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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Jul 11. 2019

내가 한 선택에 흔들리는 스물여섯

온전히 내 선택을 다한 데에 따라오는 꼬리표, 그 이름은 후회로다

나는 화장품 브랜드 헤라(HERA)의 광고를 좋아한다. 광고에 삽입되는 음악은 흔히 감각적이거나 흥겨운 것이 많아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해놓고 종종 듣는 편인데, 오늘은 꽤 오래간만에 'Total Ape'라는 그룹의 'Young Gods'(헤라 광고 삽입곡)를 듣다가 오밤 중 집에 오는 길가에서 갑자기 스스로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에라이, 이 바보야. 그냥 써보겠다고 하지!"


두 달 전쯤, 출근하고 급한일을 처리한 뒤 한숨을 돌리던 아침에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대학시절 유명 멘토링 프로그램을 수료했던 광고회사의 프로그램 담당자였다. 그는 몇 번 대화도 나눠본 적 없는 내게 다짜고짜 반말로 인사를 건네더니, 몇 가지 근황을 묻다가 비로소 본론을 꺼냈다.


"사실은 우리가 이번에 카피라이터 신입 공채를 하거든. 생각 있으면 한 번 써볼래?"


맞다. 나는 그때 섣불리 "아니요"라고 대답한 것이 후회되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시작은 묘한 반발심리였다. 9개월 동안 그 빡센 광고회사 멘토링 프로그램을 수료한 나는 그 당시 그 회사에도, 함께 한 친구들에게도, 나의 멘토나 업계 전반도 큰 애정이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일을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멋있었지만 선망하는 업계에 다가갈수록 그 업계의 구린 점이 함께 눈에 들어왔다. (물론, 이건 당연히 지금 내가 속한 문화예술분야도 마찬가지다.) 몇 년 만에 다짜고짜 내게 전화를 걸어 반말을 하는 담당자도 맘에 들지 않았고, 그 프로그램을 수료하며 느꼈던 회의감이 다시 찾아와 나는 성급하게 "아니요"를 외쳤던 것이다. 전화를 건 이는 내게 현 직장을 묻더니 "아 그래..."하고 답한 후 내가 묻지도 않은 프로그램 동기들의 근황을 전하다 통화를 끊었다.


그 전화를 받은 시점에, 정확히는 그 전화를 받기 몇 주 전부터, 나는 내가 끝끝내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입사한 지 이제 막 1년이 되어가는 시점이었고, 이른바 '철밥통'이라 불리는 공공기관에 취업해 안정적인 생활을 시작했지만 그래도 내겐 여전히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섣부른 도전을 감행할 생각은 없었고, 내 찌질함을 토로할 용기 정도만 남아있었다. 그래서 그때 당시엔 이런 일기를 썼다.  


되게 심란하다. 방금 전 2년 전 대학생 멘토링 프로그램으로 밥먹듯이 드나들었던 광고회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이번에 카피라이터를 뽑는데 지원하지 않겠냐고. 담당자가 툭툭 반말하는 것도 싫었지만 그때 활동했던 친구 한 명이 이번에 결혼을 하는데 올 거냐며 갑자기 물어오는 것도 짜증 났다. 나는 다른 분야의 회사에서 일하고 있으며, 그쪽에 있는 친구들과도 전혀 연락하지 않아 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어디에서 일하는지를 묻길래 대답을 하긴 했는데, 그래도 역시 찜찜하다.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쁘지?

순간 '지원해볼까'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아직 어리고, 그 업계에 대한 미련도 조금은 남아있으니까. 떨어지면 어때. 인생의 경험이지. 그러나 나는 내가 떨어지든 붙든 간에 지금의 이 안정적인 울타리를 벗어날 생각이 없다는 걸 안다. 내가 여기까지 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래도 마음이 너무 심란하다. 왜 이러지? (2019.5.10. 10:36 AM)


시간을 조금 더 되돌려보면, 이 글을 쓰기 전에 나는 이런 마음 상태였다.

 

오늘 북토크를 들으면서 한 가지를 확실하게 알았다.(여기서 '북토크'란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저자와의 만남을 뜻한다) 내게는 아직 꿈을 이루지 못한 고등학생 때의 자아가 남아있다는 것. 카피라이터를 꿈꿨고, 광고업계에서 일하길 원했지만 끝끝내 이루어지지 않은 나의 소망. 그래서 내가 여전히 그 주변에서 맴돌고 있구나, 하는 걸 새삼 실감해버렸다. 대학생활 내내 광고공모전이니, 광고회사 인턴십이니, 멘토링 프로그램이니, 취업 특강이니 이것저것 다 붙들고 다녔지만, 그리고 취준을 할 때까지 지금 들어온 이 업계와 그 업계 사이에서 어느 쪽도 놓고 싶지 않아서 두 끈을 다 쥐고 있었지만, 내 손을 들어준 건 지금 내가 속한 이 업계였다.

