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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Feb 03. 2017

휴학 중간정산

무계획 휴학의 끝판왕을 보여드립니다

 휴학을 한지 벌써 7개월이 지났고 이제 딱 한 달이 남았다. 7개월이나 지난 시점에 이제 와서 중간정산이라니? 늦은 감이 있지만 오히려 이제야 더 객관적이고 정확한 글쓰기가 가능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곧 끝을 앞두고 있는 입장에서, 나의 지난 휴학 생활과 그동안 느낀 점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일단, 나는 휴학 생활이라는 게 이렇게 길 줄 몰랐다. 한번 휴학을 하면 학교를 다닐 때처럼 '3개월에 플러스알파' 정도의 시간이 생기겠거니, 그저 인턴 한번 하면 끝나는 시간이겠거니 했는데 앞뒤의 방학을 더하면 무려 8개월이라는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이 생긴다. 휴학 전엔 이런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내가 2학기 휴학계를 냈으니 여름방학인 6월 20일부터 겨울방학이 끝나는 2월 26일까지, 무려 8개월이 넘는 시간을 갖게 된 거다. 혹여나 휴학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한 학기 휴학만 해도 생각보다 훨씬 긴 시간이 될 수 있으니 구체적인 계획은 아니더라도 대략 이 긴 시간을 어떻게 쓸지 잘 고민해보기 바란다. 꼼꼼히 계획하고 준비한다면 3-4개월짜리 인턴을 무려 두 번이나 경험해볼 수 있는 시간이다. 


 한편 나는 아무런 계획 없이 휴학을 했다. 원래 휴학 없이 졸업할 생각으로 3학년 때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던 휴학 충동을 꾹꾹 참아내고 4학년 1학기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지난해 상반기쯤 부모님과의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부득불 쉬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학기가 끝난 6월 20일, 나는 학기를 마치자마자 제주도로 날아갔고, 그곳에서 한 달간 혼자서 온전히 쉼을 누리며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때 처음 휴학을 결심했다. 말 그대로 전혀 계획에 없던 휴학이었다. (제주 생활에 대한 글은 https://brunch.co.kr/@grace211/25 참조)


 이때 휴학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나의 목소리, 또 하나는 타인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우선 방학 직후 한 달 간을 제주에서 살아보니 그동안 쉼이라는 게 나에게 얼마나 절실했고 또 필요한 것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제주에 살면서 눈뜨자마자 제주 바람과 햇살을 맞고, 방을 나가자마자 북촌리의 바다와 한라산이 보이는 생활을 만끽했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비단 좋은 풍경을 보는 것 외에도,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시간'들이 그저 좋았다. '육지 것들'을 다 내려놓고 고민을 접으니 하루하루가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추억이 미화된 탓도 크겠지만, 아마 나는 그때 '쉼'과 '게으름'의 중요성을 체감하게 된 것 같다. 경험을 통해서 나는 나 자신에게 그런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쉰다고 해서 결코 죄책감을 갖거나 불안해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니까. 


 타인의 목소리는 그 한 달 동안 내가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탭 생활을 하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다양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지만 그들이 나를 보며 하는 말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참 부럽다." 그리고 "그 시간을 더 충분히 누려라." 처음엔 그저 노는 내가 부러워 보여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말하는 사람들은 왜 그런 말을 할까 생각해보게 됐다. 그리고 왜 그들의 삶에는 여유와 쉼이 없는지도 생각해보았다. 그들은 크든 작든 버릴 수 없는 '자기 것'과  '자기 몫'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게 직장이든, 가족이든, 연인이든, 집이든, 그 어떤 유무형의 자산이든 결코 쉽게 내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것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없는 거렁뱅이까진 아니어도 크게 신경 쓰거나 보살펴야 할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선택을 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적으니까 그 선택은 그래서 더 쉽고 단순해질 수 있다. 그렇다면 휴학이라는 선택도 '지금', 이때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정리하면 나의 목소리는 내가 휴학의 필요성을 직접 깨닫게 해주었고, 타인의 목소리는 그 선택을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셈이다.




