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을러도 괜찮은 스물세 살, 그곳에서 내가 얻은 것들
대학 4학년 1학기가 끝났다. 매 학기가 그렇다만 이번 학기 역시 폭풍 같은 한 학기였다. 학년이 올라가도 나아지지 않는 팀플 및 과제와의 사투. 그래, 그것까지는 좋은데 진로에 대한 고민이 점점 더 심화되면서 부모님과의 갈등까지 악화되었다. 한 학기 동안 이 문제를 놓고 싸우기를 여러 번, 내가 선택한 앞길을 극구 반대하는 부모님과의 다툼에 나는 결국 엉뚱한 결론을 내리고야 말았다. 가출. 내가 선택한 4학년 1학기 여름방학의 결론은 나이 스물세 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출'이었다.
잠시 잠깐이라도 부모님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혼자서 시간을 보내보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늘 부대끼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철저히 혼자 남겨진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주변의 잔소리에 시달리기보다 내가 무얼 원하는지 조용히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많이 고약하고 이기적인 수법이지만, 가출 후에는 가족들과 연락까지 완전히 끊기로 결심했다. 어쩌면 외동딸이라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혼자 비밀스러운 가출 계획을 짜두는 사이, 몇 년 전 꼭 한번 이루리라 다짐했던 소원이 생각났다.
'제주 한 달 살기'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경이 넘실대는 제주에서 여행자가 아닌 생활자로서 한 달을 살아보는 것. 그것은 어린 나의 로망 중 하나였다. 들판을 뛰어다니고, 오름 정상에도 올라가고, 바다에서 물놀이도 하고, 해녀들의 숨비소리도 들어보고, 밤에는 하늘 가득한 별을 보고... 취업이나 진로 문제를 뒤로하고, 서울에서의 복잡한 일상과 지루한 인간관계를 뒤로 한채 나는 한 번쯤 자연 속에서 조용히 지내보고 싶었다. 대학 2학년 때 제주에서 올라왔다는 새내기 후배에게 밥을 사주던 자리에서 무심코 '나 꼭 제주에 내려가서 살아볼 거야'라며 장난이 반쯤 섞인 농담을 하곤 했는데, 정확히 2년 뒤 그 말은 현실이 되었다. 사람은 참 이상하게도 가장 절박한 상황에서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에 뒤늦게나마 귀 기울이게 되나 보다.
가출을 결심한 후 엉뚱하게도 고시원이나 월세방이 아닌 제주살이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 나는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결심했다. '꼭 한 달이 아니더라도, 괜찮으면 더 오래, 더 느긋하게 있어보자.' 실제로 제주에서 한 달을 살기 위해 거쳐야 하는 절차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가진 거라곤 어린 나이와 체력밖에 없는 나는 제주에서 게스트하우스의 스텝으로 지내는 방법을 택했고, 관련 카페에서 나름 괜찮은 곳의 스텝 자리를 구해 그날 바로 비행기표를 끊었다. 종강 후 바로 제주로 내려가기 위해 한 학기 동안의 짐을 미리 차곡차곡 정리해두었고, 가기 일주일 전에는 부모님께 남길 편지를 써두었다.
드디어 가출 당일. 엄마가 출근한 뒤 캐리어에 한 달치 짐을 싸고 책상에 편지 한 장을 올려둔 뒤 집을 둘러보았다. 이만큼 큰 딸이 가출했다는 걸 알면 엄마는 무슨 심정일까. '에이, 그래도 괜찮아. 애도 아니고 뭐 어때. 이만큼 커서 설마 밥 굶고 다닐 거라고 생각이나 하실까. 가보자.' 복잡한 심정으로 집을 나섰다. 착잡하기도 했지만, 이 나이에 가출하는 스스로를 다독이느라 더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제주에 도착해서 공항에 마중을 나온 사장님과 첫인사를 했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장마 탓에 비행기가 연착되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자동차는 제주 시내를 벗어나 동쪽으로 향했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는 금세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 도착했다. 한 달 간의 스텝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제주 생활 초기, 집에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가출을 감행했다는 점 때문에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가장 친한 친구로부터 엄마가 나를 찾고 있다는 다급한 소식을 들었고, 집으로 연락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며칠간을 고민했다. 무엇보다 가장 나를 괴롭혔던 건 홀로 행복하게 지내는 데에서 비롯되는 죄책감이었다. 가족이나 진로 문제 등 육지에 두고 온 것들을 잊어버리면 제주에서의 생활은 더없이 완벽했다. 눈뜨면 보이는 푸른 하늘, 상쾌한 바닷바람, 하늘보다 더 푸른 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원하는 대로 실컷 자연을 느끼고 바라볼 수 있었다. 변화무쌍한 제주의 장마철 날씨는 그 재미를 한층 더해주기까지 했다. 고로 나의 죄책감이란, '누군가는 나를 걱정하고 있을 텐데, 누군가는 나보다 더 열심히 공부를 하며 취업준비를 하고 있을 텐데, 나는 과연 여기서 이렇게 게으르게 시간을 흘려보내도 될까?'라는 걱정에서 시작해 한없이 커져만 갔다.
