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령 존재감이 없더라도 무책임하고 나쁜 사람으로 기억되기는 싫은 욕심
연휴 내내 밤을 새 가며 놀아서 화요일인 오늘도 나는 밤을 꼴딱 지새웠다. 이번 연휴는 총 5일을 놀았는데, 나름 만족도가 높았던 것 같다. 보고 싶던 예능, 듣고 싶던 강연은 다 찾아보았고 매일 동네 카페로 나가서 한국사 공부도 열심히 했다. 짧지만 동네 산책도 하고, 요 며칠은 미세먼지도 심하지 않아서 밖으로 나갈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간간이 내리던 비도 한몫했다. 하루 정도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지만 토요일 예능을 보면서 훌훌 털어버렸고, 엄마와는 매일 부부싸움을 하는 것처럼 같이 소리 지르다 어느새 또다시 시시덕거리기를 반복했지만, 어찌 됐든 이만하면 훌륭한 연휴였다.
다른 날이었으면 동이 틀 때까지는 대충 버티다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잠을 잤을 텐데, 오늘은 11시에 수업이 있어서 맘 놓고 잠에 들지도 못 했다. 일어나서 펜을 들 힘은 없고, 누워서 눈을 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자꾸만 휴대폰 쪽으로 손이 갔다. 블로그, 인스타그램, 브런치,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다음 카페, 온갖 커뮤니티는 다 들어가 보고 일 년에 한번 볼까 말까 한 지인들 카톡 프로필 사진까지 쭉 스캔하고 난 뒤에야 시간이 좀 가는 듯했다. 평소 왕래가 없는 사람들의 연락처는 그때그때 바로 삭제해버리고, 카톡 친구도 가족 외에는 전부 숨김 친구로 몰아넣다 보니 아주 오랜만에 그동안 몰랐던 지인들의 근황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가령 '아, 얘는 군대를 갔구나(혹은 아직도 군대에 있구나)', '얘는 연애를 시작했구나(혹은 둘이 아직도 만나는구나)', '얘는 여행을 다녀왔구나(심지어는 신혼여행을 다녀왔구나)', 등등. 짧은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와 프로필 사진 한 장은 그 사람의 결코 '적지 않은' 부분을 말해준다.
평소엔 사용하지 않는 기능이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이따금씩 카톡의 '친구추천 허용' 기능을 사용해볼 때면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난 이 사람의 연락처도 모르는데, 우리는 서로 쌩 깐 지 오래인데, 혹은 이름은 물론이요 얼굴마저 가물가물한데, 이 사람의 친구 목록에는 아직도 내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왠지 불편하다. 상대방이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짧은 상태 메시지와 프로필 사진 한 장으로 인해 아무짝에 쓸모없는 내 사생활이 누군가에 의해 관음 당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와 나 사이에 직접적인 교류가 없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어쩌면 그는 무의식적으로 나에 대한 이미지를 차곡차곡 쌓아 올려 편향적인 인상, 내지는 편견을 갖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빨리 잊히는 부류의 사람이라면 좋겠다. 무리 중에서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 사람, 누군가가 '왜 그런 애 있었잖아'하고 언급할 때마저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희미하게 기억되는 그런 부류의 사람. 내가 타인을 쉽게 잊듯이, 다른 사람도 나를 쉽게 잊어버렸으면 좋겠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불현듯 나의 존재가 상기될 때 '잘 살고 있겠지' 정도로만 생각해주면 참 고마울 것 같다. 누군가의 시각대로 내가 재단되고 특정한 틀에 갇혀 기억되는 것보다, 그저 그런 아이로 희미하게 기억되는 내가 훨씬 더 자유로울 테니까. 욕심이라면 욕심이다. 설령 존재감이 없더라도 무책임하고 나쁜 사람으로 기억되기는 싫은 욕심.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피곤한 생각이 들지는 않았던 과거의 관계들이 그립기도 하다. 스마트폰은 물론이요 아직 인터넷이 채 활성화되지 않았던 어린 시절, 한 친구가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버리면 그 동네 친구들과의 관계는 그걸로 끝이었다. 그렇다고 낙담할 이유는 없었다. 한 동네에서 즐겁게 뛰어놀던 기억, 놀이터에서, 친구네 집에서 잘 먹고 잘 놀던 기억만 고스란히 남겨두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한 번 시작한 관계를 전처럼 확연히 맺고 끊기가 참 힘들다. 물리적으로 먼 거리를 두고 있어도,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인간관계와 각종 SNS 사용 알고리즘을 파악해낸 페이스북이 '알 수도 있는 사람'에 상대방을 떡하니 추천해준다. 때로는 평생 피하고 싶은 고등학교의 담임선생님, 얼굴을 보기도 껄끄러운 아는 언니, 같은 대학에 다니는 '동명이인'의 친구까지, '알 수도 있는 사람'의 스펙트럼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입이 떡 벌어진다. 나도 누군가의 타임라인에서 '알 수도 있는 사람'의 명단에 올라 얼굴을 드러내거나 황급히 삭제되기를 반복했을까? 내가 드러내기를 원치 않았던 나의 수많은 자아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얼굴을 들이밀고 있으려나. 내가 원했던 맺고 끊음이 확실한 인간관계는 온데간데없고 모호하고 얕은 관계들만이 주변을 맴도는 것 같아 한숨 쉬게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