확실히 나는 광고업계에서는 잘 적응하지 못했다. 매주 광고회사에 출석도장을 찍으면서 현업인들을 만나고, 내가 내 꿈에 제일 가까이 다가갔을 때에도 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나는 힘들었다. 무례하게도 과감해 보이는 것을 자기 개성인 양, 업계 선배라면서 가르치려 드는 것을 무슨 천부된 특권인 양, 매주 흥청망청 술 퍼마시면서 정도 이상으로 극히 추해지고, 또 그걸 누구나 다 그렇다는 듯이, 그런다는 듯이 포장하고, 나는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을 그 집단에서 너무 많이 마주쳤고 그게 결정적으로 내가 그 업을 멀리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직도 미련을 못 버려서 내가 이런 자리에 나가고 있구나 싶었던 게 바로 오늘. 그걸 다시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준 게 오늘이었다. 광고업계 출신에 무슨무슨 광고로 이름 꽤 날린 카피라이터 출신 작가님들이 쓴 책을 읽고, SNS를 구독하고, 만남의 자리에 가고, 그 사람들이 사는 방법과 내 삶을 비교하면서 어떻게 하면 저렇게 살 수 있을까, 저 사람들이 저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덕분일까 고민해보고. 물론 긍정적인 영향과 자극을 더 많이 받았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서 조금 안타깝고, 슬퍼지는 건 사실이다. 물론 나는 지금 내 자리에 충분히 감사하고 또 만족하지만, 내가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회의와 궁금증은 늘 내게 어느 정도 남아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한 날이었다. 오늘은. 그러나 삶은 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어서, 그저 살다 보면 내가 더 좋은 기회를 가질 날이 있겠지,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2019.4.25. 11:26 PM)


이상 일기에서 소위 "이름 꽤 날린 카피라이터 출신 작가님들"이란 김하나(<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등 저자이자 팟캐스트 '책읽아웃' 진행자), 김민철(<모든 요일의 여행> 등 저자), 홍인혜(<루나 파크 사춘기 직장인> 등 저자이자 이제는 등단 시인), 김진아(<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저자이자 울프소셜클럽 대표) 카피라이터다. 이들은 현재까지도 광고업계 현업에 종사하고 있거나, 광고에서 한발 떨어져 있지만 여전히 크리에이티브 인더스트리에 종사하면서 나와 같은 20대 사회초년생에게 '버팀의 아이콘'이자 롤모델이 되고 있는 이들이다. 그것도 아주 멋진 광고인이자 '여성'으로서의 롤모델.


광고의 전성기를 이끈 여성 카피라이터들의 시대, 나는 그들이 만든 광고와 콘텐츠들을 바라보며 자라온 '예비 광고인'이자 광고 지망생이었다. 그런데 취업 후, '예비 광고인' 신분을 벗어던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이 나서는 자리를 쫓아다니는 나를 보면서 어느 날 밤에 문득 회의를 느꼈던 것이다. 그런 광고인들을 아직도 열심히 쫓아다니는 게, 어쩌면 '내가 여전히 그 업계에 대한 미련을 갖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의심하면서.


그렇게 그 후로 지금까지, 마음은 이따금씩 오늘 밤처럼 요동을 치고 있다. 어느 날은 그런 제안(비공개 채용이었지만 분명히 아주 많은 후보자들에게 돌려진 흔하디 흔한 전화 중 하나였을 것임에 틀림없다)을 아주 잘 거절했다 싶다가도, 어느 날은 오늘처럼 크게 후회가 된다. 손해 될 것도 없는데 한번 써보기나 하지 뭐가 무서워서. 이는 내 업에 대한 태도와도 묘하게 직결된다. 일하는 게 뿌듯하고 즐거운 날은 분명 잘 거절했다 싶은데, 일하는 게 너무 싫고 괴로웠거나 마땅한 수확을 거두지 못한 날은 꼭 이렇게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후회가 막심해지고 만다. 줏대 없고 얄팍하기도 하지. 마음은 계속 엎치락뒤치락한다.


그래서 오늘 같은 날 나는 그냥, 이런 불안정한 마음 상태가 스물여섯의 특징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취업을 하기 전 내가 느끼는 불안의 결이 지금과 달랐던 것처럼, 취업을 하고 난 뒤에 내가 느끼는 감정의 진폭은 그냥 이러한 건가 보다, 인정하고 수용하기로 했다. 직장을 정한다는 것은, 정말 큰 결정이었다. 10대 시절 무려 6년이나 해외에 나가 산 것도, 대학에 진학하고 전공을 선택한 것도 100% 나의 결정은 아니었다. 그래서 후회를 덜할 수 있었다. 나의 인생이지만, 책임은 내가 다 지지 않아도 됐으니까. 남의 탓, 환경 탓, 부모탓을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직장은 다르다. 대학교에 진학한 이후 지독하고 우직하게 엄마가 반대하는 길만 쫒아간 나로서는 진로와 직장에 대한 선택은 오로지 나만의 결정, 내 의사 100%, 아니 200%로 결정된 것이었다. 나는 그래서 내가 아쉬워하고 후회하나 보다, 생각하기로 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온전히 내 선택을 다한 것에 대한 꼬리표. 아쉬운 훈장 같은 것으로. 이상향을 찾아 떠났지만 차선책에 안착했고, 대신 내게는 그만큼 오래 노력했던 시간과 추억들이 남아있기에 이렇게 아쉬움도 미련도 남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쩌면 이 글이 젊은 날 더 큰 용기를 내지 못한 것에 대한 또 다른 핑계나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내가 중요하다 생각한 건, 스물여섯을 지나고 있는 '지금' '나의' '감정상태'였다. 스물여섯의 나는 지금 이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수용할 것인가. 오늘의 나는 이렇게 정리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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