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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 살인 올해의 화두는 ‘독립’이다. 불과 일이 년 전까지만 해도 “청년들은 대학 졸업 이후 스스로 독립을 준비해야 한다.”는 모 작가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하지만 졸업을 앞두고 나의 삶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까 고민하다 보니 물질적·정신적으로 가족이나 타인에게 의지하는 삶은 주체적인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다는 것을 체감했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어떻게 하면 하루빨리 물질적인 지원이나 정서적 유대에서 벗어나 독립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이상적인 자기결정의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한다.
사실 나는 자라면서 부모님으로부터 애정 어린 믿음이나 지지를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다. 덕분에 스무 살 이후로는 엄마의 기대를 과감히 실망시키고 내 갈 길을 찾아가는 사람이 되기로 했고, 그 때문에 많은 다툼과 상처를 경험했다. 이런 환경에서 한 번쯤은 철저히 벗어나 보고 싶어 지난여름 가족 및 지인들과의 연락을 일체 끊고 한 달 동안 가출을 감행했다. 이 나이 먹고 가출을 했는데 행복하기까지 해서 모호한 죄책감이 자라나기도 했지만 이내 훌훌 털어버리고 나에게 집중하는 한 달을 보냈다. 지금도 나는 내가 믿고 있는 가치관이 정말 내 것이 맞는지, 혹여나 타인이나 부모님으로부터 무의식적으로 심어진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한다. 그리고 남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스물세 살의 가출을 마음에 새긴다.
독립을 준비하고 있는 요즘 감정 기복이 꽤 잦다. 느닷없이 희망에 부풀어 올랐다가 또 느닷없이 축 처지곤 한다. 매일매일 욕망의 크기를 재어 보고 매일매일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매일매일 바라는 것과 현실 사이의 타협 여부를 가늠한다. 그래도 지금은 내가 가진 두려움을 인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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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다. 싫은 건 싫다고 말하고 거절에도 거리낌이 없다. 사진도 물건도 사람도 이따금 미련 없이 잘 버린다. 그렇게 버리고 버려서 남은 것들이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이라는 것을 안다. 가령 나는 비정기적으로 방청소를 하는데 청소를 할 때마다 같이 사는 사람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물건을 버린다. 지난번 청소할 때는 못 버린 물건을 이번 청소 때는 곧잘 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아무리 청소가 반복되어도 절대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지금까지 모은 공연 티켓들이나, 인생에서 제일 열심히 공부를 했을 때 쓴 교재와 노트들, 한때 광고회사가 좋다며 하나씩 모으기 시작한 광고회사 사보들, 어릴 때부터 친구와 국제우편으로 주고받은 손편지 같은 것들 말이다.
이와 같은 맥락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관계나 추억도 마찬가지로 추리고 추려서 남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만 챙겨가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 관계 맺기의 폭이 넓지 못해서 매일같이 얼굴을 맞대는 사람들보다 일 년에 두세 번씩 만나더라도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좋다. 관계가 아주 가깝든 그렇지 않든 간에 상대방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은 내게 매우 중요하다. '모두에게 웃어줄 수는 없는 사람', 이게 대학 1학년 때 내가 처음 깨달은 나 자신의 모습이었고 이 모습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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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비자발적으로 '버티거나' '참으면서' 살아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초과 근무수당이 없는 야근과 열정페이와 재능기부를 거부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대신 매일 야근을 해야 한다면 나는 과감히 그 방식을 포기하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다른 방법 혹은 다른 환경을 찾아 나설 것이다. 일과 삶의 균형을 지키는 것이 적어도 내게는 더 많은 돈을 버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나의 노동력이 누군가에게 착취당하거나 평가절하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내가 이렇게 ‘일과 삶의 균형’의 중요성을 외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사람은 게을러야 한다’라는 일종의 지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휴학생인 지금은 의도치 않게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지만, 지난 4개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백수신세로 살면서 게으름이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는지 몸소 체험한 바 있다. 사람은 게을러야 쓸데없는 생각을 할 시간이 생기고 게을러야 내가 읽고 싶은 책이 뭔지도 생각하게 되고 게을러야 실제로 그 책을 집어서 한 자 한 자 뜯어 읽게 된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떠올리는 일은 내가 게으를 때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이번에 다시금 배웠다.
