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드푸르(Jodhpur), 블루씨티(Blue City)
이전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도에는 인도 여행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없다. 다만 N개의 도시와 N개의 도시 여행이 존재할 뿐이다. 같은 라자스탄(Rajasthan) 지역이지만, 푸쉬카르와 조드푸르, 자이푸르는 전혀 다른 컬러의 도시다. 푸쉬카르가 돼지들의 도시라면, 조드푸르(Jodhpur)는 블루 씨티(Blue City), 자이푸르(Jaipur)는 핑크 씨티(Pink City)로 그 색채가 다르다. 말 그대로 정말 도시의 색이 다르다.
물론 생각보다 핑크가 아니고, 생각보다 블루가 아니다. 빛바랜 색상의 핑크빛 도시, 빛바랜 색상의 푸른빛 도시였다. 하지만 처음 이 도시들을 보았을 때 도시 전체에서 풍겨오는 이국적인 모습은 정말 특별했다. 전반적인 도시의 색상이었지만 마치 전체가 그런 것처럼 느껴졌다. 라자스탄 지역은 기본적으로 더운 인도 지역에서도 특별하게도 더 더운 지역이다. 넓은 사막을 끼고 있기도 해서 사막투어가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사막에서 보는 야경이 정말 멋있다고 전해들었지만, 적어도 나는 더운 나라까지 와서 사막까지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무더운 여름이 다가올수록 한국에서는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다니지만, 사막 지역에서는 강열한 태양과 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긴팔과 긴바지를 착용한다. 그리고 그 색상은 비교적 화려한 편에 속한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라자스탄 지역의 패션 컬러가 강열하고 화려하다고 이야기했다. 사막 지역으로 갈수록 그렇다는데 그 명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답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도시로 진입하는 첫 느낌은 조금 도시화를 이룬 대부분의 인도가 그렇듯이 릭샤와 오토릭샤, 자전거, 오토바이로 인해 혼란스러운 느낌이었다. 무엇인가 먼지가 피어오르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 분주함을 뒤로 푸른빛 도시가 드러났다. 청량한 푸른색이라기보다는 강열한 햇볕에 빛바랜 푸른색의 느낌이다. 도시의 전반적인 컬러가 푸른빛이라는 것은 참 이채로운 광경이었다. 자신의 색을 가지고 있는 도시. 사람들도 저마다의 색을 가지고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빛이 바래져간다는 점에서 사람과 도시는 비슷하다.
여행자들의 패션에 대한 성급한 일반화는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통계적으로 느끼는 바가 있다. 그래서 성급하지 않지만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농후한 일반화를 시도해보고자 한다. 오랜 기간 여행을 했지만 사실 나는 인도 사람과 파키스탄 사람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서로 감정의 골이 깊고, 적대적이기까지 한 이 두 나라 사람은 내 눈에는 아주 비슷해 보였다. 인도 사람들도 북인도 사람과 남인도 사람, 그리고 생활 격차에 따라서 피부색이 많이 달라서 눈으로 보았을 때 구별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하물며 인접해 있는 이 두 나라 사람을 감별해낸다는 것은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부분의 동양인들의 눈에 인도 사람과 파키스탄 사람의 구별이 어렵고, 유럽과 미국 사람의 구분이 어려운 것처럼 서양사람들이나 인도 사람들 눈에는 동양사람에 대한 구분이 꽤나 어려운 일이었으리라. 어디를 가도 대체적으로 "일본인이냐?" 하는 질문이 첫 번째였고, 두 번째는 "중국인이냐?" 하는 질문이 뒤를 이었다. 한국은 세 번째 즈음 자리를 하곤 했다.
한국 사람인 나는 일본 사람과 중국사람 그리고 한국사람을 90%의 확률로 알아볼 수 있었다. 중국사람은 일본 사람이나 한국사람에 비해 조금 더 많은 인원에 함께 다니는 데다가 성조가 있는 언어적인 특성으로 인해 멀리서도 구별이 가능했다. 일본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자신만의 패션 스타일을 확고하게 고수한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화려한 축에 속하든지 단정한 축에 속하든지 패션에 대한 고집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그러면 한국사람들의 패션은 어떨까? 내가 보기에 한국사람들은 장기 여행자이면 장기 여행자일수록 집에서 입다가 버려도 될만한 옷들을 주로 준비해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용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인도라는 나라 자체가 멋있게 꾸미고 여행할만한 곳은 아니라서 체류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패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한국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패션에 대한 포기라기보다는 다른 느낌이 있다. 한국에 있을 때 차려입던 사람들도 인도에 오면 '집 앞 슈퍼에 간식 사러 나가는 패션'인 경우가 많았다.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그랬다. 버려도 될 옷을 가져와서 대충 입다가 버릴 때가 되면 버리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묻어나는 패션이다. 물론 게중에는 현지에서 옷을 구매해서 입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만큼이나 현지에서 옷을 구매하고, 각종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다니는 한국사람은 만나본 적이 없었다.
사람은 살면서 '지랄 총량의 법칙'을 가지고 있다고들 한다. 평생 동안 떨어야 할 지랄의 양이 정해져 있어서 젊을 때 지랄을 떨지 않은 사람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떨게 되고, 젊을 때 충분하게 지랄을 떤 사람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비교적 덜 지랄 맞아진다는 법칙이다. 나는 인도에서 평생 떨어야 할 지랄을 패션으로 다 떨었다. 여행지의 자유분방함이란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 그리고 패션과 지랄에 대한 감각마저도 변하게끔 하는 힘이 있다. 귀국한 후에도 이 감각이 남아 있어서 현지에서 구매한 옷들을 입고 마트에 간 적이 있었다. 동네 아주머니들께서는 한참이나 입을 벌린 채로 내가 움직이는 방향대로 고개를 움직이면서 나를 쳐다 보았다. 아주머니들은 분명 눈으로 혀를 차고 있었다. 그랬다. 그래서 나의 패션과 지랄은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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