나중에는 제법 멋지고 견고한 돌로 만든 건축물이 될지도 모르겠다.


start_now_01.jpg Artwork by Subjct




Cover photo by Jukan Tateisi from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