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빠하르간지의 넘쳐나는 사람들 사이를 헤쳐 나는 한 음식점에 들어섰다. 인도에서의 첫 식사였다. 인도로 여행 오기 전까지는 인도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던 터라 인도 음식을 먹어본 경험도 없었다. 메뉴판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적당한 음식을 정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물어볼 용기도 없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는 비교적 영어로 의사소통이 자유롭게 가능한 나라였지만, 사실 나에게는 영어나 힌디어나 낯선 언어라는 점에서는 똑같았다.
“익스큐즈미. 음……. 디스 원. 아이 원트 디스 원. 플리즈.”
“온리 디스 원?”
나는 무엇인가를 골랐고, 점원은 나에게 이것만 가져다주면 되겠냐고 묻는 것 같았다. 설명하기도 어려웠고, 설명을 듣는 것도 어려웠다.
“예스. 온리 디스 원”
음식이 나온 후에도 당시의 나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지 못했다. 커다란 접시에 카레 같은 스프가 가득 나왔다. 이 음식을 어떻게 먹는 것인지 아 수 없었고, 물어볼 용기는 더 없어서 묵묵히 스프를 먹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짜고 기묘했다. 인내심을 가지고 그릇을 반쯤 비웠을 때 나는 포기하고 말았다.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달이라는 음식은 얇게 구워낸 빵인 난과 함께 먹어야만 했다. 마치 중국집에 가서 면을 제외하고 짜장만 주문한 셈이다.
내가 좀 더 용기가 있었거나 혹은 점원이 좀 더 친절해야 했었다.
음식점에 혼자 앉아서 달을 묵묵히 비워내고 있던 나를 보며 웃었을 점원을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지곤 한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이 순간이 우스꽝스러운 장면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에게는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소리칠 꼬마놈이 없다는 사실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빠하르간지의 골목 끝에는 내가 델리에 머무는 동안 자주 찾던 라씨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라씨는 시큼 달달한 맛이 나는 요거트 종류의 음료수인데, 가게가 더러우면 더러울수록 그리고 라씨를 만드는데 사용하는 물의 정체가 불분명하면 불분명할수록 맛이 있었다. 이 정체 모를 음료는 맛이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사실 허름한 가게일수록 파리가 넘쳐나도록 많았다. 한국에서라면 분명 지나쳐가지도 않을 그런 집이다. 그 기묘한 광경에서 오는 긴장감이 라씨의 맛을 끌어올리는지도 모른다. 낯선 것은 낯설어서 좋다.
한은 스스로를 채식주의자라고 말했다. 종교적인 이유가 아닌 약사였던 어머니의 교육 때문에 자신은 채식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한은 부대찌개를 좋아했다. 부대찌개를 주문해놓고서는 음식이 나오면 부대찌개에서 언제나 햄과 치즈를 골라버리곤 했다.
“햄이 없는 부대찌개를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어요?”
“햄이 꼭 부대찌개에 맛을 더하라는 법은 없지 않아요?”
햄이 사라져버린 부대찌개는 언제나 정체 모를 음식이 되곤 했다. 이것은 부대찌개와 부대찌개가 아닌 것 사이의 어느 중간 즈음에 위치한 그 무엇인가다. 르네 마그리트식으로 말하자면 “이것은 부대찌개가 아니다”라는 정도로 말할 수 있을까. 정체를 알 수는 없는 음식을 과연 부대찌개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래도 여전히 부대찌개인 것일까. 부대찌개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맛있게 먹는다면 부대찌개가 되는 것일까? 햄을 골라 내버린 기묘한 부대찌개에서 오는 긴장감이 오히려 좋았던 것일까?
낯선 것이 낯설기 때문에 좋지만, 낯설어서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다. 인도에는 채식주의자들이 넘쳐난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단이 따로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곳이 인도임을 증명하는 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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