그러나 죄책감을 굳이 오래 끌지는 않기로 했다. 적어도 제주에 있는 시간만큼은 방해받지 말고 온전히 누리자는 마음이 더 강했다. 말없이 집을 나온 딸로서 부모님을 걱정시킨 죄는 크지만, 나 자신에게까지 미안해할 건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은 게스트하우스의 테라스에서 캠핑의자를 펼쳐놓고 하루 종일 하늘을 구경했고, 어느 날은 저 멀리 시내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맛있는 모카라테 한잔을 마시고 왔다. 어느 날은 근처 그림 상점에 가서 좋아하는 그림엽서를 잔뜩 사모으고, 어느 날은 바닷가로 나가 하루 종일 물놀이를 즐기고 살을 태웠다. 제주에서의 일상을 즐기면 즐길수록 육지에서의 걱정거리들은 잊혀갔고, 나는 어느새 날짜 감각마저 상실한 채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일에만 주의를 기울였다. 가령 오늘은 무엇을 볼까, 점심에는 무엇을 먹을까, 저녁에는 어떤 게스트와 이야기를 나눌까, 밤에는 무슨 보드게임을 할까 등등.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제주에 있으면 유독 시간의 흐름에 무뎌지는 것 같았고, 그래도 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동안 게스트하우스의 스텝으로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스텝 생활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어쩌면 게스트하우스의 '숙식제공'이나 '여행비 지급'보다 훨씬 더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는 최고의 혜택이 아닐까 싶다. 아홉수에 직장을 관두고 반년째 여행을 다니는 백조 언니부터, 명예퇴직을 당해 입사 동기와 함께 한라산을 타러 온 두 아저씨,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제주 이주를 고민하는 청년과, 제주 본연의 재료를 찾아 요리하기 위해 멀리에서 날아온 셰프도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의 매력 중 한 가지를 꼽자면, 바로 그날 묵는 게스트들의 나이나 직업에 상관없이, 상대방을 경계하거나 지나치게 환대할 필요도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편하게 서로 말을 섞고 함께 술 한잔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는 공식적으로 파티를 여는 곳은 아니었지만, 게스트 몇 명이 모여 조촐하게 있는 음식을 나누고 함께 보드게임을 즐기는 날이 다른 그 어느 곳보다도 참 많았던 곳이었다.
시간이 흐르는 사이, 의도치는 않았지만 나의 생각도 상당 부분 정리가 되어갔다. '나에 대해 생각해봐야지', '내 미래를 생각해봐야지'라고 의도적으로 고민을 한 적은 없지만, 문득 돌아보면 앞으로의 계획이나 마음가짐에 대해 자연스럽게 정리된 부분이 많았다. 그게 참 신기했던 것 같다. 그중 나의 가까운 미래에 영향이 비교적 큰 결정 중 하나는, 내가 휴학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제주에 내려가는 것도 애당초 '휴식'이라는 명목으로 한 선택이었지만 이후 또 휴학을 결심하다니, 사실 휴학은 그동안 내 선택지에 존재하지도 않던 옵션이었지만 오히려 제주에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휴학을 생각하게 되었다. 제주에서 스탭 생활을 하면서 확고해진 것 중 하나가 바로 휴식, 더 정확히 말하면 '게으름'에 대한 개념 정의다. '게으름'이란 나의 시간을 낭비하면서 노동에서 멀어진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한 '게으름'이란 남들이 보기엔 시간 낭비 같아 보여도 스스로를 더 충만하게 만드는 하나의 좋은 '기회'였다.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며 재충전을 할 시간을 갖는 동안, 이러한 '게으름'의 시간이 지금의 나에게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것이 휴학 결정으로 이어졌다. 인생에서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내가 원하는 만큼 쉴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 많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게으름이야 말로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내가 현시점에서 나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제주 한 달 살기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던 날, 푹푹 찌는 더위에 캐리어를 끌고 나는 다시 한 달 만에 집으로 돌아갔다. 제주 생활은 내게 많은 것을 선물해주었지만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이 삶이 진짜 내 것이 아니다', '내 진짜 생활은 육지에 있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떠올랐고, 여건이 허락한다 해도 마냥 한없이 제주에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도 어쩔 수 없는, 무의식적인 경쟁의식에 허우적대는 도시 사람이라 그런지 제주에 그냥 눌어붙어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순간들이 분명 있었음에도 속으로 '이러면 안 돼'라며 솟아나는 마음을 억누르곤 했다. 결국 나는 한 달이 되는 날 육지행을 결심했고, 아무런 망설임 없이 다시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 공항으로 나를 데려다주던 차 안에서 사장님이 내게 물었다.
"어때요, 제주를 좀 느껴 보셨습니까?"
나는 "조금이요."라고 답했다. 어차피 다시 돌아올 곳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공항으로 향할 때의 마음이 처음 제주에 도착했을 때보다 더 떨렸던 건, 아마도 한 달 전과는 또 다르게 육지에서의 삶을 마주할 것이라는 내 안의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후 서울로 돌아와 일부러 며칠을 더 정신없이 보냈다. 크게 할 일이 없음에도 집안을 청소하고, 가구를 사들이고, 그것들을 조립하고, 안 하던 요리를 하고, 그래야 괜히 허전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잠시 잠깐 공허함이 밀려왔을 때는 항상 제주를 떠올렸다. 돌이켜보면 한 달간의 제주생활이 마치 한바탕 꿈이었던 것처럼, 단 며칠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짧고 몽환적으로 느껴졌다. 제주에서 돌아온 이후 나의 삶은 그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면서도 참 많은 것이 달라졌다. 타지에서, 그것도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느낀 가족의 소중함 덕분이었는지 가출 이후 가족과의 관계는 더 단단해졌고, 나 자신도 취준생이라는 신분에서 한결 더 자유로워지고 느긋해졌다. 어차피 지나야 할 시기라면, 구태여 재촉하거나 마음을 졸일 필요는 없으니까. 제주 한 달 살기가 내게 남겨준 것은 어쩌면 스물세 살의 나는 좀 더 게을러져도 괜찮다는 깨달음이 아닐까.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삶의 속도를 조절할 줄 알게 된 것, 그것이 내가 제주에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