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닌 엄마의 독립 선언에 눈물이 왈칵 쏟아진 이유
엄마랑 밥을 먹고 와서 엄마가 지난 20년 동안 있었던 일들을 무차별적으로 쉴 새 없이 쏟아냈고 나는 울었다. 갑자기 눈물이 터져서 펑펑 울었는데, 그건 그간 엄마가 힘들게 살아온 세월이 불쌍해서이기도 하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어떤 복잡한 심경 때문이었다.
종잡을 수 없는 주제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지만, 늘 말하던 몇 가지였다. 당신은 왜 내가 안정적인 일을 하기를 바라는지, 사회에서 돈과 신용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빠의 죽음에 대해, 그리고 그간 버텨온 세월과 그걸 견딜 수 있었던 힘에 대해 엄마는 이야기했다.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던 스물세 살 때 나를 낳았고, 올해 내 나이가 스물 넷이다. 우리는 같이 24년을 살았지만, 나는 오늘 처음 듣는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24년의 세월 동안 말을 안 했던 것을, 이제야 말하는 이유는 엄마도 이제 그런 과거에서 초연해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과거엔 너무 힘들어서 말도 꺼낼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이제는 당신도 편하게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만큼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까.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눈물을 흘렸지만, 엄마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는 알 수 있었다. 아니, 사실 그동안 그게 얼마나 되는지 가늠도 못하는 수준이었는데, 그래서 내겐 그 과거가 '없는 과거'였는데, 이젠 알았으니 그것이 명백히 '있는 과거', 즉 '존재하는 과거'가 되었고 나는 그래서 울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몰랐다는 충격과, 그걸 이제야 알게 된 것에 대한 미안함. 엄마에 대한 불쌍함, 연민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처연해진 이유는, 사실 엄마의 선언 때문이었다. 엄마는 오늘 처음으로 내게 당신의 재산을 솔직하게 다 까발렸다. 지금까지 모아놓은 재산 목록과 그 금액, 갖고 있는 집과 자산 전부를. 빚이 없어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액수에 놀랐지만, 뒤따라오는 것은 엄마의 다음과 같은 선언이었다.
"한 푼도 물려줄 수 없다."
엄마는 이제 아등바등거리던 세월도 끝났고, 아빠도 떠났고, 내 공부도 다 시켰으니 이제는 당신이 스물세 살 이후로 빼앗겼던 날개를 다시 찾은 것 같다고 했다. 아빠가 죽은 뒤로 마음에 쌓인 한이 순간에 다 사라졌었고, 물론 아직도 아빠가 보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이제는 마음에 아무런 짐도 없이 너무나 자유롭고 편하고 좋다고 했다. 할머니와 이모들은 아직도 엄마에게 재혼을 강권하지만, 엄마는 이제 그 누구도 자기를 힘들게 하지 않기 때문에 혼자인 게 좋다고 했다. 당신을 더 이상 힘들게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 그게 참 행복하다면서. 또한 엄마가 지금까지 모아둔 자산은 집이든 돈이든 당신이 다 쓸 거라고, 남을 일도 없겠지만 설령 남는 게 있더라도 그건 전부 세상에 기부하고 떠날 거라고 했다. 나는 서운하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러지 말라고. 기댈 곳이 있다 생각하면 내가 더 안일해질 거라고.
이 얘기를 듣는데 순간 마음이 짜게 식었달까. 한참 엄마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이 느껴지다가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러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서운함이 몰려왔다. 그렇게 이야기를 다 듣고선 조용히 내 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늘 말로만 "엄마와 나의 인생은 별개다"라고 주장했지, 사실 우리가 이렇게나 빨리 분리될 줄은 몰랐다. 그동안 금전적으로 알게 모르게 엄마에게 기대고 있었던 것도 사실인데, 오늘 선언을 기점으로 이젠 '공식적으로' 그럴 수 없게 된 거다. 엄마가 앞으로 일을 계속 하든 안 하든 간에, 회사를 더 다니든 안 다니든 간에, 이제 그와는 별개로 내가 받는 금전적인 지원은 이번 학기 등록금으로 끝이 나는 거다. 더 이상 엄마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도, 돈을 빌릴 수도, 집이나 재산을 물려받을 수도 없고, 내게 남은 내 인생이 60년쯤이라면 나는 그 60년을 오롯이 내 힘으로 벌어먹고 살아야 하게 된 거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나는 그동안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래도 안되면 엄마가 도와주겠지', '그래도 안되면 엄마가 물려주겠지'라는 막연한 상상 혹은 기대를 품어왔다. 그런데 엄마와 나는 이제 내가 그동안 그토록 바라던 별개의 존재, 독립된 존재가 된 것이고, 나는 더 이상 그 어떤 금전적 지원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어렴풋이 '기댈 수 있다' '기대도 될 것이다'라고 생각한 곳마저 없어져 버린 것이다.
'기댈 수 있는 곳'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이게 사실은 굉장히 큰 변화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엄마에게 기댈 수 있다면, 나는 물론 일은 했겠지만 그래도 앞으로도 지금처럼 내 마음대로 소비하고, 편하게 놀고, 먹고, 조금은 여유롭고 게으르게 사는 삶을 살아도, 그랬더라도 충분히 걱정 없이 먹고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돈은 계획적으로 써야 하고, 무분별한 소비는 당연히 자제해야 하며, 시간을 지금처럼 의미 없게 낭비해서도 안된다. 내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그게 곧 돈으로 환산되어 돌아오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지금까지 내가 하던 덕질도, 의미 없이 휴대폰을 보며 낭비한 시간들도, 전부 다 쓸모없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어떤 일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다시 튀어올랐고 이젠 내 머릿속의 1순위 고민이 되었다.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엄마도 이젠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겠다 선언을 했으니, 이제야 속박에서 벗어났다 고백을 했으니, 나도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내 친구들은 이미 진작에 깨달은 사실을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또 어디서 일을 해야 할까. 초심으로 돌아가서 생각하게 된 기분이다. 이제 정말로, 직업이든 결혼이든 100퍼센트 내 의지와 판단으로 결정할 수 있는, 또 그래야 하는 시점이 찾아왔다. 엄마는 아까 대화에서 자신이 그동안 나를 통해 자신의 못다 한 꿈을 이루려 한다는 욕심을 깨닫고, 그게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이제 나의 직업 선택이나 결혼 여부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며, 당신은 오로지 나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돈이 아닌 건강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살겠다는 것을 다짐했다.
그러니 이제 앞으로 내가 일하는 곳은 한국이 될 수도, 외국이 될 수도 있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나 하는 일 또한 수천수만 가지가 될 수 있다. 그동안 나를 가장 크게 가로막고 있던 장벽이 해제된 것이니, 나는 그 무엇도 꿈꿀 수가 있다. 그러나 나를 알게 모르게 뒷받침하던 어떤 지지대 또한 함께 사라져서, 그만큼 신중하고 차분하게 앞길을 선택해야 하게 되었다.
무엇이 될는지는 모르지만, 다시 새로운 출발선상에 와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반년 동안, 마지막 남은 학교생활을 잘 마무리하며 어떤 모습으로 사회에 설지 깊이 고민하고, 또 행동하는 시간을 보내려 한다.
(이상은 2017년 2월 22일에 쓴 글이다. 이때로부터 벌써 일 년 반이나 흐른 지금, 나는 취업을 했고, 안정적인 소득을 벌어들이고 있으며 엄마는 그때와 또 다른 입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