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을 기념하고 기억하기(1)
그런 날이 있다. 모든 것이 똑같은데, 마음만 조용히 달라지는 날 말이다. 평소처럼 출근을 하고, 커피도 평소와 같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맞아. 이맘때쯤, 그 일이 있었지
아, 그 일이 벌써 5년이 지났구나
이름 붙이기 어려운 날이 내 안에 문득 들어온다. 누구는 그날을 생일이라 부르고, 누구는 결혼기념일, 퇴사한 지 딱 1년 되는 날이라고 부른다. 어머니가 처음 병원에 입원했던 날, 아버지가 칠순을 맞은 날, 혹은 이혼을 결심하고 집을 나섰던 날도 그런 날이 된다.
사람들은 이런 날을 기록하지 않아도, 마음 어딘가에 살며시 남겨둔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날을 대부분 무심히 흘려보낸다. 누군가 챙겨주지 않으면 아무 일 없는 날처럼 지나가고, 때로는 챙기고 싶지 않아서 피하기도 한다.
문득 생각난다. 작년 오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기억은 흐릿하고, 감정은 희미하다. 그날을 기념했더라면, 지금 나는 조금 다르게 느꼈을까? 치킨을 시켜 먹고, 단체 톡에 ‘감사합니다’ 이모티콘을 하나 남기고 나면, 어느새 그 하루는 또 평범한 하루의 무리에 섞여 사라진다.
그렇게 수많은 날들이 지나간다. 나를 조금씩 바꿔놓았던 날인데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다.
기념이 없다는 의미는, 말이 없다는 뜻이다. 삶은 계속 흘러가고, 기억은 늘 삶에 뒤쳐진다. 시간이 지나고 그 시절을 돌아보면 의미가 많이 사라졌다. 그러면 기억이 희미해진다. 그렇게 한참 생각하고 나서야 나에게 물어본다.
그때 그 일이 너무 좋았던 것 같은데, 내가 뭘 했는지도 모르겠어. 내가 그때 어떤 사람이었지?
이건, 나 자신에게 말을 걸지 못하고 쉽사리 넘긴 결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을 살아가기 위해 과거를 해석한다. 그러나 해석하려면 먼저 기억해야 한다. 기억하려면, 무엇이든 남겨야 한다. 그 남김은 아주 작아도 된다. 짧은 글, 사진 한 장, 따뜻한 말 한마디가 담긴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영상 등 무엇이어도 상관없다. 이러한 추억이 없으면 삶은 점점 소리를 잃는다.
이 소리를 기억하는 행동에 ‘의식’이나 ‘리추얼(ritual)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종교적인 형식도, 거창한 이벤트도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식은 아주 작고 조용한 마음의 행동이다. 그날의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일, 그게 의식의 시작일지 모른다. 수고했다고, 잘 견뎠다고, 울어도 괜찮다고, 그때의 나에게 말해주는 행위 모두가 우리가 사용하는 의식일 수 있다. 그 말은 누가 대신 해줄 수 없다. 내가 나에게 건네야만 비로소 마음을 정리할 수 있다.
우리가 ‘이듬(Next Stage)’을 만들고 있는 이유도 이러한 의식을 위해서다. 이듬은 다음 계절, 다음 장면, 다음 마음을 준비하는 사람을 위해 마련하는 장이다.(이듬은 논밭을 두 번째 갈거나 매는 일을 뜻한다.) 당신과의 깊은 대화를 원한다. 잔치를 대신할 작은 전시, 사진첩에 담지 못한 이야기를 엮은 한 권의 책, 소중한 목소리를 담은 기록물처럼, 세상에 단 하나뿐인 기념의 방식을 함께 만들어 보려 한다. 그날을 단순히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의 ‘나를 다정하게 바라보는’ 시간으로 거듭나게 돕고 싶다.
이듬은 의식의 복원이다. 조용한 기념일, 나만의 리추얼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누군가 함께해도 좋고, 함께하지 않아도 된다. 단지 내 마음이 중심이 되는 하루, 그 하루를 이듬이 돕고 싶다.
우리는 모두 어떤 날을 기억하며 살아간다. 그날을 그냥 넘기지 않기 위해, 누군가는 다이어리를 쓰고, 누군가는 작은 기억 상자를 만들고, 누군가는 조용히 편지를 쓴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이듬을 만들고 싶다. 사람마다의 ‘다음’을 준비하는 시간을 돕기 원한다. 조용하지만 정확한 의식을, 작지만 깊은 기념을, 이듬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나누고 싶다.
그날의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일, 그게 바로 이듬의 시작이다.