 7월 20일, 제주도에서 한 달을 채우고 서울로 올라와서 본격적으로 나의 '뜨거운'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작년 여름 날씨는 말 그대로 너무 '뜨거워서' 사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만 보냈다. 밀린 예능 프로그램을 정주행 하고, 안 보던 드라마를 챙겨보고, 모아놓은 돈을 펑펑 써버리고, 친구들과 만나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고 여행도 갔다. '원래 이 시간은 방학기간이니까 좀 놀아도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타이르며 8월이 지나갔고 9월이 되었다.


 9월 초 엄마가 잠시 회사에 휴직계를 내고 수술을 하셨고 그동안에는 병간호를 했다. 그리고 9월 중순부터 (그제야) 인턴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 휴학계를 냈을 때 나의 포부는 굉장히 원대했다. 초반엔 가까운 외국에 가서 해외인턴을 해야지! 같은 부푼 꿈을 꾸고 있었다. 시간은 많으니까 3개월 정도 외국에 나갔다 오는 게 영 가능성 없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짐작하겠지만, 맞다. 다 허황된 꿈이었다.


 10월 내내 구직활동을 하고 면접을 보러 다녔지만, 기업들의 일반적인 인턴 구인 시기를 놓친 탓인지 일단 인턴 공고 자체를 찾아보기가 매우 어려웠다. 공채로 인턴을 뽑는 기업들은 다 날려먹은 셈이었고, 비정기적으로 인턴을 뽑는 몇몇 회사에 지원을 해보았지만 애초에 관심을 두지 않은 분야라 그런지 연달아 물을 먹었다. 그 후론 관심분야로만 한정해 인턴 자리를 구하다 보니 지원할 수 있는 기업의 수도 매우 제한적이었다.


 한편 면접을 보러 다닌 회사들 중에는 뻔뻔하기 그지없는 철면피의 회사들도 넘쳐났다. 당시 내가 한때 극심한 화를 못 이겨 탈조선을 해야겠다 결심하게 된 이유이기도 한데, 지원자에게 후안무치할 정도로 막 나가는 회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항상 가히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이상이었다. 특히 내가 희망하는 중국어 사용 가능 업계나 콘텐츠 업계 쪽은 더 굉장했다(사실 이 '굉장하다'는 표현이 해당되지 않는 업계가 우리나라에 몇이나 될까 싶다). 당일 날 전화해 그날 오후에 면접을 보러 오라며 부른다던지, 면접 중 지원자 면전에서 계산기를 탁탁 두드리며 급여를 계산해 보여주고는 괜찮냐고 묻는다던지, 대놓고 최저시급은 맞춰줄 수 없다고 천명한다던지, 면접장에서야 무급인턴이라고 공지한다던지, 집이 가까우니 주 3회 한 시간씩 야근은 괜찮은 편 아니냐며 웃어 보인다던지... 안 그래도 바닷물처럼 짜기 이를 데 없는 인턴의 쥐꼬리만 한 월급에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사람을 어떻게 하면 요리조리 잘 비틀어서 더 많이 부려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들 같았다. 


 한국사회에서 사람을 비합리적이고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사람의 존엄을 빡빡 갈아 돌아가는 판국이 천지에 흘러넘친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나니 더 이상은 정신적 체력이 남아나질 않았다. 결국 후반부에는 '나 이미 4달째 놀고 있는데 어떡하지'라는 불안감과, 괜찮은 직장이 더 이상은 없다는 현실, 그리고 텅텅 빈 통장잔고가 '알바라도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어이없게도 인턴은 최저시급조차 챙기지 않는 곳이 많지만, 차라리 알바는 최저시급이라도 맞춰주니까 어쩌면 그게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땐 그냥 빨리 목돈을 모아서 하루빨리 해외 어디로든 뜨고 싶은 심정이었다. 