바빠서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바빠서 가족을 돌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을 하느라 체력이 소진되고 기력이 딸려서 관계를 돌보지 못하고 잡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삶을 고집해서 1년 365일 ‘열심히 돈 벌고 숨만 쉬는 기계’로 살 것이 아니라면, 나는 우리 모두가 게으를 권리를 더 강력하게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나는 현재 취업 시기를 앞두고 있지만 졸업 후 회사에, 아니 사실은 그 어느 것에도 '매달리는' 삶을 살 생각이 없다. 모 작가의 책 제목처럼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라고 물어보면 바로 '네'하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직업에 당당히 ‘독립’ 두 글자를 붙여두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독립 프로듀서, 독립 에디터, 독립 마케터 등등. 그 외에도 졸업 후 진로가 꼭 취업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돈을 벌기 위해 꼭 회사 사무실 안에 앉아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들, 정규직에 목매지 않는 사람들, 돈 버는 일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느라 당장 다음 주 생활비가 걱정된다고 나지막이 고백하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들의 선택을 존경한다. 나 자신도 증명사회에서 벗어나 "삶의 특정 시기에는 꼭 무엇 무엇을 해야 한다”혹은 “그 길을 가려면 무조건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와 같은 공식을 깨부수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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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고 반짝이는 것을 눈물겨워하면서도 지독히 좋아한다. 케이팝 콘서트를 보다가 울고,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다가 운다. 실은 그것도 눈물 나고 마음 아플까 봐 잘 보지 못한다. 뉴욕에 도착한 바로 첫날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네"라고 회의감을 느낀 주제에 아직도 그 '욕망 덩어리' 도시를 사랑하고 동경한다. 나중에는 그런 도시의 구성원이 되어 보고 싶다.
내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고 갈망하는 건 누군가 나에게 심어준 가치관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적인 차원에서 비롯된 것이라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에서도 가장 높은 단계에 있는 것은 자아실현의 욕구이고 우리는 누구나 아름다운 존재가 되고 싶어 하니 말이다.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절정에 서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모습을 목격하는 것은 정말 가슴 떨리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눈물을 억지로 쥐어 짜내는 광고들보다 눈물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게끔 만드는 광고들이 참 좋다. 내가 일정 금액을 후원하고자 하는 후원자라면 '너도 나도 다 힘들다, 근데 쟤는 더 불쌍하다, 그러니 도와주자'라고 외치며 가난을 하나의 이미지로서 소비하고 마는 모금 광고보다 '나의 꿈은 가나의 아이들에게 학교를 지어주는 것이고 여러분이 그 꿈을 도와주었다, 나는 이제 더 큰 꿈을 꿀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밝힌 샘 오취리의 소원에 마음이 더 동할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내가 저들이 진 가난의 무게를 덜어주었어' 보다 '내가 저 사람의 꿈을 대신 이뤄주었어'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 훨씬 더 가슴 떨리는 경험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한편 요즘에는 욕망하는 것이 꿈꾸는 것보다 더 큰 힘을 갖는다는 생각을 꽤 자주 한다. 막연하게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내가 당장 저것을 갖고 싶다' 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어 덕질에 쓰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더 많은 채찍질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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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면 갈수록 여러 측면에서 나 자신에게 더 관대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첫 번째는 화장이다. 80%의 뻔뻔함과 20%의 게으름이 늘 '내가 타인에게 어떻게 비칠까'라는 고민을 이긴다. 일 년 중에 렌즈를 끼고 화장을 하는 날이 손에 꼽히고, 남이 보기에 예쁘고 단정하게 잘 차려입는 날도 거의 없다. 물론 나 스스로는 그런 것에 무관심하다.
만약 당신이 내가 렌즈 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잘 하지 못해서 매우 어색한 화장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그건 내가 당신 앞에서 나의 약점을 가리고 싶어 한다는 뜻이다. 잘 보이고 싶어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아무 가면 없는 나를 선뜻 보여주기가 꺼려질 만큼 우리가 친하지 않다는 뜻이다. 반대로 친하다고 무조건 맨 얼굴을 보이는 것은 또 아니다. 나를 포장해야 할 이유가 없을 때, 가까이 다가가 친해질 의향이 없을 때도 화장을 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자기 위안이다. 나에게는 혼자서 잘 놀고 잘 먹고 잘 쉬고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은밀하고 개인적인 시간과 공간이 매우 중요하다. 얼마 전까지도 깨닫지 못한 사실인데,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내 친구보다, 엄마보다, 선생님보다, 나를 속속들이 제일 잘 아는 사람이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들을 '나'는 다 알고 있다. 요즘 나는 나와 제일 잘 지내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나를 부단히도 응원하고 토닥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시간 활용이다. 나는 '지금' 행복해야 한다고 믿는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유보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특히 먹는 것, 게을러지는 것, 덕질 하는 것 이 세 가지에 해당한다면 더더욱. 그러나 때로는 지금 꼭 '행복'이라는 감정을 누리지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지금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사치로 다가오는 순간에는 쌓인 문제를 해결하고 문제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나를 다독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전반적으로 요즘 '산다'는 걸 생각하며 내가 느끼는 점은 내가 저 멀리 점 하나를 찍어둔 채 이리저리 유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지향점은 있지만 반드시 앞만 보고 걸어야 하는 똑바로 가로지르는 길을 갈 생각은 없다. 조금은 삐뚤빼뚤 하더라도 관대하게 이리저리 흘러가게 놔두다가 '언젠가는 저곳에 닿겠지', 라는 마음가짐으로 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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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부터 글을 쓰는 습관이 생겼다. 보통 휴대폰 메모장이나 블로그 혹은 브런치 그것도 아니면 컴퓨터 D드라이브에 글을 저장해둔다. 일상적으로 글을 쓰는 것은 취미라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 모든 작가의 글 중에서 내 글을 가장 열심히, 가장 많이 읽는 열성 독자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관심이 없는 사소한 표현 하나에도 세심하게 공을 들인다. 나는 평소에도 생각이 끊이지 않아서 운동을 하다가도 씻다가도 먹다가도 ‘이거다!’ 싶으면 무조건 기록하는 습관이 있는데, 때로는 그 습관이 꽤 피곤하게 느껴져서 이어폰을 끼고 시끄러운 노래를 틀어 의도적으로 생각을 차단하기도 한다.