 여기저기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다니던 당시, 아르바이트 사이트에 이력서 등록을 해놓았고 아웃소싱 업체로부터 전화를 많이 받았다. 대다수가 식당이나 베이커리였지만, 간간히 사무직을 구하는 자리도 있었다. 엄마는 서빙보단 차라리 앉아서 일하는 사무직이 덜 힘들 거라며, 회사에서 눈칫밥 먹으며 배우는 것도 있으니 사무직을 구하라 하셨다. 그리고 나와는 조금도 맞지 않을 것 같은 어느 쇼핑몰의 중국어 리셉셔니스트 면접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던 날, 운명적인(?) 전화 한 통을 받게 되었다.


 낮고 친절한 목소리의 아웃소싱 업체 담당자는 그날 처음 대화를 나누는 나와 해당 회사가 무진장 잘 어울릴 것 같다며 초장부터 장점을 술술 늘어놓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서 불과 10분 거리이고, 외국계 회사이며, 하는 업무도 무진장 간단하고 쉽다는 것이다. 많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급여 수준은 흔한 인턴 월급 액수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수준이었고, 컴퓨터를 다룰 줄만 안다면 특별한 능력이나 전공지식도 필요치 않은 업무라고 했다. 그 이야기에 혹한 나는 물론 반신반의하기는 했으나 별다른 공을 들이지 않은 이력서를 보내버렸고, 그렇게 휴학 후 4달째만에, 조금은 어색하고 우스꽝스럽던 면접을 거쳐 '적어도 이름 한 번이라도 들어본 회사에서 일하겠지'라는 구슬픈 희망을 고이 접어둔 채 그 외국계(심지어 흔치 않은 유럽계 회사)에서 첫 회사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4개월짜리 계약직이었고, 11월이 분기점이 되어 딱 네 달(7,8,9,10)을 놀고 네 달(11,12,1,2월)을 일하게 된 것이다. 




 다음 주면 이 회사에서 근무한 지도 어느덧 석 달 차가 되는데, 여전히 처음 근무를 시작하며 느낀 장점들을 똑같이 느끼고 있다. 직원들 간의 적당한 거리와 친밀도, 칼 같은 출퇴근 시간, 낮은 업무강도와 적은 업무량, 눈치 볼 사람도 없고 화장이나 복장을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오히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보다 긴장감이 줄어들고 업무가 손에 익어 그런지 처리속도가 월등히 빨라져서 요즘엔 첫 달보다 훨씬 더 수월하게 일을 하고 있다. 꼰대는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내가 속한 팀은 여초라 여자들의 목소리가 더 세다는 것이 좋다(초등생 자녀를 키우는 10년 차 여자 과장님이 계시는데 '여자 과장' 자체가 다른 기업에선 흔지 않다고 들었다). 집에서 거리가 가까우니 통근 스트레스도 없고 오히려 요즘엔 충분히 걸어올 수 있는 거리도 춥다고 마을버스를 타고 다닌다. 애초에 월요병이라는 건 '왜 월요병이 없지?' 스스로가 이상하게 여겼을 정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겪어보질 못했다. 일을 시작해보기 전까지 나는 내가 회사생활에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전혀 없었는데(오히려 바깥을 싸도는 요상한 크리에이터의 이미지를 꿈꾸면서 온종일 사무실에 앉아 일한다는 걸 공포스럽게 여겼다), 이 정도 직장이라면, 플러스 지금보다 급여가 살짝만 더 높다면(월 200만 돼도 좋겠다), 플러스 직업 안정성만 괜찮다면(이거까진 너무 많이 바라는 거 같다) 굳이 그동안 생각해왔던 창업이나 1인 기업을 노릴 필요 없이 회사란 것도 다닐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갖게 되었다. 


 사실 나는 원래 기업 취업에 굉장한 회의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고 특히 자기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은 개인에게 결코 좋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이었다. 한국에는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고 대우해주는 회사가 흔치 않으니 그럴 바에는 창업을 하거나 1인 기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대낮에 종로 일대를 걷다가 빌딩 옆 골목에서 담배 피우는 직장인들을 보면 '쯧쯧 얼마나 힘들어서 저럴까' 혀를 차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데 오히려 내가 현재의 회사생활과 생활패턴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한편으론 굳이 적성을 따지지 않더라도 업무강도가 어느 정도 낮고 내 일상이 보장되는 직종/회사라면 똑같이 괜찮은 선택지가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됐다. 굳이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바라지 않아도, 내게는 글쓰기라는 자아실현 수단이 있고, 이외에도 내가 즐기고 누릴 수 있는 수-많은 취미생활이 있으니까.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일과 직장을 통해 자아실현을 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유명 기업의 유명 CEO들처럼 누군가는 자신의 커리어를 부풀려 큰 부와 명성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이제 굳이 일을 통해 자신을 보여주지 않아도, 반대로 회사에서 에너지를 최대한 아껴 나 개인의 일상과 취미에 투자하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또 다른 현명한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내 적성과 취미를 열심히 탐구했다면, 직장인이 되어서는 그 취미가 일정한 수준에 다다를 때까지, 즉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먹고살 수 있을 때까지 '자급자족 능력'을 키우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대학 졸업 후 바로 그 일에 뛰어들 수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이유로 사회에 바로 맨몸으로 뛰어들기엔 너무나 많은 기회비용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고, 실패했을 때 감수해야 할 위험도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모든 직장인은 회사가 나를 필요로 할 때까지만 유용하다. 그전에 자신의 취미를 가꾸고 실력을 키워서 진정으로 '자립'할 수 있는 나를 만드는 것이 직장에서 꼬박꼬박 월급을 벌면서도 내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성과 관련된 문제도 마찬가지다. 나는 본디 '내가 좋아하고, 그래서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는데 이번에 짧지만 회사생활을 하며 느낀 것은 내가 일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건 기본적으로 내가 하는 일이 지나치게 쉽고 단순한 업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결과론적으로는 '나와 관계가 없는' 일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아무리 쉽고 단순한 일이라도,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분야, 가령 공연 기획 관련 업무라거나 콘텐츠 제작, 글쓰기처럼 내 적성과 연관되어 있고 내가 잘 하고 싶어 하는 일이라면 지금처럼 완전한 일과 삶의 분리가 가능했을까? 내가 컴퓨터를 끄고 퇴근을 할 때 완전히 업무에서 벗어나는 일상이 가능했을까? 공연을 공연으로, 글을 글로 온전히 즐기고 음미하는 게 가능했을까? 솔직히 나는 아마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약 그런 일을 했다면 나는 그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 더 잘 보이기 위해서, 더 나은 커리어를 쌓기 위해서 하루 종일 고군분투하며 고민했을 것 같다. 뭐 원래 그런 게 일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일이 아닌가 뭐?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도 분명 일이고, 여기도 분명 직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나도 그렇게 굳건히 믿는 입장이었고) 정작 나와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고 있는 지금 내 삶의 만족도는 결코 낮지 않다. 오히려 퇴근 후에는 일을 완전히 잊을 수 있고, 업무 생각 없이 내 일상에 충실할 수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대로 즐길 수 있어서 좋고 행복하다. 


 또한 회사를 다녀서 꾸준한 수입을 거두면 일단 엄마와 같이 사니까 주거비를 들일 필요가 없고(오히려 같이 살면 천천히 조금씩 목돈을 마련 해 30대 초반쯤엔 보증금으로 혼자 살 방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엄마에게 매달 빚을 갚듯이 어느 정도 저축도 할 수 있을 테고,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니 결혼자금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모으기 위해 버둥거릴 필요도 없고, 그럼 그 돈은 오로지 나를 위해 투자할 수 있다. 그게 먹는 데 쓰는 돈이든, 공연 관람에 쓰는 돈이든, 나를 꾸미고 나의 공간을 꾸미고 나의 취미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 쓸 수 있다. 기본적으로 나는 현재의 행복을 중시하는 사람이니까. 여행 욕구가 큰 것도 아니고, 현재 상태에 대한 만족도도 높은 편이니(요즘 매달 50만 원씩 취미생활 비용으로 쓰고 있어서 그렇다-하루하루가 겁나 행복함) 그렇다면 굳이 창업이나 해외취업을 바라는 것도 욕심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내가 회사에서 하는 일이 나의 개인적인 가치를 실현시켜주지 못한다고 해서 크게 불만을 느낀 적은 없다. 나는 딱 받은 만큼, 혹은 그보다 더 적게 일하고 있고 한편 그 돈을 통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때로는 약간의 죄책감이 들 만큼 나 스스로와 '잘 지내는 데' 쓰고 있으니 말이다. 회사에선 최대한 에너지를 아껴서 퇴근 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들을 한다. 그 시간이 굉장히 큰 행복과 만족감을 가져다준다. 내가 번 돈으로 눈치 보지 않고 즐기는 취미생활이니까 다른 직업인들처럼 생계를 걱정할 필요도, 집안 눈치를 볼 필요도 없어진 것이다. 내가 졸업 후 바로 콘텐츠 업계나 엔터 업계에 뛰어든다면, 아마 이런 즐거움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내가 즐기고 누리던 것이 내 일이 된다면 순수한 즐거움보다는 분석하고 기획하는 데 이골이 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하는데, 나는 이미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은 것 같고(물론 이게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업계 환경이 너무 박하다면 지금처럼 취미로서 일상을 풍부하게 만들고 온전히 즐기는 것이 나름 괜찮은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한다. 게다가 이 취미를 즐기는 안목이나 실력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고. 그럼 또 그땐 새로운 길이 열릴지도 모를 일이다.