그래도 글은 나의 가장 좋은 친구라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얼마 전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친구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밤새 그림을 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순간 나에게는 글쓰기가 그런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말을 통해 풀어낼 수 있는 감정도 있지만, 글을 통해 정리되는 감정은 금세 휘발되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있어서 좋다. 물론 내 인생은 바라는 대로 살 때보다 흐르는 대로 살아지는 경우가 많아서 과거와 현재의 감정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심지어는 '내가 왜 이런 소리를 했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많지만, 그래도 매번 다른 생각과 다른 고민으로 그 시간들을 채워왔다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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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스로에게 세워놓은 한계 장벽과 타인에 대한 편견의 벽이 너무 높아서 인생 자체가 그것들을 깨 가는 과정 속에 있는 사람이다. 모든 결과에는 다 선택이 있었고 모든 감정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지금까지 내가 발굴한 나는 2% 정도 되는 것 같다. 3%는 아직 발굴되지 않았고, 5%는 앞으로 내가 만들어가야 할 몫이고, 90%는 내가 아닌 환경이 나에게 주는 영향에 따라 그때그때 변하는 몫이라고 생각한다.
내 삶의 어떤 부분에선 운이 좋았고 어떤 부분에선 운이 나빴다. 모두가 다 그렇다. 내가 운이 나빴던 부분에 대해서 부정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자기가 운이 좋았던 삶의 어느 부분을 가지고 으스대고 우쭐대는 사람들은 별로다.
내 삶의 어떤 부분에서 운이 좋지 않았던 대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늘 주변에 말하고 다닌다.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을 늘 주변에 말하고 다니면 언젠가는 그것이 꼭 이루어질 거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나는 내가 자주 촐싹거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확인시키기 위해서라도 그런 촐싹거림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 보통 이 촐싹거림은 때늦은 자기검열과 타인과의 비교, 혹은 반성을 동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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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보드에 처음 지원했을 때가 마냥 광고 일을 하고 싶고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대학교 1학년 때였고, 두 번째로 지원했을 때가 한창 광고에 대한 애정이 식고 공연이나 사진 등 다른 곳에 한 눈을 팔던 3학년 때였다. 당시 면접에서 광고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잘 대답하지 못했고, 심지어는 “세상에는 광고 말고도 재밌는 게 참 많더라고요.”라는 말을 했었다. 선발에서 떨어진 그즈음 한동안 면접 생각을 하며 ‘광고에 대한 생각이 잘 정리되면 다시 지원해봐야지.’라고 마음을 먹었고,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내게 생각이 잘 정리되었는지 묻는다면 나는 여전히 ‘광고란 무엇이다’라고 멋지게 정의 내리지 못한 채 우물쭈물 거리지 않을까 싶다. 내가 이번에 주니어보드에 지원한 건 그냥 퍼즐게임을 할 때 아이템 슬롯을 돌리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이 슬롯을 돌려서 어떤 아이템이 나올지, 아니면 아예 꽝이 나올지 그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최소한 내가 다음 판에서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게임을 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주니어보드는 내가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 대학생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고, 지금이 졸업 전에 지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고, 이번에 떨어지더라도 지원은 했으니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없을 것 같다. 만약 면접을 본다면 지난번처럼 광고에 대한 생각이나 애정을 묻는 질문에는 여전히 망설이겠지만, 좋은지 안 좋은지 내가 원하는지 안 원하는지는 해봐야 알고, 가봐야 안다고 생각한다. 사실상 주니어보드 외에도 삶의 새로운 것을 맞닥뜨리는 나의 태도가 그러하다. 두려운 마음과 설레는 마음이 교차하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늘 나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겨주는 곳으로 달려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