 휴학을 하며 느낀 점들을 정리했는데, 어느새 짧은 회사생활에 대한 성토의 글이 되었다. 게다가 겨우 3개월 일해놓고 왈가왈부하다니, 지금 내가 정리한 점들은 어쩌면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직접 경험하고 느낀 바이기에 이것들이 결코 무의미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앞으로도 고민은 계속될 것이고, 나는 나에게 중요한 토양이 무언인지, 내게 적합한 환경이 무엇인지, 내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두드려 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 휴학을 통해 확실히 더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마주했고, 여러 가지 선택지들을 만났다. 휴학하기 전의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이 이렇게 되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성숙해진 내가 됐다고 믿는 것도 이런 일들을 다 겪은 지금이기에 가능한 것 같다. 


 제주에서 살아본 경험, 스탭으로 일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해본 경험, 서울로 돌아와 누린 흐뭇하지만 불안하기도 했던 백수의 시간들, 그리고 내 힘으로 돈을 벌어보는 경험까지. 그 사이사이에 수많은 고민과 좌절이 있었다. 한국을 떠날 결심을 세우기도 했고, 집에서 독립할 계획을 세운 적도 있다. 평일 오후에 길가를 비추는 햇빛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헤실거리며 웃다가도, 집으로 돌아오면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 어두운 방 안에서 우울해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일을 하는 지금은 만족스럽고 행복하지만, 일을 구하기 전까진 기복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나는 늘 내 일상을 어떻게 하면 더 충만하게 만들 수 있을지 골몰했었다. 휴학을 하면서 그전엔 자주 보지 못했던 전시를 보러 다니기도 하고, 집 서가에 쌓아만 두던 책들을 정리해 한 권씩 찾아 읽기도 했다. 독립출판물에 관심을 갖게 되어 수많은 책을 구입했고, 이를 읽고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했다. 가을 내내 매일 남산을 오르내렸고, 밤마다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운동의 즐거움도 맛보았다. 미련이 남아있던 광고회사 멘토링 프로그램에 마지막으로 지원했고, 이번엔 최종 합격의 영예를 얻었다. 그동안 지쳐있던 내게 삶을 더 즐겁게 만들어주는 촉수들을 찾아내었고, 일상을 풍부하게 만드는 작업을 통해 행복을 되찾은 기분이 들었다. 


 복학 후 앞으로의 삶도 결코 순탄치는 않겠지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때로는 운이 좋은 날도, 또 운이 나쁜 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이번에 배운 것처럼 내가 직접 내 삶을 기쁘고 행복하게 만들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어떤 회사를 다니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건 혹은 그렇지 못하건 간에,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열어둔 채 말이다. 이번 휴학을 경험하며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 일상을 소중히 여기고 잘 돌볼 것이다. 언제까지나, 나는 '나'라는 우주의 유일한 주인이니까. 앞으로의 행방은 역시 나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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